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초능력자(너의 목소리가 들려),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여자(주군의 태양)에 이어 외계인이라니…. 우리가 알던 E.T 말인가? 그 외계인이 대한민국 톱여배우와 사랑에 빠진다고?
27일 인기리에 끝난 SBS 수목극 '별에서 온 그대'는 배우들의 캐스팅 전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SBS가 신비한 능력자에 제대로 꽂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캐스팅부터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배우 김수현이 외계인 도민준이고, 전지현이 톱스타 천송이 역이었던 것. 김수현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과 '드림하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히트시킨 장본인이 아닌가.
전지현은 지난 1999년 드라마 '해피투게더' 이후 오랜만에 안방극장을 찾아오는 것이라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앞서 김수현과 호흡을 맞춰 흥행한 영화 '도둑들'을 통해 매력을 뽐냈기 때문에 전지현을 향한 관심은 높았다.
또 한 번 '엽기적인 그녀'의 코믹한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떨쳐냈다. 전지현은 상식 없는 백치미 톱스타 연기를 또 다른 모습으로 제대로 보여줬다. 만취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을 부르고 "븅자년에 죽빵을 날릴~"이라는 대사를 날리는 모습과 '해지마~해지마~"라는 '개콘'의 오나미 패러디 등은 두고두고 자료 화면으로 쓰이지 않을까 할 정도다.
또한 앞서 한 번 호흡을 맞췄던 김수현과 전지현은 ('도둑들'에서 애틋한 감정이 있던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이모와 조카 커플'이라는 시선이 단번에 사라진 것도 긍정적이었다.
두 사람의 연기 덕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역전의 여왕'과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을 집필한 박지은 작가의 글솜씨와 장태유 PD의 연출력이 돋보이기도 했다.
1609년(광해 1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비행물체 출몰에 관한 일을 바탕으로, 400년을 살아온 남자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담았다. 박 작가와 장 PD는 허무맹랑할 수 있는 외계인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 호감을 샀다. "병자년 방죽을 부리다", "밤중에 버티고개에 가서 앉을 놈들" 등 김수현의 조선 욕은 참신했고, 시간정치 초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매트릭스 촬영 기법 등의 연출은 화려했다.
앞서 '별그대'는 애초 박해진이 신성록이 연기한 이재경 역에 캐스팅됐으나 갑작스럽게 바뀌어 드마를 향한 잡음이 우려되기도 했다. 뮤지컬에서 보여준 신성록의 모습이 소시오패스 캐릭터와 맞을 것 같다는 제작진의 판단이었다. 아쉬운 역할 변경이었지만 그는 오매불망 송이만 바라보는 '바보 휘경'으로 자신의 매력을 발산했고, 재경의 악행을 끝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맹활약했다.
또한 SBS 측이 호언장담했던 톱스타 카메오 출연은 류승룡, 유준상, 수지 등 몇몇으로 그쳐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들은 충분히 극의 재미를 전했다.
마지막회는 해피엔딩이었다. 지구를 떠난 민준은 웜홀을 통해 시공을 초월했다. 처음에는 지구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몇 초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계속된 노력 끝에 송이와 재회할 수 있었다. 영화 '시간여행자의 아내'(감독 로베르트 슈벤트케)처럼 두 사람은 사랑을 이어갔다.
한편 SBS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는 잠시 접고 미스터리 서스펜스를 선보인다. 박유천, 손현주 등이 출연하는 '쓰리 데이즈'다. 세발의 총성과 함께 실종된 대통령을 지키려는 경호원의 활약을 그린다. 3월 5일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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