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김상호씨 연기요? 말로 설명이 될까요? 진정 신선한 충격이었죠. 둔기로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배우 윤지숙(40). KBS 18기 공채 탤런트로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왕과비’ ‘멋진 친구들2’ ‘새엄마’ ‘아내’ ‘어린이 손자병법’ 등 무수한 드라마에 출연했다. ‘KBS 공무원’으로 불리 정도로 ‘베테랑’ 경력을 자랑하지만 대중에게 친숙하지만은 않다. 그런 그녀가 데뷔 19년 만에 강력한 한 방을 날렸다. KBS 주말극 ‘참 좋은 시절’을 통해서다.
굉장히 낯이 익은데, 첫 주말극이라고?
지금까지 주로 KBS 일일 연속극을 해왔어요. 대부분 소극적이고 개성 없는 역할들이었죠. 똑같은 장르, 비슷한 연기만 하다 보니 경력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편이에요. 어디서 보긴 봤는데 단번에 알아보기는 힘든…하하!
이번엔 좀 강렬한 역할인데?
새로운 변화 없이 그렇게 같은 것만 반복하다보니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거예요. ‘대사는 잘 외우지만 새로운 도전이 부족한 배우’가 돼버린 거죠. ‘참 좋은 시절’은 정체된 제게 찾아온 기회였어요.
첫 느낌이 어땠길래?
솔직히 처음엔 시나리오 보단 캐릭터 위주로 봤던 것 같아요. 드라마 초반에는 ‘가족극’ 보다도 ‘복수극’ 위주로 가기 때문에 덜 흥미로운 부분들도 있었어요. 나중에 관계자들에게 들어보니 모두 초반에는 시청률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워낙 뒷심이 있는 작가님이고 후반부로 갈수록 각 캐릭터들의 개성과 스토리의 힘이 살아나더라고요. 그 예상이 적중한 것 같아요.
캐릭터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비주얼 적으로나, 분량이나, 성격으로나…제게는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다른 여배우들이 거울을 볼 때 저는 맨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로 흙이나 묻히면 됐어요. 적은 분량이지만 개성이 넘쳤고, 제가 그동안 맡은 어떤 캐릭터보다 존재감이 있는 것 같아요. 고민에 빠진 제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캐릭터죠. 무엇보다 제가 경상도 출신인데 한 번도 사투리 연기를 한 적이 없었거든요? 이번엔 사투리 대사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하하!
전혀! 오히려 너~무 좋아요. 시간도 절약되고 연기에 집중도 더 잘 되고…. 최근 ‘10년 비밀연애’ 중인 쌍식이(김상호)와의 관계를 공식화하기 위해 식구들에게 인사드리러 가는 장면을 찍었어요. 갑자기 급변신을 하니 제작진은 물론 배우들도 못 알아보더라고요. 얼마나 웃기던지! 변신하는 재미도 있고 연기하는 맛도 살고, 정말 즐겁습니다.
분량은 더 늘어난 건가? 초반보다 비중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드라마가 크게 ‘복수극’과 ‘가족극’으로 이뤄졌는데, ‘가족극’ 위주로 접어들어서 자연스럽게 더 부각되는 것 같아요. 본래 시나리오에는 언니가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언니까지 등장하고 집도 이사하면서 제가 속한 라인에 한층 탄력이 붙은 것 같아요. 김상호, 윤유선, 김광규 등 다들 워낙 개성 있는 캐릭터가 몰려 있어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보시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개성 연기의 향연. 치이진 않나?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아요. 각자의 역할에 워낙 열정이 크다 보니까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해요. 이미 친분이 있었던 배우도 있고 처음 본 사람도 있고. 성격들이 다들 좋아서 금새 친해진 것 같아요. 특히 상대역인 김상호씨나 김광규씨는 너무 연기를 잘하고 리액션이 좋아서 절로 몰입하게 돼요.
상대 배우인 김상호와의 호흡은?
김상호씨요? 처음 그의 연기를 본 느낌은…‘충격’ 그 자체였어요. ‘와! 역시 큰 물에서 놀던 사람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영화나 연극 등에서 쌓아온 내공이 대본을 소화하는데서 남다르게 발현되는 것 같아요. 연속극에 익숙해진 저는 그동안 감독님의 지시에 맞게, 정해진 룰과 틀 안에서 공부하듯이 연기를 해온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죠. 너무 무난해서요. 근데 극복의 답이 바로 김상호씨더라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김상호씨가 연기 하는 걸 보면 모든 걸 ‘자기화’시켜요. 소화 능력이 대단하죠. 그냥 애드리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다 대본에 있는 구절이고, 연기와 현실이 구분이 안 될 정도에요. 법칙이 없는, 자유로운 연기력의 소유자인 것 같아요. 남들이 1~2를 생각할 때 김상호씨는 이미 10 그 이상을 생각해내는 것 같아요.
배우들 연기력이나 팀워크가 참 좋아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가 너무 착해 좀 밋밋한 것 같기도…
사실 제가 주연이 아니어서 그런지 시청률 부분에 그렇게 민감하진 않아요. (큭큭!) 다만 시나리오의 힘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흘러야 하는데, 이 드라마가 그래요. 다들 우리 드라마를 보고 ‘착하다 착하다’고만 하는데, 그거 아세요? 알고 보면 진짜 막장인데…
생각해보세요. 사실 본처와 후처가 한 가족으로 살는데 자식들이 이것에 대해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드려요. 저의 경우, 10년 사귄 연인인데 그의 쌍둥이 형제와 엮이며 러브라인을 형성하고…주인공은 복수를 위해 거짓 사랑을 하는 척 연기하기도 하고요. 갈등 구조를 보면 ‘원수’ 관계에 놓인 상황이기도 해요. 찾아보면 소위 말하는 ‘막장’ 요소들이 많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걸 ‘막장’이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자연스럽게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죠. 이야기의 흐름과 상관없이 그저 자극적인 사건만 나열하고, 캐릭터가 일관성이 없이 논란이 될 상황만 연출하다보니 ‘막장’ 소릴 듣는 건데…저희 드라마는 그렇지 않아요. 개연성이 있고 밋밋할 정도로 일관성이 있고, 사연이 있어요. 점층적으로 사건이 만들어지고 터지고 해결되는 거예요. ‘휴머니즘’도 있죠.
애착이 대단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떤 드라마로 남을 것 같나?
배우 인생의 전환점? 지금도 촬영하면서 문득 문득 ‘이런 드라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그동안 연기 20년을 너무 안일하게 살아온 것 같아요. 이렇게 치열하게 배우게 되고 자극이 되는 드라마는 처음인 것 같아요. 모든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 촬영에 들어가면 대본을 아예 두고오시는 윤여정 선생님, 법칙을 깨버린 김상호씨,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김광규씨 등등. 자칫 도태될 수 있었던 제게 좋은 긴장감을 다시 불어넣어준 최고의 드라마죠.
드라마가 끝날 때, 욕심나는 말이 있다면?
‘아! 저 배우가 경상도 사투리를 할 줄 아는 구나’ ‘저런 연기도 가능한 배우였네?’ ‘저런 모습도 있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요즘처럼 우울한 시기에 제 캐릭터를 보면서, 우리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자가 조금이라도 힘을 낼 수 있다면 좋겠네요. 끝까지 최선을 다 할게요! 화이팅!
사진 강영국 기자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