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병원생활 6년차 모범환잔 수명(여진구 분)은 소심한 성격에 가우 공포증까지 가지고 있다. 그의 어두운 인생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 승민(이민기 분)이 나타나며 수명의 삶에 변화가 시작된다. ‘미스 리’라는 엉뚱한 호칭으로 불리는가 하면, 툭툭 건드리며 귀찮게 군다. 그러나 승민 덕분에 수명은 꿈과 내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어두웠던 그의 삶, 진정 밝아질 수 있을까. / ‘내 심장을 쏴라’.
[MBN스타 여수정 기자] 배우 여진구만큼 ‘폭풍성장의 바른 예’는 없을 것이다. 귀여웠던 아역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계속 자라는 키와 훈훈함이 풍기다 못해 넘쳐흐르는 외모, 누나 팬들을 설레게 만드는 중저음 목소리까지 1997년 생 치고는 너무도 훈훈하다.
외형적인 부분도 충분히 멋진데 아역 때부터 쌓아온 연기력이 한층 물올라 스크린에서 반짝 빛을 낸다.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새드 무비’로 데뷔한 여진구는 그 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존재감을 알렸다.
꾸준히 노력한 끝에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보고싶다’로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했고,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를 통해 선배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타짜-신의 손’에서는 매우 짧은 분량에도 무시할 수 없는 특급 존재감으로 ‘타짜’ 시리즈의 연속을 예고하기도 했다. 가슴 아픈 연기부터 오열, 로맨스까지 맡은 배역과 상황을 그대로 흡수하는 여진구가 ‘내 심장을 쏴라’(이하 ‘내심쏴’)로 청춘들의 희망 전도사로 변신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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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좋고 색도 예뻐 마음에 들었지만 촬영 초반 나 역시 수명의 감정에 헷갈렸다. 좀 더 내가 맡은 수명에 대해 분석하고 연기를 했어야 하는데 생각만큼 초반엔 집중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수명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가장 좋은 건 원작소설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소설 속 수명의 심리와 상태 등에 집중했다. 사실 초반에는 다소 경직된 듯한 상태로 연기를 많이 했다. 스스로도 수명을 잘 표현하고 있는가에 대해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아마 이런 부분이 나를 소설 속 수명에 갇히게 만든 것 같더라. 이를 극복하고자 극중 수명처럼 부딪혀보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나아진 것 같다. (웃음)”
극에서 여진구가 맡은 수명은 어릴 적 트라우마에 갇힌 인물이다. 트라우마 때문에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하며 자신의 인생 속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말없이 살아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과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가 기존에 알던 여진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당시 격한 감정선을 연기한 바 있지만 ‘내심쏴’만큼 어둡진 않았고, 점점 희망을 찾아 성장하는 인물이기에 더 많은 캐릭터 분석이 필요했을 터.
“수명이 평소의 나와 180도 다른 인물이라 우선 호기심이 생겼다. 덩달아 도전의식도 생겼다. (웃음)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와 동떨어진 인물이라 내가 분석하고 이해할까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르기에 더욱 끌렸고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 더욱 수명을 연기하고 싶었다. 원작자인 정유정 작가님과 진지한 이야기는 못했지만 감사하게도 많은 부분을 칭찬해주셨다. ‘내심쏴’를 통해 연기적으로나 인생 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얻어가는 게 많다.”
배우가 배역에 몰입하고 애정을 가질수록 헤어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물론 여진구는 어릴 적부터 연기한 경험이 있기에 배역을 몰입하고 나오는 과정이 조금은 익숙할 만도 하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볼 때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기에 자신의 본 모습과 캐릭터 사이에서 고민하진 않았을까. 더욱이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했기에 말이다.
“배역에 몰입해 연기를 할 때는 나 역시 가슴도 아프다. 하지만 내 평소 성격과 주변 상황이 내가 맡은 역할과 동떨어져있기에 명확하게 구분이 되더라. 연기할 때는 맡은 배역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컷 소리가 들리면 바로 여진구로 돌아온다. (웃음) 그러나 아마 내 평소 성격과 모습이 비슷한 캐릭터를 만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때 감정적으로 다소 센 역할이었는데 물과 기름처럼 선이 그어지더라. 이 부분은 나 역시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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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수명에게 있어 승민은 영웅이다.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수명과 달리 승민은 맞서 싸운다. 극과 극 인물인데 굳이 함께 있지 않아도 늘 옆에 있는 것 같은 그런 항상 서로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런 사이 같다. 민기 형과 나 역시도. (웃음) 초반에는 쉽게 반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민기 형이 편하게 해줬다. 남자들 간의 우정을 진하게 나타냈는데 정말 즐겁게 지내면서 촬영했다. 나이차 상관하지 않고 친구처럼 장난도 많이 쳤다. 때문에 현실에서도 수명과 승민 같은 우정을 느끼곤 했다.”
사실 여진구의 목소리를 눈감고 듣고 있으면 ‘상남자’가 따로 없다. 중저음의 목소리는 여진구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고 뭇 누나 팬들을 설레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됐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콤플렉스이자 트라우마였단다.
“지금은 오히려 중저음의 목소리가 행운이라 생각하지만 처음엔 트라우마였다. 내 마음대로 목소리 컨트롤이 안 되다보니. 또한 스스로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느껴서인지 말도 없어졌었다. 마치 수명처럼 자신감도 떨어지더라. 대사와 감정을 잘 전달하는 게 배우인데 난 목소리 때문에 이런 부분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스스로 좌절하기도 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목소리가 정말 좋다’고 칭찬하면 당황을 넘어 이게 무슨 말이지 싶었다. 목소리를 외면했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행운이라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의 칭찬에 기쁘다. 본격적으로 목소리 관리를 해볼까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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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내가 하고 싶다면 해보라고 지원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좋아하는 연기를 하고 있다. 소심한 성격을 개조하고자 부모님이 연기를 시킨 건데 내가 좋아하고 즐기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놀라기도 한다. (웃음) 중학교 때 연기의 참맛을 느꼈고 여전히 연기에 더 빠지고 느끼려고 노력 중이다. 10대의 마지막이니까 이를 장식할 만한 학생 역을 연기하고 싶다. 현재 고3이다보니 대학에 대한 현실감이 크게 다가와 걱정이다. 연극영화과도 좋지만 다른 과에 진학해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연기에 도움이 되는 다른 과를 지원하고 싶다. 하지만 우선 대학에 들어가는 게 가장 큰 현실적인 목표다. (웃음) 꼭 대학에 입학해 캠퍼스를 걷고 싶다.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다.
끝으로 스스로 잘 자란 아역배우의 바른 예 같냐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더니 “아역 때의 내 연기는 오글거려서 못 본다. 왜 저렇게 연기했나 부끄럽기도 하고 지금보다 더 낫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그냥 스스로 잘 컸으면 좋겠다”며 수줍게 대답을 내놓았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 사진=MBN스타 DB,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