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하지만 서자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 욕망 가득한 인물 조윤의 내면은 겉모습에 묻혀 버린다. 안타까운 과거사에 설움을 폭발시키긴 했으나 강약조절이 없다. '그냥 멋지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하정우도 멋지다. 외형적으로 멋진 게 아니라, 그가 보여준 연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도 될 만하다는 말이다. 불이 나 얻은 흉터 가득한 민머리와 꾀죄죄한 얼굴의 백정 돌무치가 하정우의 기본 외형이다.
남자는 '머리빨'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머리를 빡빡 민 것부터가 호의적이긴 쉽지 않다. 4DX로 영화를 본다면 퀴퀴한 냄새가 날 것만 같기도 하다. 물벼락과 발길질, 몽둥이질 등 쏟아지는 매질도 꽤 고생한 것처럼 보인다. 하정우는 과거의 영광은 뒤로하고 완벽하게 자신을 내려 놓았다.
극 중 하정우가 어리숙해 보이고, 감정 제어를 못하며, 연기까지 못 해 보이는 이유는 극 중 18~20세의 돌무치 설정 때문이다. 가진 것 없지만 혈기왕성한 나이, 감정 조절이 쉽지 않은 때, 복수를 위해 힘을 키웠지만 제대로 단련되지는 않았다. "무술을 연마하셨습니까"라는 말을 던지면 "그렇소"라고 대답은 하겠지만, '개콘-깐죽거리 잔혹사'의 조윤호처럼 그리 내공이 깊지는 않은 인물 같아 보인다.
이번 영화에서 '어떻게 멋지게 보이느냐'보다 '어떻게 연기를 잘해야 하느냐'를 고민한 듯한 하정우의 노력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철종 13년, 힘없는 백성의 편에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떼인 군도(群盜), 지리산 추설이 된 돌무치와 극악한 수법으로 양민들을 수탈해 삼남지방 최고의 대부호로 성장한 조선 최고의 무관 출신인 조윤의 대결이 이 영화의 중심축이다.
백정 돌무치는 조윤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한 뒤 군도에 합류, 지리산 추설의 거성 도치로 거듭난다. 원수를 갚기 위한 돌무치의 여정이 단선적인 구조라 아쉬어 할 법도 하지만 그 과정은 나름 흥미진진하다. 백성이 주인인 새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와 돌무치의 복수 과정까지 기승전결을 잘 풀어냈다. 이경영, 이성민, 조진웅, 마동석 등 다양한 배우들의 이야기도 조화롭게 버무려냈다.
'군도'는 배우들 보는 맛이 강한 영화다. 하정우ㆍ강동원을 비롯해 조연 배우들이 강렬한 액션을 선사하고, 때로는 웃음과 또 때로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과거 신분제도와 관련한 사회ㆍ정치적 메시지도 있다. 몇 번씩 등장하는 "뭉치면 백성이요, 흩어지면 도둑'이라는 대사 속에 뼈가 있다.
윤종빈 감독이 전작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스크린을 수놓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에서 배경음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부극이 떠오르는데 이는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스타일의 유머 코드가 담긴 것도, 결말이 뻔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로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영화 전개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을 텐데 불필요한 내레이션이 흐름을 뚝뚝 끊어먹는 듯한 건 아쉬운 지점이다. 역사 스페셜이 웬 말인가. 가슴 통쾌한 한 방이나 심장 쫄깃해지는 전개를 펼치는 쪽으로 더 고민을 해야 했다. 137분. 15세 관람가. 상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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