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학규’의 병세가 짙어진 후 ‘덕이’(이솜)와의 정사신. 감독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욕망에 탐닉하고 있는 정우성(41)을 걱정하며 말을 던졌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뭐 어때, 이건 심학규지 정우성이 아니잖아~”
충무로에서 가장 섹시한 배우로 손꼽히는 정우성이 화끈하게 벗었다. 어린 여자와 한 침대에서 나뒹굴고, 타락의 끝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30대에 벗었더라면”하고 아쉬워하지만, 마흔을 넘긴 지금이라서 더욱 처절한 ‘학규’가 될 수 있었다.
개봉 중인 영화 ‘마담 뺑덕’(임필성 감독)은 정우성의 첫 치정멜로다. 고전 ‘심청전’을 사랑과 욕망, 집착의 이야기로 비튼 작품이다.
정우성은 벗어날 수 없는 독한 사랑과 욕망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어가는 ‘심학규’ 역을 맡았다. 순진무구한 시골 처녀의 마음을 빼앗고, 술 여자 도박에 취해 비틀거리며, “사랑한다” 매달리는 그녀를 헌신짝처럼 버리다 파국을 맞는 인물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은 물론 옴므파탈의 정석을 보여줬다. 전라에 가까운 베드신을 선보였고, 눈빛 하나 손짓 하나, 호흡 하나에도 ‘심학규’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담아 표현해냈다.
“작업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있다. 고뇌하는 감독을 옆에서 지켜봤고, 물론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최선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선택을 믿는다. 짧은 순간이지만 청이(박소영)가 인상 깊게 나왔고, 이솜 씨도 스트레스가 많았을 텐데 ‘덕이’를 잘 표현해줬다. 나와 감독은 감정 전달에 있어 본질적인 ‘관통’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이 부분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런대로 잘 전달됐던 것 같다.”
- ‘학규’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였을 것 같다.
“동의할 수 없지만, 이해는 가는 캐릭터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학규’가 볼품없고 미웠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혼란스러웠다. 볼품없는 면을 덜어내고 조금 더 본능에 집착하는 수컷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새로운 연기의 발견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액션에 물이 올랐는데, 이 시기에 치정멜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의미는 없다. 남자에게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은 자아가 강하고 힘이 가장 좋을 때다. 그리고 자신의 논리로 강력하게 무장돼있는 상태다. 그래서 욕망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나이라 생각한다. 노출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의미없이 벗을 순 없다. 고민과 갈등이 담긴 정사신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 보다 극적 긴장감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40대에 만난 캐릭터라서 연기하기 더 편했을 듯 하다.
“30대 때 했다면 단순히 욕망에 눈이 먼 사람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40대가 되고나서 이 역을 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타협이나 고민, 합리화가 더해졌다. 그래서 더 두텁고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보여 질 수 있었다.”
-극중에서 담배를 멋지게 피우더라. 금연 욕구 무너지게 한다고 욕 먹을 수도 있다.(웃음)
“흡연욕을 일으키는 배우가 됐나.(웃음) 흡연 자체는 타락이라 볼 수 없고, 고뇌하는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좋은 액세서리다. 또, 습관적인 패턴을 갖고 공급하는 행위기 때문에 적절한 소품이다. ‘학규’의 타락은 본질적으로 ‘덕이’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겁 없는 도발에 있다. ‘학규’는 낮밤 구분 없이 좋아하는 위스키를 마시며, 자기 세상에 자기가 취해있다.”
-17세 연하인 신예 이솜씨의 연기가 자연스럽더라.
“이솜에게는 낯선 첫 도전이다. 도전에 대한 설레임이 캐릭터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직 20대 초반이기 때문에 갓 20대가 된 덕이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것 같다.”
-복수를 하기 위해 위장한 그녀와의 정사신에서 동공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눈이 멀었지만 욕정에 몸을 실었다. 쾌감을 어떻게 표현을 할까 고민했다. 학규의 남성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했다. 눈이 넘어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탐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님이 ‘좋은데 정우성이 이렇게 해도 돼?’ 하셨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학규지 정우성이 아니다.”
-‘학규’는 정말 나쁜 남자일까.
“원초적인 잣대로 보면 나쁜 남자다. 하지만 치명적인 감정이 어떻게 다가와서 그를 합리화시키는지는 개개인의 사정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학규’를 이해하고, ‘학규라면 이렇게 합리화 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감정선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다보니 객관화 시켜서 두 사람의 관계를 보게 된다. 나를 포함한 남자들은 여자가 유혹에 의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서 착각 속에 여자를 대할 때가 있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시골처녀 ‘덕이’는 그저 순진한 여자일까.
“‘덕이’는 나이가 어리고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작은 마을에 대한 답답함이 있다. 멋진 연애에 대한 이야기도 엄마와 나눈다. 그만큼 사랑에 있어서는 세속적이지 않다. 순수하니까 겁 없이 달려드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교수에게 딸이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사랑에 대한 걸림돌은 아니다. 도덕적 기준에 대한 판단보다는 사랑을 더 받아들이고, 여기에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캐릭터다. ‘덕이’(이솜)가 방에서 ‘덥다’고 한 것은 ‘학규’를 육체적으로 유혹하겠다는 행동이 아니다. 정말 열이 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인데, 옆에서 보기에는 도발적이고 위험한 행동처럼 보인다. ‘학규’가 볼 때도 맹랑하게 느낄 수 있다.”
