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차태현(38)은 기분이 좋다. 주위 친구들 ‘77년 용띠클럽’의 김종국, 홍경민 등이 모두 영화 ‘슬로우 비디오’(감독 김영탁)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산책길을 걸어간 것 같다”는 평가가 그를 즐겁게 했다.
“다들 나이가 들어서 이런 잔잔한 영화가 좋았나 보더라고요. 저도 나이가 드니깐 이런 영화가 끌렸던 것 같고요. 흥행 결과는 모르지만, 일단 (남)상미도 정말 좋아라 하던데 배우들이 마음에 들어 하면 할 일은 모두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웃음)”
10월 2일 개봉하는 영화 ‘슬로우 비디오’는 찰나의 순간까지 볼 수 있는 남자 여장부(차태현)를 주인공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도 장부에게는 느린 화면이다. 야구공을 빠르게 던져도, 숟가락에 숫자를 써 던져도 백발백중 다 잡고 맞춘다. 발달한 동체 시력을 인정받아 CCTV 관제센터의 에이스로 떠오르게 된 후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웃음과 감동을 적절하게 버무렸다.
‘헬로우 고스트’에서 귀신들의 정체를 알고 눈물이 터져버린 상만(차태현)을 보고 관객은 울고 짰다. 반전이 탁월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반전을 기대했다면 관객은 약간 실망할 것 같다. 차태현도 인지하고 있다.
“사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줄 때도 ‘이 작품에 뭐가 있을 것으로 생각할까?’하는 것 때문에 어떤 부담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처음 봤는데 뭐가 없긴 했죠.(웃음) 그런데 만들면서 시나리오보다 더 많은 게 담겨 있는 것처럼 나오더라고요. 완성품을 보니 글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지점이 있어 좋았어요. 또 아내가 탁 감독님이 이번에 진짜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이걸 왜 했는지 알겠다고 하던데요?”
차태현의 눈이 안 보이니 얼굴 전체를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싫어할 법도 하다. 차태현은 “팬분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좋다고 하더라”고 했다. 다만 “웃을 준비를 하고 온 분들은 실망할 수 있다”고 짚었다. “예고편 나오는 거 보고 사실 깜짝 놀랐어요. 홍보할 때 코미디 영화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웃기게 나왔더라고요. 웃음 포인트가 있긴 하지만 사실 전 처음부터 끝까지 멜로영화라고 생각하고 찍었거든요.(웃음)”
그동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 등에서 웃음을 줬던 차태현. 그는 “오랜만에 멜로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혼한 지 8~9년이 된 그는 “드라마를 보면서 불현듯 나도 다시 한 번쯤 멜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슬로우 비디오’ 출연 제의가 왔다”고 회상했다. 남상미와 커플 연기를 한 그는 이번에는 자신이 남상미를 추천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앞서 영화 ‘바보’에 하지원을 추천했는데 흥행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그다. 이에 앞서 ‘파랑주의보’도 잘 안 돼 송혜교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 이후로 여배우 추천은 안 한다”고 웃었다.
“솔직히 상미씨가 맡은 역할은 처음에는 다른 신인배우가 할 수도 있는 역할이었거든요. 상미씨가 봉수미 역할을 해주는 것에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예쁘게 나오더라고요. 우리 영화는 이 정도 수위가 딱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여배우가 같이한다고 하면 그저 고맙죠. 하하.”
차태현은 최근 영화 ‘엽기적인 그녀2’ 촬영에도 들어갔다. 지난 2001년 크게 흥행한 작품의 속편이다. 걸그룹 에프엑스의 빅토리아와 호흡을 맞춘다. 견우를 자신이 꼽는 최고 캐릭터 중 하나로 생각하는 그는 “불현듯 스크린에서 견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이 기회”라고 좋아했다. 다만 걱정이 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두 달 정도 집을 비워야 하는 것. “아이가 하나만 있어도 힘든데 세 아이 모두 힘든 아이들이 걸렸다”고 허탈한 웃음을 보이는 차태현은 그래도 “영화 촬영 중간중간 ‘1박2일’ 촬영이 있어 서울에 올라올 테니 다행"이라고 했다. 말은 힘들다고 했지만, ‘아이들 바보’ 아빠다.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