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아니, 버무려질 수가 없다. 천재 감독이 아니고서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차라리 '병맛'이라고 할 수 있었으면 독특하거나 재기발랄하다고 칭찬할 수 있었겠지만 이건 '병맛'도 아닌 그냥 너무나 기분 나쁜 맛이다.
'소녀괴담'(감독 오인천)은 귀신을 보는 외톨이 소년 인수(강하늘)이 기억을 잃은 소녀귀신(김소은)을 만나 우정을 나누면서 학교에 떠도는 마스크 귀신에 대한 비밀을 풀어가는 게 기본 틀이다. 제목에서부터 눈치챘겠지만 한국 공포영화의 한 획을 근 '여고괴담'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제목은 '소녀무덤'이었지만, '소녀괴담'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학교 마스크 괴담'과 어울린다.
한국 공포영화의 기술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것밖에 안 되나 할 정도로 실망스럽게 느껴지게 한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은 관객을 허무하게 할 것 같기도 하다.
'여고괴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바로 '그 장면'도 있다. 멀리 있던 귀신이 프레임 조절로 바로 앞에까지 '두둥!'하고 돌진하는 신. '설마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등장한다(물론 프레임 조절이 달랐지만 노리는 효과는 똑같다). 또 다른 공포영화 '고사'에서 봤던 장면도 떠오르는 신이 있는데, '여고괴담'과 '고사'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학교를 영화의 배경으로 하겠다는, 제작사의 그 자신감은 영화 어디에서도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
혹자는 목을 15도(혹은 45도)쯤 좌우로 꺾고 노란 눈을 동그랗게 뜬 여자귀신이 등장하는 초반 지하철 장면부터 실소가 터져 나올 수도 있겠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기 전이니 관객의 심장을 걱정한 제작자의 배려(?)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끝날 때까지 이렇다 할 공포감을 느낄 장면은 없다. 일반 관객을, 그렇다고 공포영화 마니아를 배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둔기로 내려쳐 피가 튀기거나 한 등장인물이 핏물을 뒤집어쓴 장면들이 잔인하게 다가오는데 이건 또 기분 나쁜 맛이다. 공포영화 전문 제작사 고스트픽쳐스와 영화 '관상'을 제작한 주피터필름이 야심 차게 내놓았으나 어떤 시너지도 내지 못했다. 차라리 두 제작사가 함께했던, 이승과 저승의 달을 소재로 외딴 곳에 갇힌 세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공포영화 '두 개의 달'이 더 괜찮게 다가온다.
다만 학교 폭력 왕따 문제에 대해 짚은 부분은 칭찬할 만하다. 한혜린과 박두식의 실감 나는 불량 청소년 연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영화에서 다뤘던 소재와 주제이기 때문에 그다지 특별할 건 없지만, 두 사람은 실제 '일진' 같은 모습을 선보인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느껴야 할 소름이 두 사람의 연기 때문에 돋을 정도다.
러닝타임이 짧은 것도 장점이라면 또 다른 장점이다.
영화는 '주위의 무관심이 더 무섭다'는 걸 주제로 했던 것 같은데 방향을 한참 잘못 잡은 듯하다. 인수의 퇴마사 삼촌으로 나오는 김정태의 웃기(려고 힘들게 노력하)는 장면을 없애거나, 강하늘과 김소은의 로맨스를 빼버려야 했다. 아니면 그 반대로 공포영화라는 색을 버리고 다른 장르의 영화로 만들어야 했다. 뜬금없이 화면 전환되고,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몇몇 장면들도 있는데 관객의 몰입을 뚝뚝 끊어 먹는다. 90분. 15세 관람가. 7월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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