-베드신은 보통 여배우에 눈길이 가게 마련인데, 앵글이 정우성을 훑더라
“근육보다는 등 위에 있는 ‘덕이’의 손이 주된 시선이다. 남자가 보고 싶은 베드신, 여자가 보고 싶은 베드신, 보여주기 위한 베드신 보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덕이’의 감정을 담으려고 했던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감싸다 보니 ‘학규’의 몸이 더 많이 보였던 것 같다. ‘덕이’의 입장, ‘덕이’를 탐닉하는 ‘학규’의 정서를 표현했다. 결과적으로 ‘덕이’의 대사에서 나타났다.”
-베드신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다.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겠다.
“힘들지는 않았다. 19금 치정 멜로를 뛰어넘기 위해 캐릭터의 본질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야 한다. 그렇기에 더 치열하게 임했고, 놓친 감정이 있을 때는 재촬영하기도 했다.”
-베드신 촬영은 얼마나 걸렸나.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틀 찍은 것 같다. 제자 ‘지은’과의 정사신은 욕망을 좇아 정신이 무너져가는 ‘학규’를 표현하려다 보니 오히려 ‘덕이’와의 정사신 보다 더 외로운 감정을 느꼈다. 스스로 판단해서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액션 연기가 없어서 심심하지 않았나.
“베드신도 액션 연기다.(웃음)”
-식스팩을 원없이 보여주더라. 몸 관리를 따로 했나.
“안 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학규’를 표현하려면 굳이 운동할 필요가 없었다. ‘신의 한 수’ 때 몸을 만들어놨다 운동을 안 하니 자연스럽게 표현이 됐다.”
-‘감시자들’을 시작으로 ‘신의 한 수’ ‘마담뺑덕’까지 올해 날개를 단 느낌이다.
“한국 영화 시장이 커지고 다양한 작품이 나왔지만 치열함이 없어져 아쉽다. 그동안의 연기에 100% 만족하지 않지만 늘 치열함이 있었다. 캐릭터를 전달하기 위한 치열함을 갖고 있었기에 대중이 연기의 미숙함도 사랑해준 것 같다. 이제는 20년 차 배우로 어느 정도 선배 배우 축에 든다. 솔선수범하고 싶다. 다작이든 소작이든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책임감과 치열함을 끝까지 가져가야 한다. 그걸 보여주고 싶다. 치열함이 사라진 작품들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제작 중인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후반 작업 중이라고 들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꼈다. 작업하면서 제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리더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후배들에게 어떤 것을 느끼게 해주고 보여줘야 할까’ 막연했는데, 이런 것들을 습득하게 됐다. 성취감이 있었고 값진 경험이었다. 앞으로 후배 감독이나 신인 감독의 작품을 선배로서 성장시켜줄 수 있는 작업을 해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정우성은 이제 배우를 넘어 하나의 대명사가 됐다. ‘대한민국에서 정우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일인가.
“감사하다. 부끄럽다. 이런 칭찬을 많이 듣지만 체감하지는 못한다. 항상 영화를 동경했지만 스타를 동경한 적은 없다. 여배우를 추앙한 적도 없다. 어릴 적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하기 바빴다. 자리 잡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향해서만 달렸다. 20대 때는 배우가 됐고 좋았다. 가끔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다 팬들이 달려들면 ‘왜 나한테 이러지? 포장마차는 가면 안되겠구나’는 생각만 했다.(웃음) 이 직업이 갖고 있는 특성을 익히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30대 때는 작업에 대해 나른해졌다.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기 전에 이미 지쳤던 것 같다. 요즘에는 칭찬을 들으면 부담스럽다. 어릴 적부터 이것을 의식하고 즐긴 적이 없었다. 현재는 의식이 되고, 나를 좋게 봐주는 것이 때론 무섭다. 나도 사람이고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엔 무엇을 하나.
“맥주 한 캔을 따거나 와인 한 잔을 마신다. 아니면 창 밖을 바라보며 넋 놓고 앉아 있는다. ‘저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가는 거지?’란 생각을 한다. 음악을 들을 때도 있고 ‘SNL’을 볼 때도 있다. 촬영장 가기 전 남는 시간엔 극장에 가기도 한다. 영화 볼 때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런 시간에 자신이 나오는 광고를 볼 때도 있지 않나.
“못 봤다. 소니 광고는 잘 나온 것 같다.”
-정우성에게 영화를 빼면 뭐가 있을까.
“백수다. 되고 싶었던 배우가 됐다. 영화가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다. 전부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말 좋고 감사하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연기하고, 무모할 정도로 액션 연기를 한다. 요즘에는 더 미치고, 더 고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30대 때 연기에 대해 고민을 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온전한 정우성으로 더 각인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관전 포인트는?
“일찍 성공한 ‘학규’의 실수는 현실 속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다 ‘학규’를 통해 자각하기도 한다. 치정멜로지만 윤리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는 영화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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