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배우 강하늘은 노안이다. 본인도 ‘쿨’하게 인정한다. 스스로 보기에도 때로는 동갑 배우 강소라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일 때가 있단다. 그럼에도 싫어하는 기색은커녕,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드는 눈치다. 노안에 대해 “노숙함이라는 단어가 좋다”고 말하는 강하늘은 도저히 1990년생 같지 않아 보였다. 그야말로 ‘애어른’이었다.
강하늘은 케이블 드라마로서 시청률 8% 돌파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온통 직장인 코드 열풍으로 물들인 드라마 ‘미생’에서 장백기 캐릭터를 맡았다. ‘미생’의 대성공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종영소감을 묻자, “후련하고도 허전한 마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후련’보다는 ‘허전’에 더욱 가까워보였다.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혼자 사는 집에 딱 들어갔는데 ‘미생’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소주 한 병을 사왔다. 그걸 마시면서 처음 장백기 캐릭터를 맡았을 때, 중간에 고민이 많았을 때, 끝났을 때를 쭉 돌이켜봤다. 씁쓸하고 허했다. 그리고는 ‘미생’은 잘 됐지만 지금이 제가 들뜨지 말아야할 적절한 시기라는 걸 깨달았다. 최대한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단계인 것 같다. 조금은 더 가라앉히려고 하고 있다.”
처음부터 ‘애어른’스러운 답변이다. 한창 신나도 좋을 시기이건만, 그는 애써 꾹꾹 눌러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 강하늘에 사실 ‘미생’은 다른 면에서 의미가 깊을 듯 했다. 그는 원작인 동명 웹툰의 유명한 팬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미생’을 제안 받았을 때의 느낌을 묻자 또 다시 “저는 원작 웹툰의 엄청난 팬”이라고 ‘팬밍아웃’부터 했다.
“인터넷에 연재될 때에도 뜨기만을 기다리다가 스크롤 내리는 맛에 살았고, 책이 나왔을 때에도 모두 샀다. 처음 ‘미생’을 하게 됐을 때 많이 신났던 이유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안 지나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인데 저 때문에 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맡은 역할이 제가 맡았기 때문에 매력이 반감될 수도 있지 않겠냐. 그것 때문에 많은 불안, 걱정 안에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고민과 걱정이 컸다고 고백하는 강하늘에 장백기를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물었다. 그는 “장백기 연기 중 쳐다보는 신이 많다”며 힌트를 줬다. 무슨 의미일까.
“장백기를 연기할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하나만 삐끗해도 무너지는 역할이었다는 점이다. 장그래(임시완 분)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한석율(변요한 분), 안영이(강소라 분)도 다 얽혀있으니 말이다. 제가 한 번만 잘못 표현하면, ‘중간에서 뭐하는 애냐’는 말을 들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강약조절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만 보면 장백기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신이 굉장히 많다. 대사 하나 없이 ‘장백기가 물끄러미 쳐다본다’는 지문을 연기하기 위해 촬영을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만큼 말이다. 그 때에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거기서 네 사람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연기를 함에 있어서 대사가 없는 부분은 오히려 어렵다. 그래서 장백기가 어려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미묘한 부분을 어떻게 짜 맞춰 가야 하는가가 제 나름의 숙제였다.”
강하늘은 신입 4인방의 호흡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덧붙여 장백기와 안영이가 러브라인인 것 아니냐는 의혹에 “우리가 목표했던 것은 ‘러브라인일까, 아닐까’의 질문을 던지는 것 까지였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본질은 ‘동질감’이라는 것. 강하늘은 유난히 ‘미생’ 속 러브라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류에 대해 “많은 드라마들이 항상 연애로 빠지게 된다는 것에 많은 분들이 강박관념을 느끼셨던 것 같다”는 답을 내놨다. 그렇다면 강하늘이 생각하는 좋은 드라마는 뭘까.
