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유용석 기자 |
27일 오후 7시부터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그룹 넥스트 유나이티드 콘서트가 열렸다. 약 4000명의 팬들이 모여들었다. 매진은 아니었지만 이른 시간부터 공연장 앞에 길게 줄을 선 팬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 했다. 제법 나이 든 팬들의 어설픈 헤드뱅잉과 점프. 다소 소극적인 환호성과 합창. 드문드문 보이는, 일사분란하지 못한 형광봉. 한 곡씩만 부르고 들어가는 동료 가수들은 신해철의 아우라에 범접하지 못했다.
사공이 너무 많았다. 무대 장악력은 떨어졌다. 신해철을 대신해 고맙게 무대에 서준 이들이지만 그들이 관객을 압도하기 어려워 보였다. 김영석, 김세황, 지현수, 이수용, 데빈, 김동혁, 쌩, 쭈니 등 기라성 같은 넥스트 밴드의 라이브 연주와 사운드는 훌륭했지만 몇몇 가수의 어색함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넥스트 1·2팀의 공연이 지나갔다.
↑ 故신해철의 아내 윤원희 씨와 아들 동원 군(사진=유용석 기자) |
실제 그랬다. 이현섭에 더해 원년 멤버 출신 기타리스트 정기송과 드러머 신지, 베이스 제이드와 기타리스트 노종헌, 건반 김구호로 구성된 지금의 넥스트 유나이티드가 3팀으로 등장해 무대를 꾸미자 그제서야 완성도 높은 공연이 펼쳐졌다.
↑ 사진=유용석 기자 |
이현섭은 "공연장에 오시기 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가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나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그러나 오늘은 마음껏 웃고 떠들고 우시다 가셨으면 좋겠다. 그게 (신해철) 형도 원하는 바일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신해철의 사진이 담긴 영상과 히트곡 '날아리 병아리'가 흘러나오자 공연장 여기저기서 눈물 콧물을 훌쩍였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고 신해철의 아내 윤원희 씨와 자녀도 또 눈시울을 붉혔다.
이현섭은 한때 음악을 포기하려 했을 때 고인에게 혼이 났던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이제부터 여러분과 제가 해철 형에게 보여줘야 한다. 형 없어도 우리끼리 잘 뛰어 놀고 잘 산다. 걱정하지 말게 하자. 그만 징징대자. 크게 소리 질러서 확실하게 보여 주자"며 '안녕'과 '재즈카페'로 분위기를 띄웠다.
정해진 무대 순서가 끝났다고 자리를 뜨는 팬들은 드물었다. 공연장이 암전된 채 고인의 장례식에 울려퍼졌던 노래 '민물장어의 꿈'이 나오자 팬들은 숨 죽여 합창했다. 이어진 앙코르 요청에 넥스트는 '호프(Hope)'와 '그대에게'를 열창했다.
이현섭은 "해철 형이 쌓아온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 나와 여러분의 가슴 속에 해철이 형이 살아있는 한 넥스트의 음악은 영원히 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유용석 기자 |
아내 윤씨는 고 신해철의 장협착 수술을 한 S병원의 의료사고 가능성을 수사해달라며 K원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이 때문에 K원장은 두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경찰은 국과수 부검 결과와 의협·의료중재원의 감정을 토대로 계속적인 수사를 펴고 있다.
1968년생인 고 신해철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재학 시절이던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로 출전,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고 데뷔했다. 이후 솔로 가수와 그룹 넥스트 등 음악 프로듀서로도 나서며 ‘천재 뮤지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넥스트 공연 첫문을 연 노래는 '세계의 문 파트 1 유년의 끝'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듯한 고인의 독백이 가슴을 때렸다.
"흙먼지 자욱한 찻 길을 걸어 숨가쁘게 언덕길을 올라가면/ 단추공장이 내려다 보이는 아카시아 나무그늘 아래에/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멍가게 앞 복개천 공사장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전부였던 시절, 뿌연 매연 사이로 보이는 세상을, 우리는 가슴 두근거리며 동경했었다. 이제 타협과 길들여짐에 대한 약속을 통행세로 내고, 나는 세계의 문을 지나왔다. 그리고 너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문의 저편, 내 유년의 끝 저편에 남아있다."
fact@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