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V타임머신] 드라마 시간 여행의 진화는 계속 된다

1분 1초가 빠르게 지나가는 요즘, 본방사수를 외치며 방영일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점점 줄고 있다. 클릭 한 번만으로 지나간 방송을 다운 받고, 언제든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대다. 모든 것이 빨리 흘러가는 현재,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이를 몰랐던 세대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MBN스타 남우정 기자]

살해된 딸을 살리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난 엄마의 이야기, SBS ‘신의 선물-14일’(이하 ‘신의 선물’)이 연일 극적인 반전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딸이 죽기 전인 2주 전으로 돌아간 엄마 이보영의 목적은 딸을 살린다는 것 하나다. 단순히 딸을 살리기 위한 엄마의 고군분투를 보여줬다면 ‘신의 선물’은 그저 그런 드라마로 남았겠지만 타임슬립이라는 소재 하나만으로 다양한 장르를 품은 신개념 드라마가 됐다. 이에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타임슬립 작품들을 집중조명 해봤다.

◇ 10년 전부터 시작된 시간여행 ‘천년지애’

근래에 들어서야 타임슬립 작품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국내에서 판타지 드라마도 찾아보기 힘든 때였다.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이 때 등장한 SBS ‘천년지애’는 별종 드라마로 꼽혔다. 백제의 공주 부여주(성유리 분)가 2003년으로 시간이동을 하게 됐고 현대 사회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만화에서만 보던 황당한 설정에 시청자들은 코웃음을 쳤지만 시공을 초월하는 부여주와 아리장군(소지섭 분)의 로맨스는 인기를 얻었다.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신선한 소재가 한 몫을 했다.

특히 ‘천년지애’를 통해 첫 주연을 맡은 성유리는 당시 발연기 논란에 시달리긴 했지만 “나는 남부여의 공주 부여주다”라는 명대사를 탄생시켰다. 최근 브라운관에서 자주 볼 수 없는 김남진은 이 작품을 통해서 눈도장을 찍었다.

◇ 2012년에 온 왕세자 ‘옥탑방 왕세자’

‘천년지애’가 너무 강력해서였는지 이후로 타임슬립 드라마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타입슬립 드라마가 재등장 시기는 2012년이다. MBC ‘해를 품은 달’을 시작으로 판타지 사극 붐이 불더니 ‘옥탑방 왕세자’를 시작으로 타임슬립 드라마들이 출격했다.

‘옥탑방 왕세자’는 세자빈을 잃은 왕세자 이각(박유천 분)이 300년을 뛰어 넘어 서울로 오게 되고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려냈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선 자신의 세자빈을 빼닮은 세나(정유미 분)가 아닌 동생 박하(한지민 분)과 러브라인을 이루는 왕세자의 애틋한 로맨스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MBC ‘더킹 투하츠’, KBS2 ‘적도의 남자’와 치열한 삼파전을 벌였으나 마지막회에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나름 미스터리 구조를 가지고 극의 긴장감을 전하려 했으나 생방송 촬영으로 인해 어설픈 편집이 남발돼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도 일명 ‘비글 삼총사’로 불리던 정석원, 최우식, 이민호는 ‘옥탑방 왕세자’에서 빠질 수 없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리얼 커플 탄생시킨 달달한 로맨스 ‘인현왕후의 남자’

케이블 채널인 tvN에서 선보인 ‘인현왕후의 남자’는 시작 전부터 ‘옥탑방 왕세자’와 원조 논란을 겪었다. ‘옥탑방 왕세자’가 먼저 방송되기는 했지만 송재정 작가가 SBS에 먼저 제안서를 제출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원조 논란으로 잡음이 생기긴 했지만 두 드라마는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최상의 마무리를 하게 됐다.

‘인현왕후의 남자’는 인현왕후의 복위를 위해 신비한 부적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조선시대 남자 김붕도(지현우 분)가 2012년 드라마 ‘신 장희빈’에서 인현왕후 역을 맡은 최희진(유인나 분)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인현왕후의 남자’는 부적이라는 매개체 덕분에 타임슬립에 더욱 자유로웠고 역사를 미리 알고 과거를 바꾸려는 김붕도의 행동은 매회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그렇지만 ‘인현왕후의 남자’가 가장 화제를 모은 이유는 주인공 지현우, 유인나의 로맨스였다. 극 중 유난히 키스신이 많았고 달달한 분위기가 포착됐던 ‘인현왕후의 남자’는 두 사람은 실제 연인으로 맺어줬다. 드라마 종방연에서 갑작스러운 고백을 한 지현우 덕분에 한동안 연예계는 시끄러웠다.

◇ ‘신의’ VS ‘닥터진’, 원조 논란으로 얼룩

SBS ‘신의’와 MBC ‘닥터진’은 드라마 시작 전부터 표절시비가 일어났다. 일본 만화와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닥터진’은 현대 의사가 고려시대로 타임슬립하는 ‘신의’의 설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SBS 측은 설정의 유사성은 인정했으나 표절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막상 두 작품이 공개되자 표절시비는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작품 자체에서 흘러 나왔다.

송승헌, 이범수, 박민영이 참여한 ‘닥터진’은 원작이 있는 상태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피한 작품이다. 일본 드라마 ‘JIN’은 단순히 현대의 의사가 과거로 돌아와 환자를 고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진정한 교훈을 전하며 큰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닥터진’은 원작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로맨스에만 치중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인물인 흥선대원군(이범수 분)이 등장했지만 촘촘하게 그려지지 못했다.

‘신의’는 시작 전부터 초호화 캐스팅에 제작진도 드림팀으로 구성돼 기대를 모았다. 극 중간에 애니메이션을 삽입하는가 하면 화려한 액션으로 볼거리를 잡았다. 그러나 시작만 창대했다.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어설픈 CG와 느린 전개는 시청자들을 잡지 못했다. 타임슬립이라는 설정이 두 사람의 로맨스와 혼란의 시기인 고려시대를 극적으로 그려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 타임슬립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다…’나인’

2012년 무려 4편의 타임슬립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면서 시청자들도 진부함을 느끼고 있을 때 tvN ‘나인’이 등장했다. ‘인현왕후의 남자’로 능력을 인정받은 김병수 PD와 송재정 작가의 재회는 더 강렬했다.

기존의 타임슬립 드라마들에선 주인공들이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나인’은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을 막기 위해 9개의 향을 통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과거를 바꾸면 바꿀수록 더욱 암담해지는 현실은 매회 시청자들을 ‘멘붕’에 빠트렸다.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한층 올려놨다는 평을 얻기도 한 ‘나인’은 실제로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에 리메이크 판권 판매를 성공했다.

남우정 기자 ujungnam@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