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유채영의 솔로 1집 수록곡 '믿을 수 없어' 노랫말이 더욱 아련하게 들리는 아침이다. 그녀가 24일 오전 8시 세상을 떠났다. 위암 투병 끝 마흔 한 살의 짧은 생이었다. 유언은 없었다. 남편과 가족이 그녀의 곁을 지켰다. 소속사 측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녀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해 달라"고 바랐다.
실제로 생전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유쾌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비친 그녀는 왈가닥 괴짜 같았다. 개그맨이 아닌, 한때 섹시 여가수였던 그는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쉽진 않았겠지만 그녀는 다른 이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마냥 행복했다. 솔직하고 넉살 좋은 그녀의 입담은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열정이 대단했다. 병세가 악화된 지난달까지도 그녀는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MBC 표준FM 95.9MHz ‘좋은 주말 김경식, 유채영입니다’)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유채영 측근이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에 뒤늦게 털어놓은 바, 그녀가 스스로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안 시기는 올해 초. 그녀는 지난해 10월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지만 그때까지는 남편 김주환 씨만 알고 있었다. 개복 당시 유채영은 이미 암세포가 너무 넓게 퍼져 의료진이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유채영의 힘을 북돋았다. 하지만 이조차 기우였다. 유채영은 나중에 자신이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고도 변함없이 환한 미소와 씩씩한 태도로 주변을 안심시켰다.
어찌 보면 유채영은 정상의 인기를 구가한 연예인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어린 나이에 데뷔했다가 빛을 보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 멤버로서 겨우 얼굴을 알렸다. 이후 2년 뒤 듀오 '어스'로 활동하다가 1999년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운이 없었다.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을 통해 개성파 조연 배우로 활약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 꾸준히 다수 작품에 출연했으나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늘 '감초'였다. 그것이 약 20년이 넘는 유채영의 연예 생활 발자취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긴 인생은 충분히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인생은 충분히 길다"고 했다. 유채영을 향한 대중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사랑은 아프기도 하기에 아쉬울 뿐이다. '난 이제 알아 너를 사랑하는 법/ 가질 수 없어 더욱 갖고 싶도록/ 아쉬울 만큼만 꼭 달아나는 그런 게 바로 다 사랑인걸'(유채영 솔로곡 '이모션')이란 노랫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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