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안성은 기자]
↑ 사진제공=더좋은 이엔티 |
바빴던 스케줄 탓에 의도치 않은 체중 감량까지 성공한 그는 얼굴에 피곤이 그대로 묻어났다. 드라마 촬영 후 연이어 진행된 인터뷰에 그는 더욱 수척해진 듯 했다. 하지만 김민정은 이내 피로를 거둔 채 “마리아에 대해 할 말이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먼저 회사에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어 보였다. 오마리아로 살아온 그가 자신의 작품과 연기한 캐릭터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지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촬영 일정에 대한 부담감이 비교적 없는 편인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대부분이 방송을 위해 빠듯한 스케줄에 좇기기 마련이다. ‘갑동이’ 역시 비슷했다. 연일 촬영이 계속됐다. 바쁜 스케줄로도 충분히 고되었을 그는 오마리아 역을 맡아 체력 소모 못지않은 감정 소모를 이어가야 했다.
“드라마를 끝낸 후에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어요. 드라마 후반부로 갈 때엔 살이 빠지고 있는 게 확연히 느껴질 정도였죠. 그래도 인터뷰는 꼭 하고 싶었어요. 오마리아를 연기한 사람의 입장으로서, 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죠. 사실 오마리아 캐릭터가 표현이나 이해가 쉬운 인물은 아니잖아요”
그의 이야기처럼 오마리아는 결코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평범해 보이는 상담의와 어두운 면을 지닌 피해자의 모습을 오가야했다. 180도 다른 느낌의 캐릭터를 김민정은 꽤나 훌륭하게 소화했다.
“그런데 마리아가 가진 이중적인 면을 연기할 때엔 저도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어요. 마리아는 이상해질 수 있는 확률이 굉장히 큰 캐릭터잖아요. 그 두 가지 모습이 보여주는 차이를 줄이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신경을 섰어요. 시청자 입장에서 아마 마리아를 쉽게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민정이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한 것에 비해 ‘갑동이’에서 오마리아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무염(윤상현 분)과 류태오(이준 분)의 그늘에 가려진 듯한 느낌을 숨길 수 없었다. 늘 주연급으로 활동해온 그로서는 이러한 부분이 아쉬울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김민정에겐 개인보다 작품이 우선이었다.
“마리아가 혼자 나오는 작품이 아니잖아요. ‘갑동이’는 마리아의 이중적인 면을 주소재로 다룬 드라마가 아니예요. 오히려 마리아의 그런 면들은 장치에 불과했죠. 그리고 저는 사실 마리아의 분량이 더 많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쉽게 소화하기 힘든 역할이거든요. 부담도 컸고 많이 고됐기 때문에 더 안 나와서 다행이예요”
그렇다면 한참 어린 후배 이준에게 대부분의 포커스가 맞혀진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특히 이준은 배우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것이 아닌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인물. 연기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김민정으로서는 충분히 부정적인 시각이나, 선입견을 가질 수 있었다.
“이준이 한다고 했을 때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이준의 연기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 아이돌 출신이라고 하는데… 사실 ‘갑동이’의 생사는 이준이 맡은 류태오에게 달려있잖아요? 처음에는 염려가 되었죠.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굉장히 잘 해줬어요. 무엇보다 연기의 잘·잘못을 떠나 이준이라는 친구 자체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어요. 물론 모두가 선배인 곳에서 이준이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지만요”
막내나 다름없던 이준의 ‘예의바른 모습’을 칭찬했던 그는 사실 꽤 오랜 시간동안 드라마 현장에서 막내 아닌 막내 역할을 해왔다. 경력에 비해 어린 나이 때문. 특히 경력과 대비하지 않는 나이 덕에 고충도 많았다. 또래에 비해 많이 아는 것은 득이기도 했지만 독이기도 했다. 양날의 검을 품고 살아야 했던 그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제겐 ‘진짜 나’라는 게 없었어요. 늘 ‘대중에게 보여지는 김민정’이었고, 그 면에 집중하며 살았죠. 아는 만큼 자제하며 지냈어요. 아는 걸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한 번에 그런 스트레스들을 터트렸죠”
남모를 고충을 겪어온 그이지만 대외적인 김민정의 이미지는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마친 배우다. 1990년, 첫 연기를 시작한 그는 어느덧 25년 차 배우가 됐다. 경력으로만 본다면 말 그대로 ‘중견급 배우’인 셈이다. 많은 아역 배우 혹은 아역 배우 출신 배우들은 김민정을 롤모델로 삼곤 한다.
“전 아역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하거나 애쓰지 않았어요. 요즘도 아역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어린 나이에 노출을 하거나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후배들이 있어요. 그 순간 망가지는 거예요. 배우는 자기 나이대에 맞는 역할을 하면 돼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배우들은 당연히 어린 게 맞는 거잖아요.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이, 어린 나이를 억지로 탈피하고 성인이 되려고 하는 건 순리에 어긋나죠”
“저 굉장히 많이 움직여요. 운동을 좋아하는데 특히 산타는 걸 좋아하는 편이예요. 산을 좋아하는 게 나이를 먹는 증거라고도 하던데… 경력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필요이상으로 사고가 성숙한 느낌도 있어요. 전 피부과에 가서 한 번 누울 시간에 차라리 산을 가요. 산에서 물론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절 알아볼 때면 불편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 불편함보다 제게는 산이 주는 힐링이 우선이죠. 그런 의미에서 마인드 컨트롤, 명상도 즐겨요”
김민정은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시청자의 곁을 지킨 배우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아직 많은 꿈이 남아있다. 특히 최근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김희애를 만난 그는 굉장히 많은 영감을 받았다.
“김희애 선배에게 받은 느낌은 정말 최고였어요. 결혼을 하셨고 아이도 있는데 우아한 느낌은 여전하다는 게 좋았죠. 선배님을 닮고 싶어요. 곱고 아름답게 늙고 싶어요. 물론 ‘밀회’ 속 선배님처럼 40대가 되어서 20대의 연하 배우와 멜로 연기를 한다면 금상첨화겠죠”
안성은 기자 900918a@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