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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경수의 엄마 역할이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경수 뺨 때리고 바로 미안하다고 했는데….(웃음)”
배우 염정아(42)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11월 13일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로 인사하는 그는 극 중 아들 태영으로 나오는 도경수의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한숨과 신음을 직접 들었다. 최근 끝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다. 야외극장에서 상영된 ‘카트’를 본 팬들의 반응이었다. 악덕 편의점 지점장으로 출연해 도경수를 구타한 김희원보다는 원망의 소리는 덜 들었겠지만, 그래도 진땀나는 기억이었음을 회상했다.
염정아는 “솔직히 엑소도 몰랐고, 아이돌의 인기가 그 정도인 줄은 이번에 처음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경수의 뺨을 때린 것과 관련, “팬들은 당연히 연기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염정아는 앞서 공식 석상에서 “내 아들이 도경수처럼 자랐으면 한다”고도 했다. 엑소 팬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니었다. “외모가 아니라 22살의 남자로서 기본적으로 인격도 괜찮고 잘 배워 바르게 자란 티가 난다”는 의미였다. 비록 연기긴 하지만 잘 자란 도경수의 엄마로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엑소의 팬덤 탓에 도경수와 함께 연관 검색에 올라 신기했다는 염정아. 하지만 그 놀라움보다는 자신이 그간 해보지 않았던 역할을 맡게 된 것이 더 신기했다. “전 센 캐릭터만 연기하는 등 그동안 선희 같은 캐릭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저한테 이 역할이 들어와서 고마웠죠. 현실 속 인물이잖아요.(웃음) 타당성을 갖도록 해야 해 부담을 느끼긴 했죠. 선희 내면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부담감 반,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자신감 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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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순서대로 촬영이 진행되어서 자연스럽게 동화됐다”며 “노동 운동을 한다고 해도 내 캐릭터를 버리고 갑자기 투사가 될 수는 없었으니까”라고 회상했다. 그 변화 과정은 튀지 않기에 더 현실적이다.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염정아는 화려한 이미지를 제거하고,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아줌마처럼 보이게 노력했다. 짧은 머리의 파마, 기미, 구부정한 자세 등을 설정했다.
사실 염정아는 ‘카트’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너무나 사회와 정치에 몰랐다고 느꼈다고 했다.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크게 와 닿아 참여했는데, 그 이후에 이들의 투쟁에 감동했다. 비정규직에게 부당한 일이 이렇게나 많은지 알지 못했고, 해결이 안 되는 것도 몰랐다. 인물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마음이 아팠던 그는 꽤 많은 것을 깨닫고 알게 됐다. 비록 계산원 아르바이트 등을 한 적 없지만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얘기같이 표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현재까진 통한 것 같다. 일반 관객에게 와 닿는 지점이 꽤 많다.
‘카트’ 안에서는 아름다운 외모도 ‘당연히’ 포기해야 했다. 염정아뿐 아니라 다른 모든 등장인물이 그랬다. 흔히 여자 출연진은 어떤 기 싸움이 심하다고 하는데 이 현장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염정아는 “기싸움은 없고 동지애 같은 게 있었다”고 웃었다. “대부분이 여성 출연진이라 편했어요. 먹을 때도, 쉴 때도 편했죠. 촬영 날, 아침 전부 운동복 차림으로 나타났거든요. 분장도 10분~15분 만에 끝냈죠. 저는 집이 가까워서 출퇴근했는데, 다른 분들은 숙소에서 거의 매일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대요.(웃음)”
염정아는 아들·딸로 나온 도경수와 김수안 양의 칭찬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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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는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인 게 가장 만족스럽다. “나한테 맞지 않은 옷을 입어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염정아는 미스캐스팅 아니야?’라는 소리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얘기를 듣지 않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jeigu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