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동원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며 “최선을 다한 만큼 작품이 잘 나와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서 악의 축 ‘조윤’을 연기한 그는 “능동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전작들의 악역 캐릭터와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곱게 다린 도포를 입은 ‘조윤’의 눈빛엔 한이 서려있고, 얼굴엔 독기가 가득했다.
‘조윤’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서자의 한을 품고 있다. 특유의 깊고 큰 눈망울은 이같은 내면을 표현하는데 십분 활용됐다.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장검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서늘하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유려하면서도 매혹적인 검술실력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촬영 전부터 넉 달간 검술훈련에 매달렸고, 하루에도 몇 백 번씩 집과 액션스쿨을 오가며 목검을 휘둘렀다. 하정우조차 “(강동원이) 너무 열심히 해 내가 버거울 정도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다. “끝내기가 아쉬웠다. 더 찍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다”며 “내가 관객들의 기대감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부담이 있다”고 털어놓는 그다. 촬영을 끝낸 후 왈칵 눈물을 쏟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군도’는 강동원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스스로도 “30대 첫 작품이고, 1장을 접고 2장을 막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거의 비슷했다. 조금만 더 힘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1차 편집 끝나고도 봤는데, 개인적으로 캐릭터가 조금 더 무서웠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개봉 후 몇 번 더 볼 계획인가.
“영화는 더 안 볼 것 같다. 보통 한 두 번 밖에 안 본다. 이번에는 많이 봐서 지겹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오랜만의 컴백작이라 부담감도 있을 듯하다
“사실 흥행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출연배우로서 안도가 된다. 이번에는 넘길 것 같아서 흥행에 대한 부담보다 기대감에 대한 부담이 있다. ‘내가 관객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이다. 사람들이 ‘천만은 갈 영화’라고 하니까 못 가면 뭔가 잘못한 느낌이 들 것도 같다. 우리 영화는 방학 시즌에다 블록버스터라서 흥행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했고, 영화가 잘 나와 만족한다. 감독님은 ‘천만 넘지 않으면 한달 간 집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한다. 천만 넘으면 우리끼리 하와이에 가자고 약속했다. 넘지 않아도 가기로 했다. 정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멋짐과 비주얼을 담당했다. 촬영 기간 중 미모관리는 했나
“전혀! 한 번도 신경 안 썼다. 산 속에서 피부 관리를 할 수가 없다. 얼굴이 잘 붓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리고 비주얼 담당이 아니다. 감독님이 ‘멋있는 조윤이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셨다. 그냥 멋짐 담당이었다.”
-멋진 조윤은 어떤 것이라 생각했나
“뛰어난 실력이다. 군도 무리들을 제압하는 게 멋져야 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4~5개월간 준비했다.”
-이번 작품은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캐릭터는 당연히 좋은 시나리오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 감독님을 만났다. 감독님 작품 중에선 ‘범죄와의 전쟁’ 밖에 못 봤다. 감독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강동원과 해보고 싶다’고 한 얘기를 전해 듣고 술자리를 제안했다. 그 후 감독님이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다른 욕심은 없는데 좋은 작품 욕심은 많다. 맞아 죽는 역이라도 좋은 역할을 하면 좋다.”
-그때 ‘군도’ 이야기를 나눴나
“감독님은 원래 다른 작품을 하고 있었다. ‘이런 아이템이 있으니 다음에 같이 해보는 것이 어떤가’ ‘악역이라도 괜찮냐’ ‘동원씨가 도치를 하기엔 정우씨가 너무 산적 같지 않냐’고 물어보셨다.(웃음) 내가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하냐. 상관없다’고 했다.”
“봉준호 감독님은 작품을 안 주셨다.(웃음) (내가) 대중적인 이미지가 좋다는 건 모르겠지만, 업계에서는 좋아해주는 것 같다. 난 상상하는 것보다 정말 열심히 한다. 거의 영화에 올인하고 사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이러한 자세나 태도를 전해 듣고 좋아하는 것 같다.”
-올인한 작품인데 촬영을 끝낸 후 후유증은 없었나.
“후유증보다는 아쉬움이 컸다. 더 찍고 싶었다. 캐릭터에 몰입도 많이 돼 있었다. 감독님이나 형들과 술 마시면서 아쉬움을 풀었다. 더 찍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액션연기를 할 때 어디에 중점을 뒀나?
“자비가 없고 극악무도하다. 힘 있고 빠른 액션이다. 도포가 휘날리니까 시각적으로 우아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굉장히 빠르고 절도있는 액션이다. 의상이 다른 것이었다면 느낌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형사’ 때는 칼을 잡아본 적이 없고, 현대무용만 했을 때다. 이번에는 4개월 전부터 검도와 정식 칼 쓰는 것을 연마했다.”
