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참 많았는데…아내가 곁에 있어 정말 큰 힘이 됐어요. 고맙고 미안하고…이제 정말 잘 해줘야죠! 유치할 지 모르지만 결혼 후 ‘혼자가 아냐’라는 생각이 가슴 중앙에 딱 박혀있는 게 참 좋아요. 이렇게 행복할 줄 알았다면 더 빨리 할 걸 그랬어요. 하하!!”
데뷔 후 처음으로 극한의 악역에 도전한 배우 박정철(38). 길고 또 험난했던 ‘천상여자’의 여정을 마친 소감을 물었더니 그저 아내 자랑 뿐이다.
치열했던 ‘천상여자’는 지난 6월 2일 결국 권선징악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드라마는 성녀가 되고 싶었으나 복수를 위해 악을 선택한 여자, 그녀의 악까지도 사랑으로 끌어안는 남자의 사랑을 그렸다. 총 103회 동안 평균 시청률 17.3%를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자체최고시청률은 지난 4월 28일 방영한 79회로, 무려 21.1%에 달했다.
극중 박정철은 성공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버린 비정한 남자 장태정 역을 맡았다. 드라마의 온 사건의 중심에 장태정이 있었기 때문의 그의 상황에 따라 시청률도 움직였다. ‘장태정의 추격자’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처음엔 그저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설렘을 갖고 덤벼들었어요. 현장에서 웃고 떠들었던 시간도 있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 나와의 싸움이 시작됐어요. 아무리 악역이라지만 뭔가 스스로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상황만 변하고, 점층 되는 감정만 있을 뿐, 다양한 변화를 주기가 힘들더라고요. 어느새 지치고 외롭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어요. 정말 힘겹게 마무리했습니다.”
박정철은 ‘천상여자’를 위해 지난 6개월간 주 6일 촬영을 감내했다. 특히 드라마 도중 연인과 결혼이 예정된 상태라 일상에서는 이 극악한 감정에서 재빨리 빠져나와야 했다. 매일 매일 인간 박정철과 극중 장태정을 오가며 격렬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했다.
“결혼과 드라마 시기가 맞물려 걱정은 됐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안 해본 연기를 한다는 것에 호기심이나 도전 의식 같은 게 워낙 강했고, 아내도 그런 저를 이해해줬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닥치고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바쁜 촬영 스케줄은 기본, 항상 쫓기고 화내고 악랄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정말 많았어요. 결혼 준비를 하며 알콩달콩 누렸어야 한 행복감을 주지 못한 게 미안하죠.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아서 완벽하게 집중하지 못했거든요. 사실, 그런 저 때문에 아내가 몇 번 삐지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많이 미안하네…”
곧 새신랑이 될 연인이 매일 매일 악인으로 브라운관에 등장하고, 잠깐 짬을 내서 만나면 지친 모습으로 나타나니 예비 신부의 마음도 안타까울 법도 했다. 제대로 된 신혼은커녕 신혼여행도 미뤄야 했다. 결혼식 전날까지도 촬영이 이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아내가 짜증 안 부리던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아주 조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너무 몰입한 나머지 연기하는 동안엔 삶에 즐거움조차 없더라”며 “일상에서도 자꾸 드라마 생각에 빠져 아내가 첫 웨딩드레스를 입는 날에도 서운하게 만들었다. 결혼식 날만큼은 제대로 즐기고 싶었는데 그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전형적인 도시 남자의 외형을 가진 그인데, 오히려 실제 성격은 소탈한 순수남 같았다. 곱상한 비주얼과 달리 상남자를 넘어 무심함의 기운까지 느껴졌다. 혹시 프러포즈는 했냐고 물으니 당당히 “그럼요, 했어요!”라고 답했다.
“이른 바 ‘초콜렛 프러포즈’인데…지난해 여름 레스토랑에서 초콜릿 사이에 반지를 넣어 프러포즈를 했거든요? 머릿속으로는 굉장히 로맨틱하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실제는 많이 어색하고 잘 안되더라고요. 오히려 아내가 ‘성의 없다’며 서운해 했어요. 역시 저는 이런 이벤트엔 정말 약한 것 같아요. 신혼여행에서는 정말 뭔가 해야 할 텐데”
드라마로 한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낸 그는 이달 말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한동안 부담감에서 벗어나 신혼의 단꿈에 젖을 예정이다.
그는 “(결혼을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며 “이제 정말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해서 더 마음을 놓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 하나가 특별해지고 소중해졌다. 무심한 나란 사람의 사랑은 이런 가보다”고 했다.
“그저 일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달려오다 보니, 곁에 있던 사람이 나를 오래 기다렸다는 사실 조차도 잊고 지낸 것 같아요. 특별히 싸우거나 트러블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물 흐르듯이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고, 정말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결혼하게 됐어요. 언제나 무던히 내 곁을 지켜준 사람, 나에게만은 언제나 천상여자인 고마운 사람이 바로 제 아내에요. 빨리 아이도 있었으면 좋겠고, 예쁜 가정을 하나씩 함께 완성해 갔으면 해요. 배우로서도, 한 남자로서도 새로운 시작이 제게 온 것 같아요.”
아내 이야기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 그였다. 더이상 극악한 장태정의 모습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차기 계획을 물었다. 정해진 건 없지만 가급적 빨리 선택할 예정이라고 했다. 캐릭터에 제약은 없지만, 이전과는 다른 ‘새로움’을 가지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는 “연기에 대해 조금은 쉽게 생각했던 부분이 이번 생소하고 낯선 경험을 통해 다시 채찍질이 됐다”면서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이전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찾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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