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배우 강소라는 도시적인 외모와는 달리 털털하고 솔직하기로 유명하다. 시상식에서 입은 드레스는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어깨를 으쓱이던 강소라는 애완견 얘기로 어느새 취재진들과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연신 ‘물개박수’를 치며 수다에 집중한 그의 모습. 왜인지 연예인보다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같은 느낌이다.
강소라는 지난 20일 종영한 tvN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임시완 분)의 입사동기이자 1등 신입인 안영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공동인터뷰에 다소 아파보이는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하는 취재진에 “원래 작품이 끝나면 몸살을 앓곤 한다. 정말 괜찮다”고 씩씩한 인사부터 건네고는 담담히 종영 소감을 전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미생’을 좋아해주실지 몰랐다. 작품이 처음 시도하는 장르였고, 대놓고 러브라인이 주가 되는 작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지금 안 하면 후회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컸다. 신입사원은 또 제 나이 때에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촬영을 했는데 위로를 받고, 힐링을 받은 것 같다. 좋은 작품에 제가 잘 묻어간다는 느낌뿐이다. 질적으로 향상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어서 배우로서 즐거운 고민들을 많이 했다.”
강소라는 “원작에는 장그래와 오 차장(이성민 분)의 브로맨스가 주로 나와 안영이가 별로 안 나오는데 오히려 드라마에서 비중이 높아진 것 같다”고 말하며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원작의 설명이 충분치 않았던 인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감이 있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창조니까 말이다. 이 점에서 강소라는 “오히려 그 부분이 더 재밌었다”고 말했다.
“원작에서 적었던 안영이에 대한 설명을 제가 채워나가다 보니, 그런 면이 더욱 재밌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것저것 디테일도 살려보려 하고, 나름대로 카메라에 드러나지 않은 안영이의 배경도 상상하려고 애썼다. 미팅 때에는 힐을 신지만 평소에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슬리퍼를 신는다든가, 이어폰을 귀에 끼고 가는 모습, 회사 출입증 카드 찍는 모습 등 사소한 곳에서 나만의 디테일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만의 디테일로 끝났다.(웃음) 원작과 달리, 안영이를 긴머리로 설정했던 것은 어렸을 적 안영이가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여성성을 가지지 못하다가 삼정물산을 다니면서 아빠의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고, 그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영이를 상상하는 재미로 ‘미생’ 촬영을 했던 강소라는 “안영이는 작품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 아니었나 싶다”고 말하며 남들에 폐 끼치기 싫어하는 ‘앞뒤 꽉 막힌’ 안영이를 조금 답답해했다. 자신이라면 “그냥 털털하게 다가갔을 것”이란다.
“제가 입사를 한다면 한석율(변요한 분) 반, 장그래 반일 것 같다. 처음에는 어리숙하지만 막상 친해지면 술자리를 압도할 수 있을 만큼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안영이와의 비슷한 면은 일을 즐기는 모습이다. 가장 다른 것은 ‘소통’이다. 저는 주변 사람들과 얘기 정말 많이 한다. 싱크로율은 40% 정도인 것 같다.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저는 안영이만큼 독하지는 못한 것 같다.(웃음)”
강소라는 1등 사원 안영이를 연기하면서 러시아어, 영어 등의 대사를 매끄럽게 처리해 모두에게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원어민 뺨치게 잘하던 영어와 러시아어의 정체에 대해 분명 ‘독하지 못 한다’고 말했던 강소라는 “경인방송 보면서 러시아어 공부했다”고 답했다. 그 때 만큼은 고스펙자 1등 신입 안영이와 또렷이 겹쳐보였다.
“외국어는 원래 영어는 어릴 때부터 취미로 좋아했다. 외동딸이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 때마다 어머니가 디즈니 만화를 보여주셨는데, 자막이 없는 작품들을 보려다보니 영어를 공부해야 했다. 한 작품 당 50번 정도는 본 것 같다. 중학교 때에는 부모님의 기대로 외고 준비를 하기도 했다. 러시아어는 이번이 처음인데 태어나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말이라 고민이 많았다. 한국인이 듣기에 ‘러시아어’스럽도록 억양을 바꾼 것도 있는데, 각종 방송을 보면서 알파벳 공부도 하고 그랬다.”
인터뷰 내내 씩씩했던 강소라는 당시 세부로 포상휴가를 떠났던 동료들의 안부와 종방연 때 눈물을 흘렸냐는 질문에 문득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다 곧 휴지를 꺼내들고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지금껏 아무렇지 않은 듯 했던 강소라는 내심 ‘미생’을 보내기 섭섭한 마음으로 가득 찼던 모양이다.
“종방연 때에는 제 눈을 높여주고, 이런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등의 생각이 스쳐서 눈물을 글썽였다. 세부는 못 가서 정말 아쉽다. 석율 오빠(변요한)한테 문자 왔었다. 인증샷 많이 나오더라. 스태프들, 남자 배우 분들 상반신 탈의한 사진 많이 보내주셨다. 물에서 많이 놀다오라고 했다. 종방연 때에도 눈물 많이 안 흘렸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작품을 하면 할수록 눈물은 많아지는 것 같다.”
그는 눈물을 닦으며 이내 “아이고, 죄송합니다”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밝고 털털하지만, “안영이를 연기하면서 (속마음을)참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할 만큼 감정에 솔직한 강소라의 꾸밈없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런 강소라에 ‘미생’의 시즌2가 나온다면 안영이에 바라는 변화들을 물었다.
“너무 안타까웠던 게 자원팀 회식 장면이 안 나왔다. 하다못해 점심 먹는 장면이라도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웃음) 인간적으로 친해질 장면이 많이 그려졌으면 좋겠다. 또 안영이가 안영이보다 더 독한 신입이 와서 어떤 대처를 할지도 나오면 재밌을 것 같다. 시즌2에서 장그래와는 더욱 친근감 있는, 직장동료가 아닌 진짜 친구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사적인 얘기도 더 해서 장그래가 바둑을 했다는 것도 안영이가 직접 들었으면 좋겠다.”
이제 ‘미생’은 끝이 났다. 강소라도 안영이와 이별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영이가 아닌 강소라로서의 2015년은 어땠으면 좋을지, 앞으로의 작품 계획에 대해 물었다.
“매 작품이 부모님과의 관계도 안 좋고, 상처도 많은 인물을 맡았다. 다음 작품만큼은 좀 더 (감정을)표현하고, 쾌활하고, 주변과의 관계도 좋은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장르를 가리기 보다는 (임)시완 오빠가 장그래에 자신의 실제 모습을 많이 입혔다고 한 것처럼 강소라를 많이 입힐 수 있는 인물과 작품을 해보고 싶다.”
치열한 직장인들의 삶을 그려내면서 “직장인들의 삶은 안정됐을 것이란 편견이 제일 처음 깨졌다”고 말하는 강소라. 솔직하고 털털한 그가 무표정의 ‘1등녀’ 안영이가 되는 과정은 이 땅의 모든 직장인들에 응원을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안영이에 정말 안녕을 고할 시간. 강소라 본인도 참 많이 아쉽겠지만, 이를 놓아주는 시청자들도 참 아쉬울 만큼 강소라의 이번 변신,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
사진 제공=윌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