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여기에 인기 아이돌 그룹이자 연기자로도 자리매김한 박유천을 주인공으로 투입했다. 어렵다는 여수 사투리부터 다양한 감정 변화, 몸싸움 등 그의 스크린 데뷔 연기는 합격점이다.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돌이 무슨 연기?'라는 편견은 접어둬도 된다. 다만 욕망에 사로잡힌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변하는 캐릭터인데 폭발력이 기대만큼 크지 않아 아쉽긴 하다.
하지만 이는 몇십 년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이 뿜어대는 독기가 더 강렬하게 전해져서인 듯하다. 대선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그 정도가 낮을 뿐이다. 도모한 일이 어긋나 최악의 결정을 내린 뒤 "이 배에서는 내가 대통령이고 판사며, 아버지야"라는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석)는 관객을 살 떨리게 할 정도다.
다른 배우들도 매력적이다. 인정 많고 사연 많은 기관장 완호 역의 문성근, 행동파 갑판장 호영 역의 김상호, 거친 성격의 롤러수 경구 역의 유승목, 욕구에 충실한 선원 창욱 역의 이희준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초반부터 전해지는 바다의 거칠고 어두운 단면들에서 이 영화가 웃음기 있는 작품이 아님을 알리듯 유쾌한 캐릭터는 없다. 죽음의 순간에도 원초적인 욕망만을 좇는 창욱이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내긴 한다. 물론 그 웃음은 비소(誹笑) 혹은 고소(苦笑)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홍일점' 한예리는 중요한 역할이다.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한 여섯 명의 선원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해무(바다안개) 속 밀항자들을 실어 나르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의 중심에 홍매 역의 한예리가 있기 때문이다.
'해무'는 순박해 보이는 뱃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오랜 시간 우정이나 선후배의 정을 나눈 것 같은데 이들이 변하는 이유는 욕망이 그 원인이다. 원초적이든 거대한 것이든 그 욕망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다. 경제 위기 시절, 폐선 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선족 밀항이라는 선택을 통해 희망을 품으려 했으나, 좌절감을 안게 된 선원들. 욕망 앞에서 어느새 변해버린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난다. 가장 순박한 것 같았던 동식(박유천)도 예외는 아니다.
이 과정에서 선원들의 심리 변화가 중요한 영화답게 긴장감도 있고 스릴도 느낄 수 있다. 잔혹한 장면들도 몇몇 등장해 눈을 감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의 영화에 코믹한 요소도 넣으려고 애를 썼다. 망망대해 바다 위 배 안이라는 협소한 장소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심심할 틈 없이 영화를 꾸려나가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각각의 캐릭터들과 상황, 극 전개가 매력적인 것 같긴 한데 전체적으로 본다면 심리 스릴러의 매력은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철주가 왜 배 안의 독재자가 되는지, 동식이 홍매에 끌리는 이유 등이 배우들이나 감독의 설명이 없다면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홍매와 동식의 사랑이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도 하다.
감독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 결말도 호의적이지 않다. 심리 묘사는 특히 아쉬운 지점이 있다. 물론 뱃사람이 아니라서 이해 못 했거나, 원작인 연극을 못 봐서였을 수도 있겠다. 감독과 배우들이 고생했다는 정도는 누가 봐도 오롯이 드러난다.
2001년 전남 여수에서 발생했던 '제7태창호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오는 9월 4일 개막하는 제39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한국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초청받았다. 111분.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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