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너무 좋은 재료들이 만나면 오히려 맛이 과해진다는 게 입증된 걸까. 명품 배우들이 만나니 오히려 독이 됐다. 스크린을 억지로 안방극장에 옮긴 듯한 불편한 느낌이 훌륭한 작품성을 압도했다. SBS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은 대한민국 역사의 영원한 화두 사도세자의 얘기에 정치적 암투를 섞어 제대로 된 남자 드라마를 엮어냈지만 시청률은 왠지 시큰둥했다.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명품 배우들의 ‘과한 표현’이 어려운 사극을 이해하는 데에 장애 요소가 됐다.
9일 오후 방송된 ‘비밀의 문’에서는 사도세자 이선(이제훈 분)과 아버지 영조(한석규 분)가 권력의 암투 속에서 부자의 연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얘기들이 전파를 탔다. 백성을 위한 정치 개혁을 꿈꾸던 이선은 노론의 세력에 밀려 권력의 변두리로 밀려났고, 영조는 아들의 목숨을 끊으라는 노론의 음모와 성화에 결국 이선이 뒤주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허락하며 부자간의 비극에 종지부를 찍었다. 고서에서 단순히 ‘뒤주에 갇혀 죽은’ 것으로 기록된 사도세자는 그렇게 살을 붙여 인생고락을 담은 스토리로 재탄생됐다.
그러나 ‘비밀의 문’은 이선처럼 비운의 명작으로 그쳤다. 탄탄한 구성과 극적인 요소에도 방송 후반에는 시청률 5%대를 밑도는 저조한 성적으로 제값을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명품 배우들의 색깔이 제대로 섞이지 못했던 것을 들 수 있다.
↑ 사진=SBS "비밀의 문" 방송 캡처 |
연기파 배우 한석규와 충무로 블루칩 이제훈의 만남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였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텔미썸딩’ 등으로 흥행 저력을 보인 한석규와 ‘건축학개론’으로 인기 스타 반열에 오른 이제훈의 조합은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나 영화 ‘파바로티’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드라마 흥행 척도인 ‘케미(케미스트리 준말)’는 보증수표였다.
그렇지만 이들의 연기 호흡은 한마디로 ‘과유불급’이었다. 한석규는 아들과 정치적 대척점을 이룬 영조의 고뇌를 마치 연극 무대처럼 처절하게 토해냈고, 이제훈은 나라 개혁의 한계를 느끼고 스스로 뒤주로 들어간 이선을 영화 캐릭터처럼 과하게 표현해냈다. 단적으로 이들이 뱉어낸 복식 호흡의 대사톤은 귀가 쉴 곳이 없어 보는 이를 불편하게 했다. 드라마 연기는 영화, 연극과 달라야하는 것 아닌가. 스크린 전문 배우가 안방극장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예를 제대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비밀의 문’은 애초 SBS가 제작비를 엄청나게 투자할 만큼 기대작이었다. 그럼에도 두 배우의 욕심 때문에 이를 잘 살려내지 못한 꼴이 됐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 속담이 절실한 순간이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