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가요계에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반짝 스타로 사라진 가수들. 혹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돌연 대중들의 곁에서 사라진 이들의 발자취를 쫓는다. 사라진 것들의 그리움에 대하여… <편집자 주>
[MBN스타 박정선 기자] 1996년 데뷔해 ‘정’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혼성그룹 영턱스클럽은 서태지와아이들 멤버인 이주노의 손에서 탄생했다. ‘정’을 필두로 ‘질투’ ‘타인’ ‘하얀 전쟁’ 등의 히트곡을 줄줄이 내놓으며 1세대 아이돌계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3집 이후 팀에 주축이 되던 멤버들이 탈퇴하면서 그 인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2002년 원년 멤버들이 재합류하며 부활을 꾀했으나 예전의 인기를 다시 끌어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지금, 멤버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새 삶을 살고 있다. 원년멤버인 최승민 역시 과감히 스타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일로 취재진을 찾았다.
◇ “수입 없는 아이돌 생활, 이주노에 서운했다”
어린 시절 무용단에 소속되어 있던 최승민은 “양현석의 눈에 띄는 게 꿈”이라며 팬처럼 따라다니 군대에 다녀온 이후인 1994년 겨울, 서태지와아이들의 백업댄서로 발탁됐다. 이름만 말해도 누구나 알 정도의 가수들에게 러브콜을 받았지만 그에게 양현석은 여전히 꿈이었다.
그로부터 1년여를 양현석과 호형호제하며 춤을 추던 그는 한 번의 선택으로 예상치 못한 길을 걷게 됐다. 당시 양현석이 제작자로서 킵식스라는 그룹을 만들었던 것이 발단이 됐다. 최승민은 양현석이 아닌, 킵식스 멤버들에게 춤을 배우게 되자 열정을 배출하지 못하고 이주노의 러브콜에 응했다.
“외형적으로는 제가 배신을 한 셈이죠. 이후로 현석이 형을 피해 다녔어요. 쥐새끼처럼요(웃음). 주노 형이랑 손을 잡은 것도 영턱스클럽을 기획하는데 그들의 안무가로 들어간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멤버로 합류하게 된 거죠.”
얼떨결에 데뷔를 하게 된 최승민은 데뷔곡 ‘훔쳐보기’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다 ‘정’으로 활동곡을 바꾸면서 대박을 쳤다. 1집 앨범 이후 멤버 이상은이 탈퇴하고, 심지어 1998년 세 명의 원년멤버를 모두 탈퇴시키자는 이주노의 제안까지 있었다. 결국 그는 물거품이 된 인기를 인정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돈은 벌어야 하는데 인기와 달리 금전적인 보상은 전혀 없으니까 결국 멤버들이 모두 팀에서 나가게 됐죠. 악감정은 없지만 정말 서운했어요. 더구나 전 당시에 인기가 좋았으니까 어깨에 힘이 들어갔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미친 거였죠. 춤보다 놀기 바빴어요. 경제적인 보상도 받지 못하고 인기가 떨어지니까 충족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 소주만 먹고 골방생활을 했죠. 말 그대로 폐인이었어요.”
이주노에 대한 서운함과는 별개로 그는 끝까지 의리를 지키고자 다시 이주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때 탄생한 가수가 고릴라크루, 팝핀현준 등이다. 문제는 또 돈이었다. 생활고를 겪게 되자 그는 이주노의 곁을 벗어나 KMTV 힙합 강사로 취직해 돈을 벌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실력파 춤꾼들과 교류하던 중 또 한 번 이주노에게 연락이 왔고, 함께 이주노의 솔로 1집 작업을 했다. 하지만 흥행 실패로 이어져 결국 결별했다.
“주노 형의 앨범이 흥행에 실패하고 학원도 어려워졌어요. 월급은 안 나오고, 회사 차가 중간에 선 적도 있어요. 3000원이 없어서요.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주노 형 탓은 아니에요. 그 형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 테니까요. 근데 이런 일들이 사람을 못 믿게 만든 거죠. 또 다시 폐인 생활에 접어들었어요.”
◇ “뭘 해도 쪽박, 결국 산속으로 도망”
2000년도 되어서 경제적인 부분에서 숨통이 트일만하니 다음해 지인에게서 영턱스클럽을 다시 살려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멤버들과 상의 끝에 2002년 드디어 영턱스클럽으로 앨범이 나왔다. 하지만 이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식었고, 결국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했다.
“뭣도 모르고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투자에 대해 관심이 생겼는데 춤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죠. 이 상태로 무려 5년가량을 버티다 2007년 별사탕(아역스타 양성 회사)이라는 곳에 취직했어요. 근데 큰 성과가 없어서 결국 그곳도 그만뒀죠.”
최승민은 이 시기를 “최대의 고비”라고 했다. 투자로 인해 생긴 빚은 독촉이 들어오고, 만나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하는 일은 족족 실패로 끝났다. 오죽했으면 “산속에 들어가서 인생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정말 아무것도 못했어요. 이게 끝이구나 싶었죠.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대머리가 되고, 병에 걸렸는지 의심할 정도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어요. 차도 다 압류되고 하나 남은 마티즈에 어머니가 주신 돈 2000만 원가량을 들고 무작정 쓰고 다녔어요. 뭘 했는지도 모르게요.”
심지어 그는 실제 산에 들어가 생활했다. 그러면서 철저히 세상에서 소외되고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그런데 그는 ‘나’가 아닌 ‘남’을 원망하며 이를 악물었다. 대한민국에서 한 때는 유명했던 최승민이 다른 사람 때문에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이었고, 자신과 관련된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 악으로 다시 일어선 최승민, 진짜 빛 찾았다
“악만 가득 품고 춤으로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시간당 3000원 정도 되는 연습실을 1500원에 깎아서 빌렸어요. 지인을 총동원해서 한 두 명의 레슨생에게 춤을 가르치기 시작한 거죠. 그걸로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인생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죠. 진짜 큰 변화는 그로부터 얼마 후에 일어났어요.”
우연치 않게 참석한 밥자리에서 그는 한때 영턱스클럽의 팬이었던 사업가를 만나게 되고,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악’을 내려놓고 자신의 잘못들과 직면했다.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분이 절 정말 많이 변화시켜줬어요.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뒤로는 포럼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공부를 했어요. 그렇다 보니 머릿속에 ‘어떻게’가 생기고 방법을 찾게 됐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키즈(KIDS) 사업이었다. 최승민은 지난 2012년 사업자를 등록하고 현재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최승민이 제작한 영브릿지엔터테인먼트 소속인 키쥬니어 그룹 발리언트는 현재 3집 음반을 준비 중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순탄한 삶을 살고 있다.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이전에 비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했다.
“아이들이 발전하는 걸 보면 정말 예쁜 거죠. 실력이 어마어마해요. 이렇게 하니까 미비하지만 경제력도 좋아지고 있고 비즈니스도 그렇고요. 콘텐츠가 있으니까 전보다 사람이 더 붙어요.”
특히 최승민은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없냐는 질문에 “아직도 간혹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제 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마음을 틀어버리면 사업을 못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이제 가수 최승민이 아닌, 과거의 자신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아이들의 멘토를 자처한 셈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