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은 후, 친구도 가족도 모두 잃은 한공주(천우희 분)는 쫓겨나듯 전학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며 노래하고, 수영도 배우며 천천히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애쓴다. 차차 상처를 잊고 적응하려는 찰나, 과거의 굴레와 너무도 차가운 세상의 시선 때문에 좌절하며 상처 받는다. 노력대로 공주는 세상에 당당히 나올 수 있을까. / ‘한공주’
[MBN스타 여수정 기자]
↑ 사진=양상천 기자 |
조용할 것만 같은 이미지와 달리, 천우희는 유쾌, 상쾌, 통쾌 그 자체다. 영화를 잘 봤다는 말에 반갑게 웃으며 “정말요? 감사합니다. 전 기술시사까지 포함해 다섯 번이나 봤어요”라고 발랄하게 맞장구를 치며, ‘연기는 연기일 뿐 오해하지 말자’를 몸소 보여줬다.
천우희가 열연한 ‘한공주’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은 소녀가 상처를 치유하고 감내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주연 천우희의 섬세한 감정연기와 남성 영화감독 이수진의 디테일한 연출 등이 조화를 이뤄 개봉 전부터 수많은 영화제에서 이름을 알리며 기대치를 하늘까지 올리고 있다. 또한 지난해 열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으며 시민평론가상, CGV무비꼴라쥬상을 수상했고, 언론배급시사회에서도 박수가 나온 뜻 깊은 작품이기도 하다.
“반응이 정말 좋아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극장 반응이 기대되지만 영화제에서의 반응과 개봉 후의 반응이 다를 수도 있기에 정말 많이 긴장된다. ‘한공주’ 언론배급시사회 날 박수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도 정말 놀랐다. 기자간담회도 처음이었고 박수가 나왔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하고 진이 빠져 집에 오자마자 뻗었다. (웃음) 처음에는 집중이 좋고 감사하고 뿌듯했는데 어느 순간 걱정으로 바뀌더라. 상도 많이 받고 평도 좋았는데 기대만큼 못 미치면 어쩌지 싶다. 좋은 평가들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평가를 내릴 확률도 있기에 최대한 들뜨지 않으려고 한다.”
최대한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라는 천우희. 그러나 그러기에 그녀가 ‘한공주’에서 보여준 연기는 위대하며 보는 이들을 집중시킨다. 그녀는 대사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두 눈으로 112분 동안 연기를 이어간다. 억누르고 참는 감정 연기 덕분에 보는 이들이 더 애타고 초조하다. 때문에 단순히 캐릭터 흡수를 넘어 그냥 한공주 자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듯하다.
“다섯 번이나 ‘한공주’를 봤는데 가장 최근에 본 게 기억에 남는다. 첫 관람 문제점 체크, 편집된 부분 체크 등으로 몰입해서 보지는 못했는데 최근에 봤을 때는 내용을 다 아는 상황임에도 힘들더라.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이입이 된다. 공주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차츰차츰 쌓이게 된다. 한 부분이 크게 반전이라기보다는 작은 부분들이 하나씩 쌓여 완성되면서 크게 와 닿는 것 같다.”
익히 알려진 대로 천우희의 ‘한공주’ 사랑은 엄청나다. 그녀는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내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배역과 작품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조금은 무겁고 불편하고 신비로운 ‘한공주’의 무엇이 그녀를 매료시켰을까.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냥 내 것 이라는 순간적인 기분이 들었다. (웃음) 처음 ‘한공주’ 시나리오를 받고 한 번에 다 읽었다. 작품을 읽고 들었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 위에 나 이거 하고 싶다, 내가 할 것 같다 등의 생각이 들더라. 때문에 정말 열의를 가지고 오디션을 준비했다. 공주 역이 힘들지는 않았는데 사실 힘든 것과 어려운 건 다른 것 같다. 연기를 준비할 때는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지, 어떻게 감정을 억누르지 등으로 어려웠다. 공주가 처한 상황도 중요하지만 17살 소녀의 모습이 보였으면 해 여러 가지 다른 면을 고민했다. 공주가 자신이 겪을 일 때문에 감정적으로 살았다면 가식적일 것 같더라. 인간은 누구나 극복하려고하기에 공주 역시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려 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연기할 때는 한공주로 살았지만 쉴 때는 환기를 시켜야 몰입하고 힘을 비축할 수 있어 공주가 수영으로 보호막을 치듯 나도 보호막을 치기도 했다.”
↑ 사진=양상천 기자 |
또한 ‘한공주’의 소재는 청소년 성폭행이지만 가족의 소통, 친구의 우정, 사회의 반응과 대처, 문제 등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보는 내내 불편하고 분하기까지 하다. 등급제한 없이 모두가 봐야 될 필수 영화임에도 안타깝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청소년들의 문제점을 다뤘는데 정작 주인공인 이들이 볼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한공주’가 청소년관람불가라 아쉽다. 청소년들이 꼭 봤으면 하고 오히려 어른들도 보고 많은걸 느꼈으면 좋겠다. 또한 ‘한공주’가 어려우니 두 번을 봤으면 싶다. (웃음) 처음에는 스토리가 보이니까 어렵고 힘들겠지만 한 번 더 관람해 반짝 빛나는 10대 공주 그 자체를 봤으면 한다.”
천우희를 만난 한공주는 동안페이스인 그녀 덕분에 스크린에서 반짝 반짝 빛난다. 함께 친구로 열연한 정인선, 김소영 등과도 나이차가 전혀 없어 보인다.
“다들 내 실제 나이를 보고 놀라더라. (웃음) 나만의 동안 비결은 없고 아마 10대 역을 자주 하다 보니 마음도 어리게 생각하려 한다. 오히려 어린 친구들과 연기하면서 젊어지는 듯하다. (웃음) 현장에서 10대로 있다는 게 비결 아닌 비결 같다. ‘써니’ 끝난 후 오디션을 볼 때 배역에 제한이 있더라. 20대 역을 오디션 봐도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어려 보였던 것 같다. 당시 난 모든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나이에 맞는 옷을 입어도 매우 어색하더라. 어려 보인다는 게 좋지만 욕심나는 배역을 못해 아쉽기도 했다. ‘한공주’와 ‘우아한 거짓말’을 하고 할 수 있을 때 마음대로 하자고 마음을 편하게 놓으니 ‘카트’에서 20대 역을 맡게 되더라.”
줄곧 10대로 대중을 만났던 천우희는 ‘카트’에서 20대 미진 역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첫 20대 연기라 그녀는 물론 대중까지 기대되고 떨리는 상황이다.
“‘카트’는 나의 첫 20대 역을 선보이는 작품이다. 비정규직 이야기라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처음에 연기를 어떻게 해야지 등 생각이 많았지만 그냥 많은 인원 중 한명으로 보이고 싶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물론 장면 어딘가에 다 등장하긴 하지만. (웃음) 눈에 들어 오네가 아닌 그냥 사람들 중 한명이고 싶다. 아마 찾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첫 20대 역을 맡아서인지 ‘카트’를 이야기하는 천우희의 모습은 몹시 설레는 듯했다. 해보고 싶은 배역을 묻던 중 “남자를 들었다놨다하는 요물 역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자 “내가 스스로 ‘섹시하다’고 어필하면 다들 웃더라. 아마 나이를 더 먹으면 농익을 것 같다”며 팜므파탈 역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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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