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빙산 이론이다.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빙산의 움직임에서 위엄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은 수면 위에 드러난 부분이 빙산 전체의 1/8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 보여주면 위엄이 없다(‘하오의 죽음’ 中)"고 했다.
3일 0시 발표되는 빅뱅 태양의 솔로 정규 2집 '라이즈(Rise)'는 헤밍웨이의 이러한 '빙산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글뿐 아닌 음악도 마찬가지여서다. 태양은 과거 보여준 화려함을 덜어내고 진심을 노래했다.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 음악의 진정성을 찾아 다녀온 그의 순례기가 이번 앨범에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일 오후 서울 청담CGV에서 취재진과 마주한 태양은 "긴 여행이었던 것 같다"고 이번 앨범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이번 새 앨범은 그의 정규 1집 ‘솔라’(SOLAR) 이후 약 4년 만이다. 지난해 11월 선공개곡 ‘링가링가’를 발표한 지도 6개월이 넘게 흘렀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
태양은 "내 욕심과 싸우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매 순간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노력했기에 많은 작업량이 있었고, 마지막에 욕심이 났다. 집착 아닌 집착이 생겨서 사운드나 느낌에 있어서 깊게만 가려는 성향이 있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태양은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와 갈등까지 겪었다. 그는 "난 한 가지 색깔에 꽂히면 그 색깔로만 다 채우려는 성향이 있어서 회장님(양현석)과 마찰이 있었다"며 "다행히 그럴 때마다 좀 더 좋은 음악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음악이 주는 감동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결국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진정성이다. 타이틀곡 ‘눈, 코, 입’을 비롯해 ‘새벽한시’, ‘버리고’, ‘이게 아닌데’ 등의 곡이 그의 이러한 깨달음과 관통하는 음악이다.
태양은 흑인 음악 특유의 소울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 내는 국내 몇 안 되는 가수로 꼽힌다. 이들 노래에서도 그답다. 그루브 넘치는 창법과 감성을 여전히 보여줬다. 다만 그는 애써 자신을 과시하지 않았다. 뺄셈에 충실했다. 여러 장르 음악에서 다채로운 색깔을 냈을 뿐이다.
태양은 "내 본연의 모습과 보컬 하나로 더 많은 감성을 전달하고 싶었다"면서 "또한 내 생각보다는 누가 들어도 좋을 음악으로 채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9곡을 추렸다"고 설명했다.
온전히 자신의 음악에 전념했고, 만족도가 높다 보니 경쟁 의식 따위는 없다. 빅뱅 동료 멤버 지드래곤은 솔로 아티스트로서 이미 세계적인 인기와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대한 취재진의 관심이 쏠렸던 터다.
태양은 "지용(지드래곤의 본명)이는 굉장히 대단하다. 나도 뒤쳐지지 않는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그렇다고 그와 경쟁 의식은 없다"며 웃었다. 컴백을 예고한 싸이와 비슷한 시기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내 코가 석 자다. 내가 알기로 싸이는 미국에서만 활동한다. (나와 겹치지 않으니) 괜찮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태양은 다시 뜬다.' 이 역시 헤밍웨이의 유명 소설 제목만은 아니다. 다시 돌아온 태양을 표현하기 적합하다. "명반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란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의 자신감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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