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하긴 수갑이 채워진 채로 몸을 날려 10여 명의 형사를 따돌려야 했고, 쉴 틈 없이 달려야 했다. 20여 명의 조폭과의 대결은 어떻고! 천재 악당 에이스(신하균)에게 납치된 형(이성민)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익호(이정재)의 모습이 고스란히 영화에 담겼다. 그 짓(?)을 또 하라고? 이정재의 대답은 현재까지는 “NO”다.
촬영 5개월 전부터 운동과 훈련을 했다는 이정재는 “이제 나이가 들어 근육이 잘 안 붙어 몸 만드는 게 힘들었다”고 했는데, ‘빅매치’는 그렇게 몸을 만들지 않았으면 촬영하기 힘들었을 작업이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환상적인 복근과 몸매를 만들어내다니 정말 독하고 대단하다고 했더니 “더 이상은 건장한 몸을 보여드리는 역할은 못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아쉽지 않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또 “카메라가 돌아가면 없던 힘도 나고, 안 움직이던 어깨도 더 잘 돌리게 되더라”고 웃었다. 오히려 촬영이 지연된 게 힘들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이 몇 차례 있었는데, 이정재는 영화 속 몸을 유지해야 해 운동과 훈련을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이리 만들어야 했으니 감독도 이정재의 몸과 액션을 더 사용하려고 뭔가를 요구했을 것 같다. 잘 나온 장면도 한 번 더 찍거나 하는 등으로 이정재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이정재는 “감독님은 액션보다는 코믹한 부분에 신경을 더 많이 쓰더라”는 답을 했다. “사실 감독님이 액션은 원하는 게 없었어요. 액션은 카메라 포지션과 인물과 각도, 방향성만 맞으면 그럴듯해 보이거든요. 하지만 코믹적인 요소는 아이디어도 내야 하고, 그 포인트 호흡이 맞았을 때가 웃겨요. 될 때까지 찍어야 했죠.(웃음)”
이정재가 언급한 건 링 위에서 코믹한 세러머니를 한 장면이나 유치장에서 “이거 몰래 카메라야?”라고 하는 장면, 수경(보아)와 갈대숲에서 싸움이 애정행각으로 오해받는 장면 등이다. “내겐 코믹적인 재능이 없다”는 그는 “영화에 어느 정도 밝은 톤을 주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딱 영화에 나오는 정도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나머지는 다른 분들이 큰 웃음을 주는 연기를 잘 해주셔서 균형이 맞지 않을까 한다”고 짚었다.
몸과 마음이 고생했으니 세트에서 나름 편안하게(?) 연기한 신하균의 에이스 역할이 부럽기도 했을 것 같다. 전체 5개월 중 2주 정도로 촬영이 끝이었으니 이 점도 부러웠을 것 같다. “세트에서 촬영하고 짧게 끝났으니 편하긴 했겠죠. 하지만 제가 맡았으면 신하균씨의 에이스처럼은 못했을 것 같아요. 그 역할 연기는 해냈겠지만, 아마 다르게 나오지 않았을까요?”
‘빅매치’는 가수 출신 보아의 한국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익호의 조력자가 된 빨간천사 수경 역의 보아와 호흡이 은근히 좋다. 이정재는 사실 3초 정도 갸우뚱했다. ‘우리가 아는 그 가수 보아???’ 하지만 이내 수긍했다. “운동을 오래하며 챔피언 꿈을 가진 선수가 노력한 시간과 보아가 어렸을 때 가수로 꿈을 꾸며 연습하고 노력한 시간과 느낌이 비슷할 것 같았다”며 “수경의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정재는 “특히 수경이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며 칭찬했다.
“저보다 작품을 사랑하는 거겠죠. 운이 좋게도 좋은 작품을 제안받은 거죠. 그분들에게 감사해요. 개인적으로 영화 ‘하녀’ 때부터 슬럼프를 잘 빠져나온 것 같다고 생각해요. 임상수 감독님과의 만남도 즐거웠고, 최동훈 감독님이 ‘도둑들’ 제안을 했을 때도 반가운 역할이었죠. 언젠가 집들이에 갔을 때 최동훈 감독님이 ‘다음 작품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신세계’는 (최)민식이 형이 전화해서 함께하게 된 것이고, ‘관상’도 한재림 감독님이 불러주셨죠. ‘빅매치’는 제작사 심보경 대표님이 더 적극 추천해주신 것이고요.(웃음)”
많은 작품을 했지만 이정재의 멜로 ‘시월애’도 기억난다. 팬 중에는 이정재의 멜로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멜로 출연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이정재는 “멜로 영화 시나리오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제의가 없다”며 “있어도 멜로나 로맨스 영화를 요즘 관객은 안 보는 것 같다. 최근 들어 멜로에 관심이 많아지게 돼 ‘인간중독’이나 ‘마담뺑덕’ 등도 봤는데 생각만큼 관객들이 극장에서 안 보시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수위 높은 영화도 포함한) 멜로에 대한 관심을 표하며 “벗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크지 않다. 스토리와 잘 맞는다면 참여해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멜로에 관심이 생겼으면 연애, 결혼을 생각할 법도 하지 않나. 이정재는 “혼자 사는 게 익숙해졌고, 편안한 것도 있다”며 “과거에는 이성이 옆에 항상 있어야지 좋고, 뭔가가 잘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친구는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고 말했다. 팬들은 좋겠다고 하자, 이정재는 껄껄껄 웃었다.
jeigun@mk.co.kr/사진 호호호비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