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상미(30)는 ‘얼짱’ 출신으로 불린다. 몇몇 여배우들과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사실 그는 한 햄버거 브랜드의 ‘XXXX걸’ 출신인데, 키워드가 같이 묶여 따라다녔다. 벌써 10년도 넘었지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말이다. 이 말이 이제 지겨울 법도 하고, 싫어할 줄 알았는데 긍정적이다.
남상미는 “처음에는 정말 그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됐다”며 “미워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면 예쁘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어질 텐데, 그렇게라도 기억되는 게 어디인가”라고 웃었다.
그렇다고 남상미가 얼굴만 믿고 연기를 소홀히 한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유명해졌고, 대학 진학을 위해 연기 학원에 다녀야 했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학원에는 자신의 꿈을 위해 오디션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 제가 그들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걸 알게 됐죠. 이건 잘못된 것 같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든 연기자로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죽어라 연습했어요.”
각종 작품에 참여하며 내공을 쌓았다. 10월 2일 개봉하는 영화 ‘슬로우 비디오’에서도 그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찰나의 순간까지 볼 수 있는 남자 여장부(차태현)를 주인공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도 장부에게는 느린 화면이다. 야구공을 빠르게 던져도, 숟가락에 숫자를 써 던져도 백발백중 다 잡고 맞춘다. 발달한 동체 시력을 인정받아 CCTV 관제센터의 에이스로 떠오르게 된 후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웃음과 감동을 적절하게 버무렸다. 극 중 자연스럽고 털털한 모습을 보이는 남상미는 장부의 첫 사랑으로 나온다. 방금 샴푸하고 나온 머리에 옷 스타일도 남다른 수미. “내 성격과 꼭 맞는 캐릭터”라고 좋아하는 남상미에게, 의외의 모습이라고 했더니 깔깔 웃는다.
김 감독은 사실 남상미 말고 다른 배우를 고려했지만, 남상미의 숨겨진 모습을 보고 반했다. 극 중 마트에서 장을 보고 비닐봉지를 들고 나풀나풀 내려오는 장면은 감독이 생각한 봉수미와 100% 일치했다. 남상미는 “최고의 칭찬이었다”고 기억했다.
물론 극 중 캐릭터가 편안한 나머지 체중 관리에 실패해 살이 약간 올라 김 감독이 볼멘소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상미는 “감독님이 ‘남상미 체중관리 실패’와 관련해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며 “감독님이 나를 완전히 내려놓으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마른 수미도 좋았겠지만 건강한 느낌의 수미도 나는 괜찮은 것 같았다”고 나름 만족해했다.
남상미는 이번 촬영 현장에서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조명 감독과 촬영 감독 덕분인지 예쁘게 나온다. 아니, 매력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털털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나와도 예뻐 보이면 좋은 거니까요.(웃음) 애정을 담아서 찍어주신 것 같아요. 영화 보고 나서 ‘절 이렇게 사랑스러워해 주신 줄 몰랐잖아요. 감사해요’라고 했어요.”
‘슬로우 비디오’에 참여해 무척이나 만족해하고 있는 남상미. 그는 “차태현, 오달수 선배님이 캐스팅된 뒤 시나리오를 받아 봤는데 읽는 중에 두 분이 튀어나와서 연기하는 것 같이 재미있었다. 정말 두 분과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즐거워했다. 그러면서 “요즘 시대가 너무 화려하고 자극적인, 또 빠른 것들만 좋아하는 것 같은데 우리 영화는 아날로그 감성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이때 한 번쯤은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을까 한다”고 짚었다.
전작 ‘조선총잡이’에서 함께한 배우 이준기와는 달리 차태현이 유부남이라 다른 느낌이 있을 줄 알았는데 “더 신뢰가 갔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친구 같이 잘하는 모습, 연신 통화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남상미는 “정말 멋지고 사랑스러웠다. 유부남이라서 설렘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고민은 전혀 없었다”고 추어올렸다.
차태현을 보고 결혼에 대한 꿈이 생긴 것 같다고 하니 인정한다. “요즘 아이들 나오는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제가 아이와 강아지를 좋아해요. TV에 아이들이 자주 나오니 내 애들을 갖고 싶더라고요. 주변에서 언니들이 ‘야, 예쁜 모습만 나오는 거야’라고 해도 ‘왜, 9번 힘들어도 한 번 예쁜 모습이면 그게 낙 아냐?’라고 했죠. 방송에서 차태현 오라버니 아이들도 나온 걸 봤는데 사랑스럽더라고요. 예전에는 배우자 될 사람이 제 일을 불안해하면 안 할 자신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조금 바뀌었어요. 나를 사랑한다면 내 모든 걸 좋아해야 한다고요.(웃음) 그래도 중요한 건 내가 현모양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 꿈을 접었는데 이제 다시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헤헤.”
이제 연기한 지 11년이 됐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를 찍고 ‘이 길이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 고민하기도 했다는 그지만, 기적같이 단막극 ‘기적 같은 기적’을 찍으면서 고민과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자신의 길이 확실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상미는 계속 또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