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열매. 욕망의 실체이며 먹거나 취하는 것을 금지한 열매를 가리킨다. 이런 '금단의 열매'까지는 아니지만 국내 제작자를 유혹하는 '달콤한 독과일'은 바로 멜론이다. 음원시장의 50% 이상를 차지하고 있는 유통사 멜론은 음악인에게, '쓰지만 살기 위해 먹을 수밖에 없는' 녹색 과일이다.
록밴드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을 필두로 음악인들이 이런 부작용을 끊겠다고 하나로 뭉쳤다. 이른바 '바른음원협동조합(이하 바음협)이다. 바음협은 16일 오후 3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창립총회 겸 출범식을 갖고, 왜곡된 음원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발기인 대표로 나선 신대철은 "나는 음악인이다. 음악을 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사람인데, 본업을 내팽개치고 나서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을 하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그는 " 예술가에게 '배고픈'이란 수식어는 언제나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다르다. 음악을 만든 이보다 파는 이에게 더 많은 수익이 가기 때문이다"고 한탄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다. 권리 찾기이자 생계에 대한 문제다. 음악을 만든 창작자는 해당 시장 피라미드 최하층에 있다. 실제로 월 3000원 짜리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원이 팔렸을 때 창작자는 약 1원 정도를 번다. 신대철은 이를 두고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 팔면 100원이 남는다"고 비교했다.
신대철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 플랫폼을 만들겠다. 일부 냉소적인 반응도 있는 걸 안다. 비웃어도 밀고갈 것이다. 멜론을 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건강한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 끊임 없는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음악 전송사용료 징수규정’에 따르면 유통되는 음원 전체 수익의 40%가 멜론이나 벅스뮤직 같은 플랫폼 사이트에 간다. 가수들이 소속된 제작사가 44%, 저작자(작곡·작사·편곡자)가 10%, 실연자(가수·연주자)는 6%를 갖는다. 바음협은 이러한 수익 분배 구조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불균형이라는 주장이다.
그간 뮤지션들의 불만은 끊임 없이 터져나왔다. "하물며 쓰레기도 종량제(다운로드 수 만큼 돈을 받는 방식)인데 문화·예술 콘텐츠인 음악이 무제한 정액제(스트리밍)로 헐값에 마구 팔려나가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음악인들은 이런 폐단을 지적하면서 종량제로의 전환을 요구했고, 정부는 실시간 듣기(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일정액을 내고 무제한으로 듣는 정액제(월 3000원)와 듣는 만큼 돈을 내는 종량제(곡당 600원 기준)를 유통사가 병행할 수 있도록 지난해 3월부터 법을 바꿔 시행했다. ‘정액제를 폐지하면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들이 불법 다운로드 시장으로 이탈할 것’이라는 유통사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음악인들은 무제한 정액제를 아예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령 유지가 되더라도 종량제 수준으로 가격대가 조정돼야 한다는 것. 무제한 정액제가 기존 가격과 다를 바 없이 유지되면 바뀐 법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무제한 정액제는 소비자가 3000원만 내면 한 달에 1곡이든 1000곡이든 들을 수 있다. 반면 종량제는 듣는 만큼, 다운로드 받는 만큼 지불해야 한다. 10곡(곡당 600원 기준)을 다운로드 받으면 6000원이 주머니에서 나간다. 소비자 입장에선 당연히 무제한 정액제를 이용할 확률이 높다. 종량제 도입의 의미가 무색해진 셈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2년 국내 음악 산업 매출액 2조 9591억원 중 유통·배급이 차지한 비중은 66.4%(2조 6516억원)에 달했다. 창작·제작 매출액은 20.5%(8199억원)에 불과했다. 음원시장 내 불균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대안과 실효성은? "스트리밍 서비스 않겠다"
바음협은 우선 기존 모델과 차별화 되는 새로운 음원 서비스 장치를 개발, 늦어도 6개월 내에 선보일 계획이다. 짧은 시간, 곧바로 이윤을 내지 못하더라도 '롱테일' 전략에 따른 다양한 장르 발전과 수익 모델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특히 많은 음악인의 소망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뮤지션들의 수익을 더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음원 유통 비용을 40%에서 10%로 줄이고, 그 차익을 뮤지션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소비자의 마음가짐. 이미 '공짜 듣기'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반발이 클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해외 음악 사이트 모그(MOG) 등에서는 광고를 보는 조건으로 한 달에 4.99달러를 내면 1400만곡을 무제한 들을 수 있다. 광고가 보기 싫다면 9.99달러를 내면 된다. 일부 소비자가 “국내의 음원 요금상품이 너무 비싸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와 달리 저작권 개념이 철저한 외국은 과거 유료 다운로드 시스템에서 공짜 서비스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물론 시사점도 있다. 이들 외국 사이트는 음원 요금 상품의 가격을 낮춘 대신 광고 수익이나 주식을 음원 권리자에게 배분해 수익을 보전해준다. 분배 비율도 국내보다 높다. 바음협이 말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안타까운 현실은 주류 뮤지션과 제작자들이 막강한 '권력'을 지닌 멜론, 벅스, KT뮤직 등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바음협의 움직임에 동참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신대철은 "협동조합이 설립되자마자 당장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하지는 않겠다"며 "다만 음악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변화의 길을 걷는다면 '음악 생태계'가 점차 복원되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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