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쁘게 활동하시는 선배가 계시는데요. 그 선배가 신인 시절에 최고 인기 스타 배우와 촬영을 함께했는데 그 인기 스타분이 '연기가 재미없다'고 하더래요. 당시 신인이었던 선배는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화가 났었다는데, 지금 과거의 그 상황을 느끼고 계신다더라고요. 이제야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고도 했고요. 그 얘기를 듣는데 엄청나게 슬펐어요. 전 재미가 없진 않아요. 못 해서 아등바등하는 건 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죠."
고아성은 선배들이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한 듯했다. 그는 "배우는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이제 하나도 어려울 게 없는 연기자한테도 눈물이 보인다"고 했다.
고아성은 13일 개봉하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감독 이한)에서 모녀로 호흡을 맞춘 선배 김희애를 향한 애정과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제가 그동안 너무나 좋은 선배들과 일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여자 분이라서 더 각별했어요. 선배도 어릴 때부터 일했으니까 더욱 본받고 싶었고, 가깝게 느껴졌죠. 선배님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연기하셨는데 계속 그 자리에 계신 거잖아요. 정말 고마운 일인 것 같아요. 제가 4살 때부터 연기를 했는데, 그때는 어딜 가나 있던 사람들 중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요."
오래 연기를 해온 걸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연기는 즐겁다"는 강조다. 고아성은 지금보다 나이를 더 먹은 후가 기다려지는 듯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보면 통통 튀는 20대가 맞다. 아직 20대, 어린 나이인데 범상치 않은 작품들에 많이 참여했다. '괴물', '여행자', '설국열차' 등이다. 예쁘고 여성스러운 역할도 하고 싶을 텐데, 필모그래피가 채워지는 건 다른 방향이다.
"배우로서 욕심이 그런 쪽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어떤 즙을 내서 뿜어대고 싶은 마음이 있죠. 솔직히 유쾌한 건 즙을 낼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이번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 즙을 짜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게 연기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 같아 아쉽죠."
물론 욕심도 있긴 하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역할도 잘 할 것 같다고 하자 손사래 친다. "제가 상큼 발랄한 기운을 주는 배우는 아닌 걸 알고 있어요. 그런 역할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런 쪽보다 다른 쪽에 더 끌려요."(웃음)
고아성은 '우아한 거짓말' 전후로 개인적인 삶도 바뀌었다고 한다. 만지가 천지의 말 한마디를 제대로 못 들어준 것을 후회했는데, 그는 후회 없이 살려고 노력한다. '우아한 거짓말'은 어린 나이에 말없이 세상을 떠난 소녀 천지(김향기)가 숨겨놓은 비밀을 엄마 현숙(김희애)과 언니 만지(고아성), 그리고 친구 화연(김유정)이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학교 폭력, 왕따, 자살 문제를 담담하게 그렸다.
"제가 언니 2명이 있어요. 원래 가족들은 어릴 때 싸우잖아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거슬리는 일은 말하기 전에 필터링을 하는데 이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된 거죠. 이제는 엄마나 언니들한테 다 얘기해요. 솔직히 불편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용기를 내서 얘기하면 물꼬를 트고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사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우아한 거짓말' 출연을 고사했지만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2년간 쓴 글을 모은 '애도일기'를 읽고, 감독에게 전화해 출연에 응했다. 그는 "그 책을 읽고 자신감이 생긴 건 아니었다"며 "촬영 내내 있지도 않은 동생이 실제 죽은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고아성은 그간 '송강호 아빠'와 호흡이 유독 인상 깊다. 송강호와 김희애를 비교한다면?
아역 배우들과의 연기도 좋았다. 천지도 그랬지만, 화연 역을 맡은 김유정을 향한 신뢰가 컸다. 솔직하게 화연 역할에 본인도 눈이 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화연 캐릭터가 매력적이더라"며 "연기할 때도 자꾸 화연을 눈여겨보게 됐다"고 말했다. "극 중에서 천지한테 화연이가 '미안해 미안해'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주변 친구들이 '넌 왜 맨날 미안하냐?'고 하는데 화연의 눈빛 속에서 어떤 희열감이 보이더라고요. 정말 유정이가 잘했다고 생각해요. 저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아요."
그의 과거나 주변에서 영화 속 경험은 없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비슷한 상황들이 있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는 몰랐어요. 지금 보니 화연 같은 친구들은 어디에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사회에서도요. 어렸을 때부터 배우 일을 해오면서 초등·중고등·대학교 등에서 환경이 바뀌면서 스스로 터득한 게 있죠.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건 학교를 띄엄띄엄 나와서예요. 딱 일주일이거든요. 맨날 나오면 똑같은 사람이 돼요. 전 문제 없이 지냈어요. 분명히 질투하는 이들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건 또 다르게 보면 관심이에요. 그럴 때 제가 먼저 말 걸어요. 그러면 그들도 바뀌게 되더라고요. 전 트러블 있는 걸 안 좋아해요. 평화주의자거든요.헤헤헤."
jeigun@mk.co.kr/ 사진 유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