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휴먼레이스(HumanRace)는 아직 대중에게 그리 익숙한 팀은 아니다. TV 방송에서 소외되고, 라이브를 선보일 수 있는 무대 또한 점차 좁아지는 게 오늘날 대한민국 밴드가 처한 열악한 현실. 하지만 이들은 오직 음악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깊이 파고 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휴먼레이스는 오랜 시간 홍대에서 음악에 몰두해 온 맏형이자 베이스 담당 최민수가 보컬 윤성기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홍대를 거점으로 음악을 해온 세월이 하도 길어 자칭 ‘홍대화석’이라는 최민수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날 것 그대로인 윤성기의 ‘목소리’에 묘한 끌림을 느꼈다. 마치 운명처럼.
“이번 앨범에 수록된 ‘숨’의 초기 데모 버전을 (윤)성기가 온라인에 올려놓았더군요. 음악 하는 친구의 소개를 받아 평범한 펍(PUB)에서 만나 음악을 들어봤는데, 한 소절 듣고 목소리에 반했죠. 어디서 활동했었는지 물었는데 활동 경력이 아예 없다더라고요. 제대로 한 번 해보자 했죠.”(최민수)
이는 2011년 9월의 이야기다. 당시 윤성기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 과감하게 음악으로 투신하려던 시점. 윤성기는 “그저 음악이 좋아 혼자 연습만 하다가, 어느 순간 왠지 이렇게 살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음악을 택하게 되기까지의 결심을 떠올렸다.
최민수가 반한 윤성기의 음색은 예사롭지 않았다. 팀 결성 후 파이팅을 외치며 출전한 Mnet ‘보이스코리아 시즌2’에서 윤성기는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당당히 파이널까지 진출한 것. 윤성기의 활약에 힘입어 휴먼레이스는 결성된 지 오래지 않았음에도 대중적으로 빠르게 인식된 편이다.
이듬해 6월, 기타 신재혁이 합류하고 드럼 황성환이 올해 초 새롭게 합류하면서 현재의 4인조 휴먼레이스의 위용을 갖추게 됐다. 멤버마다 캐릭터도, 연령도 꽤나 차별화됐지만 휴먼레이스라는 목표 하나로 ‘대동단결’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교롭게도 모 스포츠 의류업체에서 론칭한 마라톤 브랜드와도 이름이 같아 “검색 순위에서 은근히 경쟁하고 있다”는 이들. 지금은 소소한 ‘경쟁’ 중이지만 언젠가 또 다른 ‘휴먼레이스’와 상생의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날도 기대해본다.
사람의 모든 감성을 표현하고자 하면서도 이번에 내놓은 정규 1집은 기본적으로 청량함을 베이스로 안고 간다. 최민수는 “2년 여의 작업 결과물을 수록한 앨범이다. 주제 자체가 묵직하긴 하지만 공간적으로 시원한 느낌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느낌을 사운드적으로 빛내주는 악기는 특히 기타. 하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상당하다. 휴먼레이스는 “초창기에는 사운드로 채우려는 편이었는데 작업을 거듭할수록 채울 곳은 채우고 비울 곳은 비우는 식으로 진화됐다”고 했다. 덕분에 보컬을 포함한 각 악기가 적재적소에서 저마다에 맞는 춤을 추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 완성도에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 법. “휴먼레이스의 에너지를 다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는 윤성기는 “완성되기에는 좀 더 많은 경험치가 필요하다. 최적의 시스템을 찾게 되면 그 땐 우리가 상당히 경쟁력 있는 팀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음악으로써 많은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게 소박하면서도 원대한 휴먼레이스의 꿈이다. 이들의 음악이 누군가를 응원하고 위로하듯, 혹자는 또 휴먼레이스의 레이스를 응원하고 있을 터. 그렇게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이들을 응원해주는 그 ‘혹자’는 과연 누구일까.
“음,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고 계시지만 행성B라는 출판사 대표님(임태주 작가)께서 우리 음악을 들어보신 후 정말 순수하게 우릴 응원해주세요. 최근 출간하신 책에서도 휴먼레이스를 응원해주셨죠.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윤성기)
이번 앨범에 수록된 ‘GO’ 또한 한 자선공연에 서기 전, 남다른 의미를 담아 만든 곡인데 우연한 기회로 영화 ‘백프로’ OST로 사용됐다. 최민수는 “우린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인 만큼 실생활에서 주고받는 영감이 많다. 거기서 공감이 발생된다”고 강조했다.
‘추억의 습관’과 ‘송 포 유’가 더블 타이틀곡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에서 휴먼레이스가 꼽은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음악은 어떤 게 잇을까. 멤버별로 한 곡씩 꼽아달라 하자 주저 없이 말이 이어졌다.
“저는 ‘숨’이요. 우리가 모이게 된 노래이면서, 제가 음악을 하게 된 곡이기도 하기 때문에 애착이 많습니다.”(윤성기)
드럼 황성환은 수록곡 중 유일하게 ‘내일’을 이야기하는 곡 ‘뉴 데이’를, 기타 신재혁은 “이것이 휴먼레이스의 색깔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곡 ‘러브’를 꼽았다.
최민수는 ‘송 포 유’를 소개했다. “팬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그동안 묵직한 음악을 해왔다면 조금 살랑살랑하고 달달한 느낌으로 만들어봤죠. 가까이 있는 존재인데, 잊고 지내다 문득 확 다가와 벅차게 다가오는 느낌을 표현했는데, 우리 팬클럽 ‘레이서’를 생각하며 쓴 곡이에요.”
‘송 포 유’가 휴먼레이스의 공연에서 떼창으로 연주되는 그 날을 위해, 이들은 오늘도 묵묵히 달린다. 휴먼레이스의 경주는, 경쟁보다는 묵묵한 나아감을 뜻하는 만큼,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그들만의 음악을 들려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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