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8등신 몸매, 인형같이 조막만한 얼굴, 부러움을 살 만한 엄친딸 스펙. 그런데, 장새별을 만나면 두 번 놀라게 된다. 털털함에 한 번, 솔직함에 또 한 번. 자칭 ‘여자 전현무’라니 그럴 만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비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던 그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나운서에 됐다. 남들 보기 좋은 직업이라서, 좋은 남편감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유명한 CF 카피처럼 “끼가 참 많은데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
짧은 시간 안에 메이저에 입성했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겐 롤모델로 통한다. 응시하는 족족 합격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KBSN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부터였다. 최희와 공서영 사이에서 쓴맛도 봤지만, 방송 관계자들은 “네가 못 뜨는 게 이상하다” 할 정도였다.
더 큰 무대를 위해 프리랜서로 나선 그녀는 “얼굴이 아닌 발로 뛰는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느덧 6년차.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떻게 흘러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주변에서 어쩜 그렇게 지치지도 않느냐고 하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 원래 시간 가는 줄 모르잖아요? 밤새도록 게임하면 다크 서클 막 내려오고 몸은 죽도록 힘들지만 그래도 중독돼 하는 것처럼요. 30대가 되면, 내 방송 수명이 끝나지 않을까 불안하던 시절도 있었죠. 그런데 자신만의 분명한 색깔이 있다면 그런 제약은 없을 것 같아요. 요즘엔 이 일을 한다는 게 신나고 행복해요.”
지금은 어디서든 독자적인 색깔로 ‘잘 나가는’ 그녀지만, 돌이켜보면 오글거리는 새내기 시절도 있었다. 그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만 매료됐던 시절, 모든 면에서 참 어렸다”고 돌아봤다.
“가장 많이 듣던 지적은 ‘왜 그렇게 아나운서처럼 하려고 하니?’, ‘그건 네 것이 아니야’, ‘너무 겉멋이 많다’였어요. 일상의 난 굉장히 밝고 위트 넘치는, 오히려 망가지는 게 더 자연스러운 사람인데 스스로 ‘아나운서 같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것 같아요. 동기들 보다 주목받아야 한다는 욕심도 있었고, 단 5분 인터뷰를 위해 하루 종일 대기하며 고생하는 게 억울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보여지는 게 아닌 진짜 나를 찾기 시작한 건.”
장새별은 자신을 ‘슬로우 스타터’라고 칭했다. 언제부턴가 단기적인 보여주기 식 보다는 스포츠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대한 내실을 다져 식견을 넓혔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찾으려고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한다.
그의 똑똑한 부지런함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진행 방식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조금씩 차별화를 갖기 시작한 것. 그는 KBSN 스포츠 아나운서 최초로 씨름장에서 살아있는 인터뷰를 했다. 생생한 현장 리그에도 가장 먼저 달려갔다.
섹시함이나 스캔들로 주목받은 여느 스포츠 아나운서와는 달랐다. 프리랜서로 나선 이후 그의 삶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스케줄을 시작한다. 사생활을 포기한 지는 오래다. 이른바 ‘밤문화’도 즐기지 못한다.
“평일엔 밤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요.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까요. 일주일을 그렇게 살다가 금요일 밤엔 친구들 만나 수다도 떨고 술도 몇 잔 해요. 안 그러면 이 놈의 청춘이 너무 아깝잖아요.(웃음)”
그녀에게도 방송 3사에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롤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만족감은 더 크다”며 밝게 웃는다.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삶의 지혜를 엿본다는 건 매번 신선하고 값진 일이에요.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고 화려하지만 흔히 ‘백조’라고도 하죠? 그 말도 맞아요.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추구냐에 따라 만족감이 다르고, 얻을 수 있는 것도 달라요. 결국 중심이 확실해야 철저한 관리가 가능하고 쉽게 지치지도 않죠.”
“KBS라는 강력한 틀을 가진 곳에서 아이돌 춤을 추고,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스스로의 믿음, 자신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개성이나 독창석이 아닌 어떤 질서가 가장 중요한 조직에서 전현무 선배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살아남는 게 에이스’라는 말이 제 신조인데, 그걸 실행에 옮긴 사람이잖아요.”
잠시 길을 잃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존경하는 선배들의 행보와 조언을 되새겼다. 절친한 동료들의 응원도 큰 힘이다. 그 중에서도 최희는 고마운 동생이다. 그녀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며 응원을 보낸다.
“지금도 방송인을 꿈꾸는 많은 친구들이 있을 거예요. 한 때 제가 그랬듯이 화려한 부분에만 현혹돼 환상에 젖은 분들도 있겠죠. 그런데 이 일은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아요. 이 길이 험난해서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죠. 그 과정에서 상처받을 수도 있겠고 혼란을 겪게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최대한 신중해야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잡으며 굳건해야 해요. 무엇보다 진짜 나를 알고, 나만의 강점을 찾아야 해요.”
바야흐로 ‘아나운서’의 경계가 없는 시대다. “제한된 사고 자체가 장애물”이라며 파이팅을 외치는 그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새로운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시트콤이나 예능은 가장 하고 싶은 분야. 또 “시켜만 주면 정말 잘 할 수 있는 분야”란다.
“제가 웃기는 거 하나는 자신있어요. 개그우먼 하란 얘기도 많이 들었죠. ‘여신’이란 타이틀 보다 ‘까불이’ ‘여자 전현무’ ‘위트’ 이런 수식어가 달리는 날을 꿈꿔요. 캬~ 상상만 해도 설레네요.”
그의 ‘건강하고 유쾌한’ 에너지는 쉼 없이 터져나왔다. 신비한 ‘여신’으로 우아하게 남을 수도 있었건만, 기어이 거친 땅에 발을 내딛고도 움츠러듦이 없었다. 장새별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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