“개인적으로는 ‘사랑하지 않는’ 드라마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사랑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라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사랑 얘기면 저는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한 ‘미생’ 속 장백기와 안영이의 역할은 재미를 위해 궁금증까지만 던져주는 것이었다. 남자 캐릭터와 여자 캐릭터가 눈빛만 주고받아도 러브라인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이 오히려 갇힌 것이 아닐까 싶다”
대답 속에는 강하늘의 ‘미생’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났다. ‘미생’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모든 장면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캐릭터에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쓴 흔적이 대답 곳곳에서 발견될 정도였다. 그런 강하늘이 꼽는 명장면은 과연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장면에 앞서 “장백기는 정말 ‘애’다. 드라마를 하는 내내 장백기라는 애를 하나 키운 기분”이라며 웃었다.
“이 대사를 내 입으로 할 수 있게 돼 정말 행복하다고 작가님께 바로 연락을 드렸던 적이 있다. 바로 ‘장그래 씨와 내 시간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일 봅시다’라는 대사였다. 제가 관찰했을 때,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갑옷’을 입고 있다. 감정을 숨기려고 한다. 장백기도 똑같다. 그 숨겨진 내면은 사실 ‘애’인거다. 최종회로 흘러가면서 ‘갑옷’을 모두 벗고, 비어있는 나를 마주하고 점점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장백기의 마지막일 것이라는 계산 하에 장백기를 표현했다. 그 장면이 장백기가 비로소 자신의 갑옷을 모두 벗어던진 신이라 연기를 하면서도 찌릿했다.”
현실의 강하늘은 어떤 캐릭터에 가장 가깝냐고 물으니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며 살아온 과정은 장그래와 비슷한 것 같다고 답했다. 어딘가 내리사랑을 받으며 자란 3대독자 느낌의 외모와는 전혀 다른 대답이다.
“전단지는 기본이고, 뷔페 서빙, 음식점, 주유소, 카페 등 정말 안 해본 종류의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고등학교 때 일반계 고등학교 연극 동아리에 있다가 연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예술고등학교로 편입을 했다. 이미 집에서는 월세를 해결해주니 더 손 벌리기가 싫더라. 그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벌었다. 그런 면에서는 장그래와 비슷한 것 같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저는 장그래처럼 내 자신을 연민하지 않았다. 풍족하진 못했을지언정, 행복하게 살았다. 새로운 경험들의 연속이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많은 경험을 통해 애어른이 된 강하늘은 “어리숙함보다는 노숙함을 선택하겠다”고 말할 만큼 진중함을 최우선으로 꼽는 배우였다. 인터뷰 내내 그는 어떤 질문에도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한 마디에 생각을 꼭꼭 담아내려 애를 썼다. 단 한 마디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을 만큼 진중한 강하늘은 연기관마저도 확고했다.
“많은 분들이 ‘연기를 계산해서 하지 마라’는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에는 연기는 계산해야 한다. 대신 계산하지 않은 듯이 계산을 해야 한다. 그것까지가 진짜 계산이라고 생각한다. 계산을 해놓고도 이를 들키지 않는 것이 진짜 맞는 연기법이라 생각한다. 연기관은 확고하지만, 제 연기에 있어서는 저에 대한 확신이 없어 의심을 계속하는 스타일이다. 연기라는 건 누군가가 봐주는 것이고, 이걸 봐주는 사람이 공감을 했을 때야 비로소 정답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의심은 배우의 숙명이라고도 봐도 될 것 같다. 제가 존경하는 배우 중 닉 놀테(Nick Nolte)가 ‘연기하는 게 두렵지 않으면 그 때 연기를 그만 두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런 걸 보면 연기에 따라오는 의심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시즌2에서 만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시즌2가 두렵다”고 한다. “시즌1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순수한 마음으로 장백기를 만날 수 없지 않겠냐”고 걱정했다. 그런 대답이 가능할 정도로 매 작품에서 캐릭터를 ‘만나고’ 진심으로 이해하는 배우 강하늘. 앞으로의 그의 연기에 기대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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