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시선’은 한국인 피랍사건을 주 소재로 인간의 본성과 종교적 신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며, 극에서 오광록은 세속적인 통역 선교자 조요한 역을 맡았다. 극장 개봉에 앞서 ‘시선’은 지난해 열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이미 관객을 만난 바 있다. 오광록이 직접 밝힌 영화제 당시의 반응은 ‘핫’(hot)했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 같다. 보통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습관이 그저 소비하고 마는데 ‘시선’은 책을 읽으면 여운이 남듯 여운을 준다. 개봉을 앞두고 떨리기보다는 늘 기대와 설렘은 있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시선’은 현장감과 관객들의 집중력을 위해 캄보디아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촬영지였던 안롱뱅 지역은 실제 교전이 있던 지역으로 지금은 제거됐지만 지뢰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와 폭염, 다소 열악한 환경에서 아찔하게(?) 촬영을 이어갔다. 이미 오광록은 ‘시선’ 언론배급시사회 당시 촬영 고충을 밝힌 바 있기에 배우와 제작진의 노고는 알려진 상황이다.
“의식주 자체가 너무나 더운 환경이었고 먹는 것 등 불편한 조건에서 ‘시선’ 촬영을 했다. 그래서 아쉬운 장면들도 초반에는 많았다. 보안 때문에 규제도 많았고 지뢰가 제거됐다고는 하나 혹시 몰라 걱정했지만, 제작진 중 해병대 출신의 용감한 청년이 본 촬영에 앞서 긴 풀들을 자르기 위해 먼저 탐방했다. 이미 한번 다녀온 사람이 있어서 안정감을 지닌 채 촬영에 임했다. 지뢰가 매설됐던 땅을 밟는다는 건 두려웠다.”
낯선 타지에서 목숨을 걸고 촬영해서인지 오광록의 연기는 한층 실감난다. 의식주의 불편 등으로 체중도 빠져 말 그대로 납치 상황에 처한 인물을 제대로 묘사한 셈이다. 타지에서 안전하게 촬영을 마치고 금의환향했지만, 한국에서도 또 한 번의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고.
“실제로 바다에 빠져 위험했다. 가슴 높이 쯤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발을 딛다가 허우적거리면서 파도에 쓸렸다. 대기하고 있던 잠수부에게 사인을 보내 그도 바다에 들어왔다. 잠수부가 나에게 산소호수를 줬는데 깊이 못물어서 숨 쉴 때 마다 물과 숨을 같이 먹었다. 산소도 모자라고 마른 숨을 삼키고 있었는데 그 순간 잠수부와 눈이 마주쳤다. 충혈된 그의 눈을 보고 평정심을 찾아야지 싶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힘을 빼고 나의 모든 걸 잠수부에게 맡겼다. 잠수부가 머리로 내 등을 바치고 해안으로 나를 밀었다. 내가 힘없이 해안으로 걸어 나오는데 30여명 정도의 제작진이 정지화면으로 나를 보더라. 힘겹게 촬영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정지화면이 풀리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다들 너무 놀라 꼼짝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뉴스에 나올 장면이 벌어졌다. 노련한 잠수부와 내가 평정심을 찾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날 촬영을 접고 다음 날 촬영을 진행했는데 아침부터 내린 비 덕분에 파도가 전날과 달리 2배 이상 세져 더욱 멋진 장면을 얻었다. 위태로운 순간도 지켜봐야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웃음)”
↑ 사진=MBN스타 DB |
“‘시선’은 ‘바보선언’ ‘바람 불어 좋은 날’ 등 우리나라 리얼리즘 영화에 바람을 불어넣어준 영화감독 이장호의 20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19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감독님의 출연 제의를 받고 시나리오를 펼치기도 전에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했다. 감독님의 영화를 향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겁고 청년같다. (웃음) 현장에서 몸살앓이 조차 없더라. 그래서 우리들이 힘내서 열심히 촬영한 것 같다. 영화 편집도 오래 걸렸는데 감독님만의 뚝심과 내공이 있어 영화의 완성도도 높다. 내가 맡은 조요한이 소위 날라리 선교사로 보이기도 하지만 12년 전 숨겨진 비하인드를 지닌 사연이 있는 인물이다. 마치 고달프고 쓸쓸한 날품팔이 같다. 초반 내 연기가 엉성하다고 생각해 아쉬웠는데 인생도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내 뜻대로 안되고 말도 함부로 나오고 후회하듯. 조요한의 인생도 엉성하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니 편안해지더라. 인물의 정체성도 찾아가고 호흡도 깊어지고 아쉬운 부분을 받아들이니 정말 편해졌다.”
‘시선’ 속 한국인 피랍사건의 주인공이 해외 선교봉사를 떠난 기독교인이라 자칫 종교영화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주요 소재에 종교가 사용됐을 뿐, 안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본성과 자신의 신념이 위기를 만났을 때의 고되, 나이와 국적을 넘는 우정 등 지극히 우리 실생활의 이야기를 담았다.
“해외 선교단이 독립을 꿈꾸는 반군들에게 납치돼 벌어지는 종교영화 아니냐 싶지만, 누구나 자기가 믿고 있는 자신만의 믿음과 신념이 거대한 장벽을 만나게 되거나 부딪힐 때 난관을 어떻게 헤칠 것인가 되비쳐보는 순간이 오지 않냐.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장벽이 높아 보일 때 자기 속의 영혼의 울림을 대면할 수 있는 작품이 ‘시선’이다. 비 기독교인인 내 눈에 ‘시선’은 지구를 사는 사람들의 어는 곳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다채로움을 인정하지 않는 세계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만 영화이기도 하다. 고달프고 외롭게 사는 조요한 같은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시선’을 권하고 싶다.”
오광록은 ‘시선’에서 다른 배우와 달리 혼자만 ‘크메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크레르 말인 크메어는 대중에서 너무도 낯설다. 그러나 익숙한 배우의 입에서 낯선 말이 나오기에 더욱 궁금하고 집중하게 된다. 현지인임을 착각할 정도로(?) 완벽한 오광록의 크메어 연기도 제대로 한몫했다.
“한국에서 3주 정도 크메어를 공부하고 촬영지로 이동해 하루 종일 현지 크메어 선생과 공부했다. 현지에 45일 있으면서 2~3시간씩 자고 매일 크메어를 공부했다. 일단 크메어는 언어가 아름답고 우리나라는 4성인데 크메어는 6성이며 어순도 영어방식이었다. 어려웠지만 간결한 표현들 중에는 아름다운 게 많다. 지금도 기억하는 크메어가 있다. 고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그만큼의 성취감이 늘 있더라.”
성취감으로 완벽한 크메어 구사 능력을 얻어 관객들까지 그 성취감을 맛보게 한다. 노숙자를 시작으로 춤 선생, 박사, 변호사, 교수, 무속인, 신부, 보스, 세속적 통역 선교사까지 다양한 작품만큼 많은 캐릭터를 연기해 온 오광록. 연기는 두 말하면 잔소리이고 캐릭터 변신에 대중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사진=스틸 |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