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이라는 이름을 쓴 한 SNS 사용자가 "'유민이 아빠(김영오 씨)'야!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네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라는 글을 최근 게재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칭한 '유민이 아빠'는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사망한 고(故) 김유민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인 김영오 씨다. 김씨는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일이 넘도록 단식 농성을 벌이다가 건강이 악화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 23일 매일경제 스타투데이가 해당 논란을 처음 공론화하긴 했으나,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기정사실화 돼 시끌시끌했던 터다. 이산은 '몬테크리스토', '햄릿', '문제적 인간 연산' 등 뮤지컬과 다수 연극에 출연한 배우다. 네티즌은 그가 과거 본명을 쓰던 때 인터넷 아이디와 현재 아이디가 같고, 배우 프로필과 현장에서 찍은 사진의 인상착의가 비슷한 점을 들어 동일 인물로 거의 단정지었다.
본인 확인이 필요했다. 한국뮤지컬협회 측은 이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전화통화에서 "수 십 건의 항의와 이메일이 쏟아져 배우 이산 씨가 본 협회원임은 확인했다"며 "다만 본인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보지 않아 정확한 정황과 논란 글의 진위 여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이산 당사자가 아니거나 사이버 해킹 등에 의한 글이라면, 당사자에게 심각한 피해가 될 수 있다. 이에 그의 연락처를 직접 알려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한국뮤지컬협회 측은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양해를 구하며 거부했다.
문제는 파장이 커지면서, 엉뚱한 곳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는 점이다. 동명이인 가수의 억울한 사연은 약과다. 일명 '네티즌수사대'는 이번에도 실력을 발휘했다. 그의 페이스북 계정 친구를 찾아내 가수 A, 배우 B, 자칭 보수논객 C 등과의 친분을 밝혀냈다. 자칭 보수논객 C는 그렇다치더라도 가수 A와 배우 B까지 '이산'과 묶여 한통속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산이란 배우가 단역으로 출연하는 지도 몰랐던 영화 '해무'는 난데 없이 '보이콧' 도마 위에 올랐다. 또한 그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가운데 한 장은 가족사진처럼 보였는데,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이산이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쏟아부었던 악담과 다를 바 없이 저주를 퍼부었다.
혹여나 노이즈마케팅이라면 그는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24일 현재 논란이 된 '이산'의 SNS 글들은 모두 삭제되거나 비공개 처리됐다. 해킹은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굳이 유명 배우도 아닌 그의 이름과 얼굴을 팔아 불순한 의도로 공개적인 인물을 노려 비난할 해커는 없을 듯 하다. 배우 이산 본인 역시 당당하다면 이같은 사실을 먼저 밝히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이산은 앞서 또 다른 SNS 글에서 "배우는 본명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을 갖는다죠. 기꺼히 '사람이 아닌 길'을 걸어 보겠습니다. 제가 제 인생에서 선택할 카드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입니다. 응원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단순히 정치적 성향에서 나온 그의 다듬어지지 않은 인격인지, 아니면 '사람이 아닌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자의 계산된 전략인지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와 똑같은 길을 우리가 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람이 아닌 길' 말이다. 그 어느 누구나 단체도 아닌, 오직 본인의 해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 이상 '이산'으로 인한 제 2의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
fact@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