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유의 콜라보레이션 신곡 '소격동'이 2일 0시 공개되자마자 국내 주요 음악사이트 실시간 차트 정상을 싹쓸이 했다. 이날 오전 9시 현재 멜론 엠넷 지니 등 10개 음악사이트 1위는 모두 '소격동'이다.
약 5년 만에 새 음악을 들고 나온 서태지다. 그간 그를 둘러싼 논란이 많았다. 자신의 목소리보다 '국민여동생' 카드를 먼저 꺼내든 그의 행보를 두고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호기심에서라도 그의 음악을 들어봐야 했다. 음원 차트 1위는 당연히 예상됐다.
서태지와 아이유의 파급력은 막강했다. 뒤늦게 알려진 그의 사생활 탓에 배신감을 느껴 등을 돌렸던 일부 사람들조차 "역시"라는 감탄사를 토해내야 했다.
오롯이 음악만 놓고 봤을 때 그의 프로듀싱 역량을 평가절하 하기 어렵다. 1980년대 유행했던 신스팝 장르의 '소격동'은 서태지를 통해 한층 세련된 사운드로 거듭났다. 몽환적이면서도 멜로디 라인이 정확히 귀에 꽂히는 요즘 트렌드와 부합한다.
뮤직비디오에도 그리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서태지 특유의 감성이 담겼다. 마치 낮은 담장과 가로등을 돌아 동네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듯한 시각적 심상이 잘 드러났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소격동'이라는 시대적 공간이 던지는 의미가 음악을 듣는 이의 가슴을 더욱 세게 두드린다. 서태지 답다. 노래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았을 때 큰 울림을 갖고 있는 법이다. 서태지는 이를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서태지 측이 공식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으나 '소격동'은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의 그늘이다. 무소불위 권력의 상징인 국군기무사령부가 한때 자리잡았던 곳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운동권 학생 6명이 의문사한 곳이기도 하다.
서태지는 이 '소격동'에서 '어느 날 갑자기 그 많던 냇물이 말라갔죠. 내 어린 마음도 그 시냇물처럼 그렇게 말랐겠죠/ 소소한 하루가 넉넉했던 날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라는 서정의 힘을 보여줬다.
1995년 반 사회적 감정을 담았다는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됐던 그의 곡 '시대유감' 정신이 부드럽게 녹아들었다는 해석이 나올 만하다. 시대의 부조리를 노래하고, 억압에 항거했던 '문화 대통령'으로서 그의 면모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서태지가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독창성이다. 혹자는 그를 "'선구자'가 아닌 '음악 밀수자'일 뿐"이라고 깎아내린다. 그가 가요사에 남긴 음악적 발자취는 인정하나, 한국에서 유행하지 않은 장르의 외국 음악을 잘 가공해 널리 알렸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조차 대단한 능력이지만 그에게 늘 시비가 붙는 '표절 논란'은 이 때문이다. '천재성'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가수이기에, 유독 딱딱한 잣대를 그에게 들이대는 대중이다.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번에도 '소격동'은 스코틀랜드 출신 혼성 그룹 처치스(Chvrches)의 곡 '더 마더스 위 쉐어(The Mother We Share)'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소격동'은 표절이 아니다.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의견이 살짝 있을 뿐이다. 서태지가 바보가 아닌 이상, 국내에도 꽤 마니아 팬이 있는 그들의 곡을 차용했을 리 없다.
전문가들은 "장르적 특성상 일부 리듬과 악기 사운드가 비슷해 오해를 받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처치스의 보컬 로렌 메이버리(Lauren Mayberry)를 보면 아이유가 쉽게 떠오르는 점도 이러한 의혹을 부추기는 데 한 몫 작용했으리라 여겨진다.
아직 뚜껑은 다 열리지 않았다. 한꺼풀 벗었을 뿐이다. 일단 서태지가 선택한 아이유의 '소격동'은 음악 팬들을 충분히 만족하게 했다. 아이유가 아닌, 서태지가 부를 '소격동'(10일 공개 예정)을 기다리는 어린 팬들도 크게 늘었을 테다. 향수에 젖어든 기성 팬의 귀환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는 20일 발매되는 그의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다만 서태지 덕분에 그룹 처치스의 국내 팬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처치스는 오는 11월 30일 서울 광장동에 있는 악스코리아에서 내한공연을 연다. 10월 18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2만 5000명 규모의 컴백 공연을 여는 서태지에 비하면 국내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미미했던 터다. 아마도 내한한 그들이 기자간담회를 한다면 “서태지를 아느냐”는 다소 유치한 질문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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