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자꾸만 웃음이 번집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됐는데도 오히려 한결 가벼워진 느낌? 살다보면 뭐라도 부여잡고 싶은 순간이 있잖아요~ 그럴 땐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게 하는 긍정의 에너지가 필요하죠. ‘조로’는 제게 그런 작품이에요. 용기, 희망 그리고 힐링 같은. 관객들에게도 이 ‘밝은’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어요.”
14일 충무아트홀에서 배우 서지영을 만났다. 그동안 거쳐 온 수많은 작품 중에서 뮤지컬 ‘조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같이 답했다. 서지영은 극중 영웅 ‘조로’의 재탄생을 돕는 ‘집시 퀸’ 이네즈 역을 맡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남편이자 최고의 파트너인 왕용범 연출가와 호흡을 맞춘다.
그는 전작 ‘프랑켄슈타인’에서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누나인 엘렌과 격투장 여주인 에바 1인 2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이번엔 정의로운 ‘집시’로 돌아왔다. 워낙 개성 있는 역할을 많이 해온 그이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카리스마를 뿜어낼지 기대가 쏠렸다. 역시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일단 ‘집시’라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데서 시작했다”고 그는 운을 뗐다.
“‘집시’라는 직업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너무 얕고, 또 선입견이 매우 강하잖아요. 때문에 이를 뛰어 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결국 인물 자체에 몰입하기로 했죠. 한 여자로서, 주어진 상황에 맞는 감정에 치중했어요. 어떤 틀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면, 그건 진정 내 것이 아니니까.”
무대 인생 20년차. 이젠 눈 감고도 춤과 노래를 손쉽게 해낼 수 있을법한 베테랑 배우지만, 여전히 무대는 떨리는 공간이란다. 쌓아온 내공만큼 스스로에 대한 욕심, 그리고 팬들에 대한, 무대에 대한 책임감도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무대란 항상 새롭고 떨리는 공간인 것 같아요. 데뷔 초기엔 그저 실수할까봐 무서운 마음에 떨렸는데 이젠 설렘, 그리고 책임감에서부터 오는 긴장감이 있어요. 특히 커튼콜의 순간이 오면 이 모든 감정이 한 번에 폭발하는데…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어떤 날은 부끄럽고 창피할 때가 있고 어떤 날은 벅차오르는 감동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게을러질 수 없죠. 평생 이곳에 머물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에게 무대는 곧 인생이다. 넘치는 끼로 어디서나 주목을 받아 온 서지영은 의외로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뮤지컬에 뛰어들게 됐다고.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춤과 노래를 배우고 밑바닥부터 주연에 이르기까지 ‘독하게’ 이 길을 걸어왔다.
“그저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에 쉴 틈 없이 달려왔어요. 전단지를 붙이고 대사 하나, 노래 한 구절, 앙상블을 거쳐 주연에 이르기까지. 오디션은 일상이었고 무대는 늘 간절한 꿈이었어요. 힘든 순간? 물론 많았죠. 하지만 무대에 섰을 때 그 감동을 잊을 수 없기에 계속 걸어왔던 것 같아요. 매일 다른 관객들을 만나고, 새로운 상대와 호흡하고,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해왔다는 자부심으로 버텨온 것 같아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현실적으로는 체계적으로 개선된 부분이 많아 기뻐요. 실력 있는 후배들이 많은 것도 뿌듯하고요. 다만 조금 아쉬운 건 ‘무대에 대한 근본적인 갈망’ 같은 게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아요. 배역, 분량 등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무대 자체에 대한 애정을 좀 더 가지면 이 고된 과정이 결코 힘들지만은 않거든요.”
한층 진지해진 눈빛, 표정으로 그가 말을 이어갔다. “슬럼프가 찾아오면, 잠시 자기 개발을 위해 무대를 떠나겠다는 후배들이 많아요. 그때마다 저는 ‘어떤 공부든, 무대는 떠나지 마라. 무대 위에서의 호흡을, 감을 절대 잃지 말아라’고 조언해요. 분량을 떠나 내 역할에 대한 자부심, 무대에 대한 애착이 있다면 결코 지치지 않거든요.”
그 역시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면 또 다른 꿈을 꾸고, 다양한 종류의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고도 했다. 배우로서 많은 걸 이룬 그의 새로운 꿈은 이제 최고 파트너인 남편과 함께 하는 작업.
“평생 왕 연출과만 일하고 싶어요. 연출과 배우로 만났을 때 정말 행복하거든요. 무대에 서는 것도 그와의 작업도 모두 좋아요. 배우들의 장점을 너무 잘 알고 개발시켜주는 탁월한 연출가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죠. 배우들을 제각기 자유롭게 풀어놓는 듯 하지만 결국 자기가 그린 그림 안으로 끌고 오죠. 남편을 연출가로서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이유에요. 그리고 이제 함께 꿈을 이뤄나갈 겁니다.”
뮤지컬 ‘조로’에는 서지영을 비롯해 김우형, 휘성, Key, 양요섭, 소냐, 안시하, 김여진 등이 출연한다. 오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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