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네가 필요로 하는 순간까지 나는 네 아버지니까”
오늘도 아버지는 자신이 한평생 일했던 두부가게에 나가 두부를 만든다. 이 두부는 그냥 두부가 아니다. 첫째 딸 강심의 언제 올지 모를 결혼자금이자, 아들 강재를 유명한 의사로 만들어주기도 했고, 때로는 사고뭉치 막내 달봉의 합의금이기 하다. 두부를 만드는 것을 넘어 그것으로 자녀들을 행복하게 해줄 기쁨에 그는 30년간 두부를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두부가게에 손을 놓기로 결정한 건 바로 위암선고를 받으면서부터, 그리고 엄마의 제삿날에도 각자 자신의 일에 집중한 나머지 바쁘다는 핑계로 이기적인 행동을 보이는 자녀들을 지켜보면서부터였다. 불효소송을 벌이면서 불효자식 개선프로젝트를 시작한 순봉이지만, 그 순간에도 그가 바랐던 것은 가족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아침 식사와 노처녀 강심의 결혼, 그리고 아픈 손가락 달봉의 반듯한 미래뿐이었다.
![]() |
↑ 사진=MBN스타 DB |
어느덧 시청률 40%를 돌파한 ‘가족끼리 왜 이래’의 인기 중심에는 바로 ‘아버지 유동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작품을 선택했다는 유동근표 순봉의 연기는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의 자화상이자, 더 나아가 이 시대 모든 불효자들을 위한 일종의 ‘사부곡’이었다.
2014년 상반기 유동근의 삶은 ‘조선의 왕’이었다. 1996년 KBS1 대하사극 ‘용의 눈물’에서 야심이 가득한 조선의 왕 이방원을 연기했던 유동근은 1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방원의 아버지이자 조선개국군주 이성계가 돼 있었다. KBS1 대하사극 ‘정도전’에서 조선의 개국을 알린 태조 이성계로 분한 유동근은 낯선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동북동 촌뜨기’ 이성계 그 자체였다.
‘정도전’의 이성계는 단순히 조선을 세운 영웅이 아닌, 마지막 순간까지 수많은 고민과 갈등, 의문점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이었다. 다시 한 번 조선개국의 현장 한 가운데 서게 된 유동근은 이방원에서 이성계가 되기까지 흐른 시간만큼 더욱 깊어진 연기력으로, 18년 전 시청자들의 가슴 깊숙이 남겨 놓은 이방원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내는데 성공했다.
‘정도전’이 방영되는 기간 동안 ‘번뇌하는 왕’ 이성계가 돼 있었던 유동근은 ‘정도전’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180도 돌변하기 시작했다. 근엄함의 옷을 벗은 유동근은 ‘가족끼리 왜 이래’를 통해 바보 같을 정도로 자식들만을 바라보는 자상한 아빠가 된 것이다.
하긴 이 또한 18년 전과 비슷했다. ‘용의 눈물’이 끝나고 나서 유동근은 드라마 ‘남의 속도 모르고’를 통해 미워할 수 없는 백수건달 최소한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방원이 만들어 놓은 왕 이미지를 벗어보겠다”고 말한 유동근은 그동안 해보지 못 했던 익살연기에 대한 기대를 표하기도 했었다. 그런 유동근이었던 만큼 2014년 ‘개국왕’ 이성계에서 ‘자식바보’ 순봉으로서의 변신은 전혀 낯설거나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 |
↑ 사진=가족끼리 왜 이래 캡처 |
처음 이성계를 기억하고 어색하다고 멀리했던 젊은 시청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동근이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순봉을 연기하는 시간이 하나 둘 지날수록 유동근은 더 이상 연기 잘 하는 배우가 아니다. 과거 그 자신이 강심(김현주 분), 강재, 달봉(박형식 분)과 같은 불효자였으며, 현재 한 가정의 아버지인 유동근은 어느새 순봉의 인생을 걸어 나가고 있다.
누군가 명배우는 눈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고 했다. 눈빛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고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순봉의 사람들을 울리는 것은 그저 단순히 그가 잘해서가 아닌, 브라운관 속 그의 눈빛이 각자의 부모님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끼리 왜 이래' 순봉은 저의 길을 돌아보게 하는 여정의 시간이었습니다. 극중 달봉, 강재가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나이를 먹었는데, 뭐를 제가 잘못했는지 강은경 작가님 글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이제라도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 돼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너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대상을 받았습니다. 지난 날 제 잘못을 용서해주십시오. 제 아이들 잘 되게 해주십시오”(유동근의 2014 KBS 연기대상 대상 수상 소감 中)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