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음모가 판치고, 액션이 난무하는 거친 마초 영화에서 여배우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남성 캐릭터에게 순응해 녹아들거나, 이들과 대등한 캐릭터를 연기해 팜므파탈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대다수의 남성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전자(前者)다. 그러나 드물지만 영화 ‘타짜’에서의 김혜수와 같은 모습은 후자(後者)다.
‘하이힐’ 이솜, ‘황제를 위하여’ 이태임, ‘신의 한 수’ 이시영 등 많은 여배우들이 ‘타짜’ 김혜수가 되려고 스크린에 등장했지만, 대부분 전자로 시작해 조용히 그 존재감을 떨어뜨리곤 한다. 때문에 맡은 바 있는 ‘홍일점’이 아닌 그저 수많은 남자 배우 속 한 명의 여배우를 상징하는 ‘홍일점’일 뿐이다.
이솜은 ‘하이힐’에서 지욱(차승원 분)이 끝까지 지키고 싶은 여자 장미 역을 맡았다. 개봉 전 공개된 포스터, 예고편에서의 이솜은 묘하게 신비롭고 매혹적이라 남성 관객들의 기대치를 맘껏 자극했다. 그러나 막상 베일을 벗은 ‘하이힐’에서의 이솜은 등에 그려진 장미 문신이 돋보이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모습, 애절한 눈빛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 차승원과의 키스 장면을 제외하고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 사진=MBN스타 DB |
아쉬움도 잠시 ‘황제를 위하여’ 속 이태임이 또 다른 ‘홍일점’으로 이목을 끌었다. 특히 이민기와의 베드신, 노출 등이 개봉 전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여세를 몰아 공개된 포스터, 예고편에서도 도도한 첫 등장, 수위를 가늠할 수 없는 베드신, 가녀린 눈빛 등을 선보였다. 또한 마담 역을 맡았기에 박성웅과 대립하는 이민기 사이에서 그 관계를 좌지우지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저 첫 등장만 도도하고 매혹적이었을 뿐, 대중의 구미를 당길만한 홍일점은 아니었다. 당당히 주연으로 표시되어있지만 조연 김종구, 정흥채, 이재원보다 못한 존재감을 알렸다. 이민기와의 러브라인으로 박성웅을 자극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태임이 처음부터 박성웅의 여자라는 일말의 증거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이태임은 “눈을 보고 말해요”처럼 대사보다는 주로 눈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때문에 느와르 속 슬픔을 주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마담자리에 올랐는지, 박성웅이 속한 조직과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왜 이민기 곁을 순순히 떠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하다.
이태임은 우아하게 등장했지만 시작만 거창할 뿐 스크린에서 점점 희미해진 셈이다.
‘신의 한 수’ 이시영도 그 진가를 다 발휘하진 못했다.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김인권, 안길강, 최진혁 등 최강 라인업을 자랑하는 ‘신의 한 수’ 속에서 이시영의 존재는 홍일점 그 이상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외모는 물론 남성 못지않은 바둑실력으로 상대팀 정우성, 안성기, 김인권, 안길강을 가지고 놀 줄 알았다.
이시영은 사기 바둑판 투입과 동시에 미모로 상대를 유혹하고, 바둑 실력으로 또 한 번 상대를 유혹하며 꽤 괜찮은 시작을 보였다. 바둑에서 승리하고도 대수롭지 않은 척하는 모습도 팜므파탈 그 자체였다.
김혜수를 능가하는 팜므파탈 탄생 기쁨도 잠시, 그저 가려진 암흑 속에서 바둑을 즐기는 여인일 뿐이었다. 차분하게 안서현을 지도하고 모습에서는 연민마저 느껴졌다.
자신에게 일부러 접근한 정우성에게 역으로 이용당하며 조직 내 신뢰도를 잃어 가는가 하면, 이 사건으로 이범수의 분노를 자극하지도 자신의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지도 않는다. 극이 전개될수록 평범하고 순종적인 여자로 변해만 갔다.
↑ 사진=스틸 |
배우는 그저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했지만, 활약을 기대했던 관객도 자신의 모습을 기대한 배우도 쓴웃음을 짓게 됐다.
거친 남성영화 속 홍일점의 존재는 기대에서 점점 실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작만 팜므파탈 일 뿐 순응도 아닌 그냥 존재감을 잃으며 가치의 중요도까지
돋보이게 할지, 아예 홍일점을 없앨지, 편집을 손볼지 그 존재에 대해 앞으로 개봉할 또는 개봉된 남성영화 제작진들의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