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은 불편하다. 단순히 이해하기 어려운 법정 상식이나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 법정드라마라서가 아니다. 진실과 정의에 따르기보다 기업과 법조계 인사들의 이해관계나 권력에 따라 달라지는 재판의 과정들을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개과천선’에서 진행 중인 중소기업 환율사건은 어디서 본 듯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08년 실제로 벌어졌던 키코(KIKO)사태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키코란 수출입업체가 은행과 환율의 상안선(Knock-in)과 하안선(Knock-out)을 정해 놓고 그 범위 내에서 지정 환율로 거래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은 파생금융상품을 말한다. 환율이 일정한 구간 안에서 변동한다면 일정부분 이익을 볼 수 있으나, 하안 이하로 떨어질 경우 계약이 무효가 돼 환손실을 그대로 감수해야 하고, 상한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에는 약정금액의 2배 이상을 팔아야 한다는 옵션이 붙기 때문에 입는 손해는 크다.
↑ 사진=개과천선 캡처 |
‘개과천선’에서 중소기업 환율사건 역시 실제 키코사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26일 방송에서 기업에 손을 들어줄 듯 보였던 법원이 결국 은행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드라마라고 해서 특별히 극적인 성공을 그리기보다, 은행의 변호를 맡고 있는 차영우(김상중 분)로펌의 로비로 인해 이뤄낸 산물로 그려내면서 씁쓸함을 더욱 가중케 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은행이 기업을 상대로 사기 칠 줄 몰랐다. 어디 폭탄 제조법 모르냐”는 기업사장들의 푸념은 결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내뱉는 대사는 아니었다.
‘개과천선’의 사회풍자는 키코사태 뿐만이 아니다. 2007년 충남 태안 기름유출사건은 지금도 ‘최악의 기름유출 사건’으로 꼽힐 만큼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불렀던 사건 중 하나다. 태안 앞바다에서 허베이 스피리트호에서 나온 새까만 기름들은 바다와 해안가를 뒤덮었고, 이에 많은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원봉사로 나서며 기름을 닦아냈다. 이후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던 태안 앞바다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빠른 시간에 회복세로 돌아섰고,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바닷물은 다시 맑아졌지만, 재산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현지 어민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으며,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책임자 삼성중공업은 얼마만큼의 배상을 받았는지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사회적 문제로도 크게 부각됐던 사건이지만, 세간의 관심이 시들해진 5년 뒤 이뤄진 배상판결은 실로 초라했다. 배상 총액 7천억 원의 허울 뒤에는 주민에게 돌아간 금액은 고작 4천억에 불과하며, 가해자에 해당되는 삼성중공업에게는 고작 56억 원의 책임만 지는 것에 끝났다. 극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개과천선’은 씨스타호 서해 기름유출 사건으로, 피해에 비해 턱없이 적은 보상금을 받게 된 어민과 법률적으로 결론이 난 문제라며 추가 보상금 지급에 난색을 표하는 기업 측의 갈등을 그려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도왔다.
유림그룹 자금사태는 동양CP(기업어음)사태를 풍자한 것이다. ‘개과천선’에서 주인공 김석주의 약혼자인 유정선의 회사인 유림그룹은 자금난에 빠지게 된다. 유림그룹의 회장인 박기철은 유림그룹이 위기에 처하자 외손녀인 유정선에게 “네가 일을 맡으면 벌을 받더라도 사건의 규모가 적어질 것”이라며 책임을 맡기고, 유정선은 구속기소까지 받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김석주는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그 덕분에 유정선은 위기에서 구하며 형식적으로 보았던 약혼자 김석주를 다시 보게 된다.
↑ 사진=개과천선 캡처 |
동양그룹의 경우 기업의 청산가치가 변제해야 하는 어음 액에 모자랄뿐더러 동양그룹에서 비교적 우량 한 기업인 동양시멘트와 같은 기업까지도 법정관리에 신청하여 피해자와 피해액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은행예금이라든지 종금사의 발행 어음등 금융기관에서 발행한 상품군의 경우 예금자보호제도에 의해서 5000만원 까지 보호가 되지만, 기업의 CP는 예외다. 은행예금에 비해 높은 이자율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동양그룹CP 발행으로 피해를 본 이들이 모여 서울중앙지법에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개과천선’은 이를 상세하게 다루며 ‘뉴스보다 더 뉴스같은’ 드라마의 매력을 발산했다. 비록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지만, 현실의 판박이나 다름없는 묘사에 ‘동양 금용 사기 피해자모임’은 ‘개과천선’ 팀에 야식을 선물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밖에 ‘태진건설 인수전’ 역시 2010년 진행됐던 현대건설 매각을 놓고 벌어졌던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충돌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건설을 놓고 벌인 현대가 그룹 경쟁은 현대적통성과도 관련해 미묘한 문제였을 뿐 아니라, 그 과정 중에 출처가 의심스러운 자금이 제기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는 이와 같은 인수 과정들을 묘사하며 흥미를 이끌어냈다.
당초 18회로 기획된 ‘개과천선’이지만, 주연배우의 스케줄 조정과 잦은 결방 등 여러 복합적인 사정이 맞물리면서 조기종영을 결정하게 됐다. ‘개과천선’의 조기종영에 많은 시청자들은 저조한 시청률과 함께 사회비판이 많은 만큼 외압이 있었냐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MBC는 “이전부터 논의 됐던 일”이라고 해명하며 모든 논란들을 일축했다.
이익과 승리만을 우선시 했던 악덕 변호사 김석주가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뒤 개과천선하는 과정을 그린 ‘개과천선’은 ‘외압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정도로 힘없는 약자들과 부조리한 사회를 이야기해 나갔다. “무죄는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말”이라는 로펌 대표 차영우의 말처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풍조가 만연한 세상, ‘개과천선’은 연못에 돌을 던지듯 잔잔한 파문을 안방극장에 전했다.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개과천선’은 마지막 에피소드로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