“아니다. 여기에 만족한다.(웃음) 자격증 욕심 없다.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 됐다. 워낙 훈련을 많이 해서 칼에 대해 만족했다. 다음에 또 검을 쓰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때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또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할 것 같다.”
- ‘형사 듀얼리스트’에서도 액션을 했다. 언제부터 액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나
“‘늑대의 유혹’도 액션 신에서 대역을 쓰지 않고 했다. 그때 갈비뼈가 나갔다. ‘형사’ 때는 검술 연습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무용 연습만 했다. 이번엔 기초 연습만 두 달 정도 했다. 힘과 속도가 중요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 하고 좋아했다. 자신이 있었다. 역할이 주어지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해외 이민자 역을 맡으면 영어도 이민자 수준으로 해야 한다. 액션도 그 중 하나다.”
-그래도 액션연기를 할 땐 즐거워보인다
“(적어도) 영어하는 것보다는 훨씬 즐겁다. 이민자 역을 맡는다면 아마 미쳐버릴 것 같다.(웃음)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시간이 엄청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액션보다 이런 것이 훨씬 힘들 것 같다.”
-대척점에 있던 하정우와의 작업은 어땠나.
“성격부터 모든 게 달라서 재미있었다. 앞으로 작품 많이 하자는 얘길 했다. 종종 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배우들은 선의의 경쟁을 한다. 누구나 그렇다. 어제도 ‘라이벌 의식’에 관한 질문을 받고 ‘아니다’고 대답하기도 어려웠다. 열심히 해서 상대에 걸맞게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영화가 팽팽하게 더 재밌다. 라이벌 의식이 없다고 하기에도,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조윤의 말투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느껴졌다. 의도된 것인가.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투리 쓰는 사람이라 사투리를 들으면 바로 안다. ‘의형제’에선 사투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에선 이북 사투리가 나온다. 이북 사투리를 따로 배웠는데 경상도와 매우 비슷했다. 데뷔 초에는 서울말을 구사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점점 편해지고 있다.”
-송강호가 사투리를 본인 스타일로 만든 것이 생각났다
“안 그래도 송강호 선배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난 싫다고 했다. 사극과 사투리가 미묘한 것이 있기는 하다. 사투리와 북한말이 미묘한 것처럼 사극도 그렇다. 다양한 지역 출신들이 모였지만, 사투리인지 아닌지 본인들도 구분을 못한다. 사극을 보고 ‘사투리 쓴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조금만 사투리 같으면 내가 다 바꿔버린다. ‘의형제’ 때 이북말 쓰는 장면을 보고 뇌리에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갈수록 연기가 편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 그건 사투리나 말투가 아니라, 내가 많이 편해져서 그런 것 같다.”
-눈빛 연기가 깊고 다채로웠다
“조윤 역의 포인트는 액션이다. 눈빛은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가 찾은 앵글에서 효과적인 방법은 조윤이 고개를 숙이고 항상 삐딱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건 신경 써서 만든 거다. 조윤의 주요 포인트는 액션이다. 감독이 강조해서 주문한 것이기도 하다. 롱테이크 임무도 받았다. 감독님이 다른 영화와 차별화하려면 액션 하나 정도는 롱테이크로 찍고 싶다 하셨다.”
-하정우가 살다 살다 강동원처럼 맛집 많이 아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
“형이 아직 30대 중반이라 그렇다. 살다보면 더 많이 만날 거다.(웃음) 내 주변에는 많다. 나도 다 배운 거다. 감독님에게 항상 가르침을 받고 있고, 잡지사 편집장에게 전화해서 여쭤보기도 한다. 난 아직 피라미다. 이제 막 시작한 단계다.(웃음)”
-팬들이 참치라고 부른다.
“그런 분들도 있고, 싫어하는 분도 계신다. 나도 이 별명에 대해 별로 감흥이 없다. 너무 1차원적이고 상업적이다.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엄청 싫어하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별명이다. 제일 큰 별명은 뒷통수 너무 많이 튀어나와서 ‘뒷박’ ‘짱구’ 이런 것이었다. ‘동원참치’는 정말 초등학교 때 별명이다. 이 별명은
-이번 작품이 강동원이란 배우에게 갖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30대 첫 작품이다. 100장이 있다면 1장을 접고 2장을 막 시작하는 단계다. 필모그래피로 봤을 때 2막의 첫 시작이다. 이제 쉼 없이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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