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오프닝의 룰이 있다. 시작 5초간 시청자 시선을 붙잡아라, 10분간 자극적 에피소드를 펼쳐라, 그리고 복선을 넣어라.
SBS 새 수목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의 첫 에피소드는 이를 충실히 지켜냈다. 로맨틱 코미디에 고릴라가 출현한 건 뜬금없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편 극 전개를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제작진이 특별히 공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21일 오후 방송된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또 다른 인격 로빈이 나타나지 않게 5년간 수행한 구서진(현빈 분)이 장한나(한지민 분)와 강렬한 첫 만남을 갖는 과정이 그려졌다.
구서진은 혈압과 맥박이 급격히 뛰면 로빈으로 변하기 때문에 늘 절제하는 생활을 고수했던 인물. 집안에서 운영하는 테마파크를 물려받기 위해 남과 달리 인격 장애를 앓고 있다는 약점을 노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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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테마파크 동물원에서 고릴라가 우리를 뜯고 나와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돌진했던 것이다. 모두들 정신없이 도망갔고 구서진 역시 고릴라를 피한 뒤 맥박과 호흡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은 장한나가 등장으로 깔끔하게 해결됐다. 그가 “빙빙”이라고 고릴라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고릴라가 순한 양으로 변했던 것. 장한나는 오래전부터 조련해오던 고릴라를 마치 아기처럼 쓰다듬으며 즐거워했고, 고릴라 역시 그에게만큼은 다정하게 애교를 부리며 특별하게 대했다. 이 장면에서 구서진은 급격하게 요동치는 맥박을 느꼈고,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첫회 고릴라 오프닝은 앞으로 전개될 구서진과 장한나의 관계가 투사된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성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큰 덩치와 위압적인 겉모습에 사람들이 피하는 고릴라와 인격 장애란 상처 때문에 이기적으로 굴어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재벌가 자제 구서진은 일정 부분이 닮았다. 포악한 것만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상처투성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고릴라가 구서진이 투영된 것이라고 봤을 때 장한나와 고릴라의 관계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다. 모두를 제치고 장한나의 손에 어린 아이처럼 길들여진 점,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지만 장한나에게 길들여졌다는 점에서 구서진의 앞날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한방에 시선몰이에 성공하면서도 깊은 뜻을 지녔기에 제작진이 이 장면에 공을 들였던 건 아니었을까. 앞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조영광 PD는 자신이 고릴라를 직접 연기한 뒤 CG를 입혔다고 고백한 후 “영화 ‘미스터 고’ 김용화 감독을 직접 섭외해 고릴라 빙빙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고릴라 오프닝의 중요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