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가해자는 법의 테두리로 심판받지 못하는 미성년자다. 소년원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선에서 용서해야 할까, 아니면 가해자 역시 똑같이 고통을 받게 해야 하는 걸까.
똑같은 고통을 줘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의 법은 미성년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러니 직접 나서 그 아이를 죽여야 할까. 그러면 나는 살인범이 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평범한 가장 상현(정재영)은 아내와 사별한 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만 바라보며 사는 아빠다. 어느 날, 하나뿐인 아이가 겁탈당한 뒤 살해돼 영안실에서 자신을 맞이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어떤 아빠의 눈이 뒤집히지 않을까.
형사 억관(이성민)은 상현에게 범인이 곧 잡힐 테니 집에 가 있으라고 말한다. 딸을 잃었는데 가만히 집에만 있을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가해자들이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 상현. 누군가가 보낸 가해 학생의 집 주소를 찾아간다. 딸아이가 겁탈당하는 장면을 보고 키득거리는 아이에게 방망이질한다. 분노가 극에 달한 복수의 시작이다.
피해자의 아버지였던 상현은 이때부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된다. 상현은 사람이 죽었는데 태연스럽게 스키장이나 돌아다니는 다른 가해 학생을 찾아 길을 떠난다. 안타깝고, 답답한 여정이다.
법을 수호해야 하는 형사인 억관은 살인용의자가 된 상현을 쫓는다. 현실의 법체제를 안타까워하지만 경찰의 임무를 다해야 하는 남자. 상현의 상황을 이해하지만 법을 지켜야 하는 이로써 고민과 답답함이 이해된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딸을 잃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쫓는 형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물론 중심은 정재영이 연기한 상현이다. 상현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과 울분을 토하고 분노, 폭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감정이 관객에게 온전히 전이된다. 영화는 정의를 강조하며 자식을 잃은 남자의 편에서 전개되는 듯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 있는 부분을 잡아주는 건 억관이다. 두 사람의 연기는 굳이 꼽지 않아도 될 만하다.
청소년 범죄와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담아낸 영화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흔적을 두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드러낸다. 두 캐릭터가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지만, 이 영화의 소재가 그럴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객관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주관적이지도 않다. 법과 정의는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회 현실의 답답함을 전하는 게 목적으로 보인다. 법과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상현에게 문자 메시지를 전해주는 인물이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 있지만, 그 상황은 눈에 띄지 않는다. 반전보다 사건과 관련된 두 캐릭터에 집중했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정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법과 정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제대로 했다. 영화를 보고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상현의 사건과는 별개로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짚은 장면이 인상 깊다. 게임팩 때문에 친구를 죽였던 10대 학생은 자신을 찾아 온 억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이제 그만 찾아오세요. 죗값 다 치렀잖아요."
일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122분. 청소년관람불가. 10일 개봉.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