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이 가수를 기억하십니까?
13세 초등학생 신분으로 풋풋한 냄새를 물씬 풍기던 그 남자, 아니 그 사내. 1998년 이글파이브라는 그룹의 막내로 ‘오징어 외계인’을 불러대던 그 아이돌. 그는 초등학생 꼬꼬마시절부터 청년기, 그리고 결혼을 하기까지 대중들의 관심 속에서 자라왔다.
17년 후인 지금,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어떤 가수들의 프로듀서로, 또 골프선수로 살고 있는 리치의 나이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놀랍겠지만 어린 시절 추억으로 남은 그는 이제 막 30살이 됐다. 서른의 나이에서 되돌려 본 화려했던 그 시절은 어떤 추억이 됐을까.
#13세 꼬마의 사회 첫 걸음
지구를 지키는 5명의 독수리를 표방한 이글파이브는 당시 국내 가수들 중 가장 막내로 야심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궤도’ ‘오징어 외계인’ 등의 히트곡을 냈지만, 그 시작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3살짜리 어린 학생이라는 사실을 놓고 대중들의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당시 진행된 설문에서도 ‘지나친 상업주의로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대답이 응답자의 74.9%에 달할 정도였다.
리치는 “내가 데뷔하기 이전까지는 그런 사례가 없었지만, 데뷔한 이후로 이슈가 됐다. 방송국에서의 제지도 있었고, 크게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잘 풀렸던 것 같다”며 정작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고 했다.
바로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는 “학창시절이랄 게 없다. 그래서 아이에게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3살인데 벌써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어요. 제가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대리만족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끔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고 했다. 리치는 이글파이브 시절 자신을 따라다니던 팬들이 지금은 대기업 직원이 돼 있거나 결혼했다는 소식을 알려온다고 말했다. 교복 입은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들이 지금은 한 명의 친구가 된 셈이다. 리치는 “우리는 같이 살아가고 있다”며 지금까지 함께하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대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이글파이브의 막내는 2011년 새로운 이름 ‘리치’로 홀로서기에 나섰다. 마냥 어리고 귀여운 이미지를 지워내고 이제 제법 성숙한 청년이 돼있었다.
# “음악 포기 했냐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
솔로로서도 그는 정규 앨범을 고집하며 제법 선방했다. 매년 정규 앨범을 발매하던 그는 2004년 앨범 이후 무려 3년의 공백을 보냈다. 그간 뭘하면서 보냈을까. 그의 공백 3년은 그에게 큰 변화가 있던 시기로 봐도 무방하다. 가수 리치가 ‘사장’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연예기획사인 ‘리치월드엔터테인먼트’를 세운 그는 새 앨범으로 대중들을 다시 찾았다.
리치는 3집 활동을 마친 2005년 미국으로 향했다. 악기를 구입하고 생활비를 쓰다 보니 챙겨간 돈이 금세 떨어져버렸다. 돈을 벌기 위해 친구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안에서 음악적 뜻이 맞는 사람들과 밴드를 구성해 투어에 나서기도 했다.
3년 만에 복귀한 리치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지만 2009년 이후 앨범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됐다. 간간히 뮤지컬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갔지만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가수 리치는 가요계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하지만 리치는 “포기한 것처럼 보이냐”며 의아해했다. 필드에서 뛰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그는 “내 앨범 역시 포기한 것이 아니다. 아직 기약은 없지만 내 인생의 반을 음악에 투자했다. 쉽게 포기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키우고 있는 그룹 에이블(ABLE)을 언급하며 조만간 새 앨범으로 대중들을 찾는다고 말했다. 선수로 뛰다가 이제 감독이 된 리치는 이들을 소속가수가 아닌, 자신에게 인생의 일부를 맡긴 친구들이라는 생각으로 절대 ‘포기’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프로골퍼,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
그는 또 하나의 도전을 하고 있다. 바로 프로골퍼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그로서는 큰 변화가 아니었지만 대중들에게, 또 그의 지인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도전을 즐기는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왜 굳이 어렵게 살아가려 하느냐’며 안쓰러워한다고.
리치는 “처음 골프를 시작하게 된 건 일상생활에서 탈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재미를 붙여서 본격적으로 도전을 시작하게 된 거다. 사실 골프를 하면서 잃는 것도 많다. 특히 시간적인 부분은…하지만 지금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에 뭐든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 서른 살의 리치는 세 살배기 아이의 아빠다. 지난해 리치는 SBS ‘스타 부부쇼 자기야’에 아내와 함께 출연해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겪었던 사연과 그 이유를 밝힌 것이다.
리치는 그 이유로 “단지 어려서 그랬다”며 숙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책임감 때문에 생긴 아이를 낳았는데 어린 마음에 판단력이 흐려졌다. 혼자 방송에 나간 것도 아니고 아내가 함게 나갔다. 아내로서는 정말 큰 결심을 해준 것”이라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 방송은 리치에게 큰 깨달음을 안겼다. 어렵게 털어놓은 그 말에 지인들은 축하의 말을 건네며 아이의 탄생을 함께 축하했고, 리치는 비로소 아이의 탄생이 단순히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매번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는 리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간 사람들에게 항상 자신의 모든 것을 공개해왔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자양분이 되는 것은 아이였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타협하고 싶어 하던 그의 뒤에는 항상 가족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가족들 덕분에 내 본래 모습을 찾았다. 다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포기할 수 없는 것도 다 내 가족들을 위해서다”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