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한공주'는 독립영화다. 대기업 '생산작'이 아니라는 말이다. 제작사 리공동체영화사는 연출자 이수진 감독의 1인 회사고, 이 감독은 빚을 내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뒀던 영화를 만들었다. CGV 다양성영화 브랜드 무비꼴라쥬가 배급을 맡아 200개 정도의 상영관에서 관객을 찾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기업 영화들이 400~500개 상영관을 '안전빵'으로 갖고 가는 것과 비교해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다. 하지만 입소문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청소년관람 불가라는 등급 판정도 관객이 영화를 만나는 지점을 멀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청소년들이 봐야 할 것 같은데,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유해성, 폭력성, 선정성, 약품 모방 위험이 크다"며 청소년들이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못내 아쉽다. 보호자 동반하에 관람이 가능하도록 등급 판정 개정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말들이 또 들린다.
앞서 이수진 감독은 스타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로테르담에서 교포분인데 15세 딸, 11세 아들과 같이 '한공주'를 보더라. 11세 아이가 봐도 이해 안 되고 안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부모님 반응이 '같이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 했다. 호기심이 많은 나이인데 뭐가 나쁜 것이고 잘못된 것인지 판단할 기회를 준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더 무분별한 자극에 놓여 있다. 왜곡된 성을 담은 영상들이 청소년들을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간다. 의식이 있는 청소년들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아닌 이들이 꽤 많다. 어른들과 함께보는 '한공주'를 통해 뭔가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기회조차 없는 게 아쉽다.
'한공주'는 모티프가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수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사코 언급하기를 꺼렸다. '성폭행'이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가상의 인물' 공주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응원했으면 하는 게 연출자로서 바람이다.
또 배우 천우희가 없었다면 공주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질 수 없었을 게다. 사실 '한공주'는 천우희의 소속사가 걱정과 우려를 표했던 작품이다. '써니'에서 존재감을 보인 그는 나무엑터스와 계약했고, '한공주'는 그가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하지만 천우희의 결정은 옳았고,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로부터 "이제 내가 그녀의 팬"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천우희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았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가게 된 공주가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이야기를 담은 '한공주'는 담담하게 사회의 문제들을 꼬집는다. 17세 소녀가 겪은 일들은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가슴 아픔이 깔렸다. 하지만 영화의 방점은 희망이다. 그동안 분노를 일으키게 한 여타 영화들과는 다른 감정을 전한다. 그리고, 공주를 응원하게 된다.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각종 해외영화제에서 수상을 이어가고 있다.
수상작이라는 것을 떠나 영화 마니아는 물론 일반 관객도 놓치면 후회할 영화다.
앞서 홍보마케팅사 딜라이트도 이 영화의 홍보 방향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지적 장애 아동 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해 공분을 일으켰던 '도가니'를 잇는 작품이라고 홍보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괜한 자극을 주기 싫어서였다.
10만이라는 숫자는 이들의 노력이 빛바랬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숫자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적은 개봉관이지만 영화의 작품성으로 입소문을 타고 누적관객 66만 명까지 치고 올라온 것처럼 '한공주'도 상응하는 관심을 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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