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녀 산(현승민 분)에게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로 엄마(심혜진 분)다. 엄마는 산의 주변을 그림자처럼 맴돌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산과 그녀를 누구보다 특별한 딸로 키우고 싶어하는 엄마 사이에는 갈등의 연속이다. 성인이 된 산(구혜선 분)은 예상치 못한 임신을 통해 잊고 싶었던 엄마와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태어나 처음 엄마와 정면으로 마주할 결심을 한다. / ‘다우더’
[MBN스타 여수정 기자] 손에 꼽을 정도로 몇 개 안되는 여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오랜만에 대중을 찾았다. 이는 바로 ‘다우더’. 영화는 배우이자 영화감독 겸 싱어송라이터 구혜선의 첫 영화 주연작이자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개봉 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돼, 일찌감치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사랑과 집착의 두 얼굴 ‘모성애’를 주요 소재로 삼아 가깝지만 오히려 멀어질 수도 있는 모녀지간을 리얼하게 담아냈다.
↑ 사진=옥영화 기자 / 디자인=이주영 |
“여성 관객들 또는 극중 산이와 같은 또래,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은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공감할 것이다. 반대로 남성 관객이나 온화한 성격의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은 공감하지 못할 것도 같다. 그러나 딸을 키운 아버지들은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사실 ‘다우더’는 대중을 상대하는 영화가 아니다. 때문에 상영하는 극장도 많지 않다. 영화의 타깃 층은 정확하게 주부였다. 하지만 상영되는 극장에는 젊은 친구들이 더 많이 방문하더라. 타깃은 있지만 작품을 공유하기 어려워 아쉽다.”
아직 미혼인 구혜선은 모성애의 두 가지 측면을 섬세하게 작품에 녹아냈다. 출산한 친구들과 자녀와 어머니에 대해 토론하던 중 연출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는 구혜선. 작품이 모성애를 담은 만큼 촬영 내내 이에 대한 연구와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듯 싶다.
“내가 어떤 엄마가 될지 정말 모르겠다. (웃음) 아직 (육아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있다기보다는 아이를 낳고 그 후에 결정하자 주의다. 미리 생각한 적은 있지만 여전히 어렵더라. ‘다우더’ 내용 역시 이렇다는 설명이 아닌 이런 부모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소유와 집착은 늘 사랑에 붙어있는 것 같다. 사실 온화한 가정에 속한 이들은 작품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더라. 때문에 나 역시 모든 가정이 다 이러진 않겠구나를 느꼈다. 누구나 가정의 절박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다우더’를 촬영하면서 어릴 적 생각이 스멀스멀 났다. 내가 인천사람인데 촬영 제작진 거의 대부분이 인천사람이더라. 촬영 장소 역시 인천에서 많이 찍었는데 정말 특이했다. (웃음) 같은 동네 사람이기에 인천 주민들만 느낄 수 있는 지역감정으로 끈끈했다.”
↑ 사진=옥영화 기자 |
“사실 엄마의 사연을 넣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우리 어머니들이 왜 그렇게 된지 모르지 않냐. 사연을 넣으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것 같더라. 때문에 틈틈이 힌트는 있지만 이야기가 커질까 사연을 넣지 않았다. 주인공 이름을 산이라고 지은 것은 매우 단순하다. 엄마들의 바람이 주로 자식이 큰 산이 됐으면 하지 않냐. 그 점과 엄마와 가까워질 수 없다는 의미, 힘들게 오르고 다시 내려와야 되기에 산, 육교, 복도를 떠올리다 이름을 지었다. (웃음) 산이 엄마 역시 이름이 없는 게 산이를 강조한 점도 있고 이름이 없어야만 존재가 없고 딸에 귀속된 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이 벌써 구혜선의 세 번째 장편이다. 영화감독으로서 필모그래피가 쌓일수록 책임감이 강해지기에 그에게 현장은 더욱 어렵고 고된 일터일지도 모른다. 특히 여성감독이니 남모를 고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혜선은 해맑게 미소를 보이며 “호의적으로 많이 도와주는 것 같다. 다들 잘해준다”고 입을 열었다.
“현장이 재미있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다우더’는 총 8회 차 촬영을 했다. 촬영 기간은 짧아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웃음) 일정이 타이트했지만 이동도 적었고 무엇보다 출연 배우들이 정말 잘 연기해줘서 잘 진행됐다. 비록 어려운 감정연기를 소화해야 되기에 많은 수다는 못 나눴지만 돌아보면 정말 재미있었다. 보통 감독은 공공의 적이라 항상 외로운데 난 이상하게 사랑받는 느낌을 격하게 받았다.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정말 행복했다. (웃음) 난 우선 밤을 잘 안 샌다. 밤새서 일하면 잠을 못자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진다. 차라리 바빠도 잠을 자고 현장에 나와 몰입하는 게 좋다. 또한 밥 먹는 시간도 보장한다. 모든 일이 잘 먹고 잘 자려고 하는 것인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 사진=옥영화 기자 |
“내가 매달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바쁘지 않다. (웃음) 20대부터 조금씩 만들어 놓았던 작품을 천천히 공개하는 거라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워커홀릭이었던 20대에 비해 지금은 보헤미안이다. 난 직장인이 아니다보니 계획을 세워도 이처럼 살지 못한다. 때문에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다. 그러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를 느낀 후 전과달리 마음이 편해지더라. 뜻이 아닌 주어진 시간에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 /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