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29일 개봉한 영화 '무명인'의 김성수(43) 감독도 비슷한 입장이긴 하다. 조작된 기억의 진실을 추격하는 남자 이시가미(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서 남자를 돕는 도쿄 특파원으로 나오는 김효진의 일본어 실력과 관련해서다. 김 감독은 솔직히 "효진씨에게 일본어 발음은 포기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한글의 자음과 모음 같은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모르는 김효진은 3주 연습 만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발음을 해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를 외쳐야 할 판이었다.
"솔직히 효진씨에게 발음은 포기했으니 감정만 살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어떤 대사든 감정만 가지고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물론 은근히 압박을 하긴 했는데 효진씨는 제가 원하는 이상을 한 거죠.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존경스러워요."
사실 김효진이 캐스팅 1순위는 아니었다. 애초 기억의 진실을 찾아가는 남자를 한국배우로 캐스팅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고, 시나리오를 고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단계부터 생각을 바꿨고, 니시지마가 캐스팅된 뒤 김효진도 함께할 수 있었다.
그는 이어 이병헌과 배두나 등을 언급하며 "외국어를 공부해서 다른 나라말을 하는 건 노력하면 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외국 배우나 스태프 앞에서 그 나라 말로 연기를 해야 하는데, 보통 사람이 아니라면 못한다. 대단한 배우다. 효진씨의 일본어 연기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즐거워했다.
김효진의 기적 같은 일이 가능했던 건, 남편인 유지태의 도움이 컸다. 사실 김 감독이 건넨 대사 가이드 녹음을 듣고 김효진은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옆에서 함께 듣던 유지태가 "내가 도움을 주겠다"고 했고, 결정했다. 유지태는 김 감독의 전작 '야수'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김 감독은 "감독으로 바라봤을 때 두 사람은 정말 천생연분"이라며 "배우로서 고집과 열정이 정말 최고"라고 추어올렸다. 이어 "촬영에 들어갈 때 유지태씨는 내게 전화 한 통 없었다. 아내를 전적으로 믿고 지원해주는 것 같더라"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니시지마 캐스팅과 관련한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단번에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마음을 동하게 해야 했다"며 "손글씨로 편지지 8장에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일본영화계가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죠. 드라마와 영화가 그대로 영화로 옮겨지는 등 일본영화는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창작이라는 게 어느 순간 사라져 배우들이 새로운 것에 갈증이 있다고 해요. 니시지마도 그런 의미에서 도전한다고 하더라고요."
김 감독은 어려운 소재를 다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억의 조작이라는 소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라며 "나는 일본과 한국 관객 모두에게 어필해야 하는 감정과 재미를 맞추기 어려웠다. 하지만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촬영했다"고 전했다.
'무명인'은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한일합작 영화다. 2008년 김 감독이 초고를 썼고, 한일 프로젝트로 결정된 게 2010년이다. 김 감독은 '야수' 이후 약 5년을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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