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화려한 핑크색 머리로 ‘난 아무 것도 몰라요’ 식의 삶을 사는 품행장애 오소녀 역할을 워낙 잘 소화했던 탓일까. 배우 이성경의 실제 모습도 오소녀의 거침없는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앞서 모델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대중들과 만난 이력과 더해져 어느새 이성경은 ‘센 언니’ 이미지를 가지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성경은 최근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캐릭터와 달리, 겸손하고 생각이 많은 배우였다. 쉬어버린 목소리 때문에 인터뷰 내내 미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이나, 말끝마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 하고 감격에 젖은 모습에서 이성경의 진솔한 성격이 드러났다. 미래의 자신을 떠올리는 모습에서는 ‘애어른’스러운 면모도 엿보였다.
↑ 디자인=이주영 |
“모델이 된 것이 제 의도가 아니었던 것처럼, 연기도 ‘할까, 말까’가 아니라 ‘당연히 안 해’였어요. 섬세한 스타일도 아니고, 똑똑하지도 않아서 실수를 할 게 분명한데 배우라는 것이 주목받고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하는 직업이니 자신이 없었죠. 그런 와중에, 갑자기 김규태 감독님과 만남이 이뤄진 거예요. 영광이었다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캐스팅이)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해, 말어?’가 아니라 (김규태 감독님인데) ‘당연히 해야지!’ 이렇게 된 거예요.(웃음)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게 됐는데, 정말 재밌고, 재밌으니 더 잘하고 싶고. 어느 순간 연기자가 되어 있더라고요. 정말 운이 좋았던 거죠.”
이렇게 시작한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이성경은 예능의 떠오르는 대세 이광수와 호흡을 맞추게 됐다. 이광수는 품행 장애의 오소녀에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역할로 등장했다. 이성경은 이광수를 아직도 극중 이름은 “수광 오빠”라고 칭하며 절친한 사이임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키스신은 단연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꼽혔다. 친한 사이라 키스신을 앞두고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았지만, 이성경은 “오히려 담담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처음 촬영장에 들어섰을 때 다들 눈빛이 ‘음, 어서 와’ 이런 표정이었어요.(웃음) 그래서 생각했죠. ‘아, 이거 며칠 동안 놀리겠구나’하고요. 역시나.(웃음) 하지만, 키스신은 오소녀가 유일하게 용서받을 수 있고, 받았던 사랑을 박수광(이광수 분)에게 줄 수 있고, 수광이도 처음으로 소녀에게서 사랑을 받으면서 치유 받는 순간이었어요. 여러 모로 중요했죠. 둘 다 그런 점을 알았기 때문에 촬영 때에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배려한 것 같아요. 장난기는 쏙 빼고 차분하게 키스신에 임했어요. 그런 덕분에 차분함을 잘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쁠 뿐이에요.”
↑ 사진=곽혜미 기자 |
“여행 내내 정말 가족 여행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성동일 선배님, 김규태 감독님 자제분들까지 참가해서 아이들이랑 다 같이 손잡고 뛰놀고, 같이 씻기도 하고. 지금도 너무 보고 싶고 애틋해요. 엄청난 대선배님들이 어떻게 스태프들과 새파란 막내들과 섞여서 버스 타고 여행 다니고 그러겠어요. 선배님들의 겸손함과 배려가 대단하신 거죠. 정말 행복했어요.”
또한 그는 이렇게 받는 선배 연기자들의 사랑과 지혜를 고스란히 간직했다가 이를 베풀 상대가 생기는 먼 훗날, 꼭 후배들에 똑같은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성경은 ‘괜찮아 사랑이야’ 속 선배 연기자들의 모습에서 ‘지혜, 사랑, 겸손’을 배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배님들께는) 저보다 더 훌륭한 후배들이 분명 많을 텐데도, 저는 운 좋게 ‘괜찮아 사랑이야’를 찍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었잖아요. 제가 선배님들께 해드린 것도 없고,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데…. 근데 그런 것들을 저만 받으면 안 되죠. 열심히 해서 좋은 연기자, 그리고 좋은 선배가 됐을 때 현장 안에서 후배들에게 선배님들이 보여주셨던 훌륭한 것들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보답하는 길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드라마가 끝난 지 벌써 한 달. 선배 연기자들 사이에서 당당한 연기로 눈도장을 찍은 이성경의 다음 작품이 궁금했다. “아직 정해진 바가 아무 것도 없다”며 이성경은 ‘마음 급하게 먹지 말라’는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신중하고 천천히 배우의 길을 밟아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인 말은 의외였다. “사실 언젠가는 뮤지컬 배우를 꼭 하고 싶어요”라는 것이다.
↑ 사진=곽혜미 기자 |
“제가 학창 시절에 처음으로 ‘금발이 너무해’ 뮤지컬을 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2, 3년 동안 하루에 5, 6시간씩 뮤지컬 영상을 찾아보고 노래들을 찾아듣고 있는 절 발견했죠. 뮤지컬의 노래와 대사들 하나 하나 다 외우고 있었고요. 뮤지컬 무대 위에 서서 조명 때문에 관객석이 잘 안 보이고, 뒤의 조명에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 사운드가 울리는 모습과 트레이닝복을 입고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연습하고 있는 모습들까지. 어느 순간 제가 그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거에요. 그 때부터 저는 뮤지컬 배우를 정말로 하고 싶었죠. 모델을 할 때에도 아는 사람한테 혹은 인터뷰 할 때 늘 뮤지컬 배우를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말을 해야 제가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을 할 거니까.”
그는 뮤지컬에 대해 “두근두근해서 어쩔 줄 모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눈을 반짝이다가도 금세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은 아직 연기도 채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연기자가 무조건 메인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가 어느 정도 연기자로 인정을 받고, 자리를 잡은 후에 뮤지컬을 하고 싶어요. 그래야 폐가 안 돼요.(웃음) 오디션에 응시해서 배역을 잡을 수 있을 만큼 뮤지컬을 더 공부해야죠. 나중에는 실력을 쌓아서 (보는 분들이) 인정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옥주현 선배님처럼요. 선배님은 정말 멋있어요. (실력이) 최고이신데도 불구하고, 계속 관리하시고, 더 배우시려고 하시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이성경은 풍부한 표현력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말솜씨도 뛰어났다. 이런 그에게 MC나 라디오 DJ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다재다능이라는 단어도 노래, 춤, 말솜씨까지 두루 갖춘 이성경에 꽤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에 겸손하게 손을 저으며 “아직은 연기에 매진해야할 때”라고 웃었다. 자신의 모든 열정을 연기자에 ‘올인’한 이성경의 다음 행보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도 좋고, 가족 이야기도 좋아요. 배꼽 뺄 만큼 웃긴 내용도 좋고요. 망가지는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망가지는 거 정말 잘 하거든요. 하지만, 사실 지금은 그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 전부 다 새롭고 재밌을 것 같아요.”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
디자인= 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