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해무’는 영화 ’변호인’과 ’7번방의 선물’ 등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신세계’와 ’감시자들’ 등을 잇달아 흥행시키며 빠르게 치고 올라온 투자배급사 NEW의 신작이었다.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이 연극 무대에서 사랑받은 ’해무’의 기획ㆍ제작을 맡았고,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배우 김윤석과 인기 많은 JYJ의 박유천이 주인공으로 참여했으니 영화계 관심은 높았다. 특히 CJ는 봉 감독과 손잡고 직전 연출작 ’설국열차’를 흥행시켰으니, 그가 연출자가 아닌 제작자로 나섰다고 해도 꽤 긴장했을 터다.
정태성 대표는 시사회장을 찾는 것으로 ’해무’를 향한 관심을 표했다. 쇼박스의 ’군도: 민란의 시대’나 롯데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도 마찬가지였다. 1년 중 절반을 해외 일정을 다니는 정 대표가 모든 시사회에 다 참석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올여름 영화 시장은 달랐기에 각 배급사 대표 주자들을 빨리 만났다.
’해무’ 시사회 후 정 대표가 이끄는 ’명량’은 긴장했다. 하지만 ’해무’를 향한 호불호가 극명했다. 돌풍을 일으키진 못했고, 13일 개봉한 ’해무’는 18일까지 영진위 기준으로 93만여 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명량’을 찾는 관객들이 여전히 많았고, 최약체로 평가받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도 뒷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개봉한 ’군도: 민란의 시대’를 더해, 메인 투자배급사는 4파전을 벌였으나 현재 CJ의 압승으로 기울고 있다. 현재 정 대표는 ’명량’의 대박 흥행에 미소 짓고 있을 게 틀림없다.
올해 여름 시장 대결은 의미가 컸다. CJ가 돈을 많이 번 것을 짚는 게 가장 쉽겠지만, 새로운 기록을 세워나가고 있는 점이 더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모든 영화의 비교 기준은 ’명량’이 됐다. 지난 16일 오전 11시 30분 기준으로 외화 ’아바타’가 가지고 있던 한국 영화 최고 관객수(1362만 4328명)를 제치고 1362만 7153명을 기록했다. 18일 영진위 기준으로는 1462만2620명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68만), 역대 최고의 평일 스코어(98만), 역대 최고의 일일 스코어(125만), 최단 100만 돌파(2일), 최단 기간 1000만 돌파(12일) 등 연일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쉽게 깨질 것 같지 않은 수치들이다. 더욱이 여전히 관객들이 ’명량’을 찾고 있다는 점은 무서울 정도다.
CJ는 여전히 투자배급사 랭킹 1위이긴 하지만 사실 입지가 줄고 있었다. 최근 흥행 영화는 상대적으로 적은 듯 보였다. 흥행 못지 않게 참패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를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CJ는 ’명량’을 통해 대기록을 세웠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혹자는 평론가 진중권과 허지웅이 ’명량’을 놓고 벌인 설전이 ’명량’의 흥행에 도움이 됐다고 하는데, 두 사람은 솔직히 대중을 극장으로 이끄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오롯이 이순신 장군의 힘이라는 평가가 설득력이 높다. 장군의 리더십에 매료된 관객은 극장을 찾고 있다. 물론 ’명량’의 흥행에 스크린 독점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한국영화 전체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입만 아픈 일이다. ’명량’의 김한민 감독도 스크린 독점 문제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다.
’해적’과 ’군도’, ’해무’는 이 상황이 답답하다. ’해적’이 순항하는 듯 보이고 있으나 기대만큼은 아니다. ’군도’는 이미 퇴장했고, ’해무’도 초반 반응이 시원찮아 웃을 수 없다. 물론 ’명량’이 잘돼 상대적으로 관객이 적은 듯 보일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터졌다’고도 할 수 없다.
CJ도 웃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명량’이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일을 만들어냈건만 내부 문제가 심각하다. 문화 선도 기업을 표방하는 기업인 CJ는 이재현 그룹 회장이 1600억 원대 횡령·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방송ㆍ가요ㆍ영화 등의 부문은 이미경 부회장의 손에 달려 있다고는 하지만 그룹 수장의 부재는 직원들의 사기 문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지금 신경 써야 할 다른 사업이 한두 개가 아니니 상대적으로 엔터테인먼트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이 회장 관련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은 흥행을 달리고 있는 ’명량’ 이야기를 꺼냈다. "CJ그룹은 문화기업이다. 문화는 정신적인 면도 중요하다. 이순신 장군은 불굴의 투지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그렇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명량’의 흥행에 CJ가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웃어서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