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일본 우익 인사들의 ‘망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 내 여론도 분분하다. “위안부, 문제 없다”는 아베의 발언에 무라야마 前 일본 총리는 “부끄럽다”고 평하며 한국인들에게 대신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지만 일본의 우경화(右傾化)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힘의 논리에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 최근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 전시된 대한민국 작가들의 작품 ‘지지 않는 꽃’이 여성 인권과 역사의 문제로 조명시켰다는 호평 속에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으로 환기시켰다.
이와 함께 독립 운동가 안중근의 생애 또한 주목받고 있다. 도마 안중근(1879~1910)은 34세의 젊은 나이에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한 한국 독립운동의 영웅이자 동양평화론의 주창자다.
최근에는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이 2월 14일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또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쓴 편지 중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는 내용이 공개돼 깊은 울림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는 순국한 지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불멸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묵직했던 안중근의 삶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6일 무대를 끝으로 막을 내리는 뮤지컬 ‘영웅’의 살아있는 영웅, 안중근 역의 JK김동욱(39)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해로 ‘불혹’이 됐다. 40세라는 나이에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하하. 벌써 그렇게 됐다. 아무래도 뜻 깊은 마음이 크다. 30대에 하는 것과 지금 이 정도 나이에 하는 건, 작품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또 이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해도, 어린 나이에 열정이나 그런 것만으로 들이댄다 해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해온 모습을 통해 이런 역할을 맡게 된 것도 있는 것 같고,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영웅’은 창작 뮤지컬 중에서도 최고의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맞다. 이번이 일곱 번째 공연인데, 워낙 초연 때부터 좋은 작품으로 평가를 받았던 만큼 부담도 됐다. 정성화, 류정한 씨 등 기존 배우들도 워낙 잘 소화하셨고, 주위 반응이 뜨거운 터라 부담이 됐다. 또 작품 자체가 주는 무게감도 있었다.
-‘JK김동욱의 안중근’을 만들어가는 데서 많은 고민이 있었겠다.
▲평소 내 노래 스타일을 반영해야 할 지, 스타일을 바꿔 해야 할 지 고민이었다. 특히 뮤지컬에선 정확한 발음이나 가사 전달 등이 중요한 만큼 부담도 있었다. 옆에서 누가 지적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주셨지만 솔직히 초반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듣는 사람들은 잘 못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처음엔 연습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읽어가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발성이 뮤지컬 배우와 다르다는 점에서 일부 지적도 있었다.
▲그런 지적을 예상 안 했던 건 아니다.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기존 뮤지컬을 사랑해주신 팬들 중엔 편견을 갖고 계신 분들도 계셨을 것이고, 가수들이 출연하는 뮤지컬을 많이 접한 분들은 또 다른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고. 최대한 제가 나오는 부분이 튀지 않고 흐름을 잘 타고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연에 임했다. 개인적으로 슬로우 스타터라 초반과 지금 느낌이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중근 역에 트리플 캐스팅 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봤나.
▲객석에서 보진 못했는지만 연습할 때 여러 번 봤다. 각자 본인들만의 연기, 캐릭터들이 있더라. 나는 노래도 유심히 듣지만 디테일을 열심히 봤다. 디테일 하나하나가 연기의 소스가 되더라. 다른 점은 두 분 다 슬림하다는 점? 시작할 때도 다른 배우분들이 ‘이국적인 안중근’ ‘프랑스 안중근’이라면 나는 ‘토종 안중근’ ‘중동 안중근’ 이렇게 표현도 했었다.(웃음)
-JK김동욱만의 안중근을 만들어내기 위해 특별히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내가 갖고 있는 무게감을 많이 주고 싶었다. 평소 성격이 무게를 잡는 성격은 아니지만, 외적으로나 목소리로 충분히 무게감이 전달된다고는 생각한다. 분명 배우들마다 외모나 목소리가 다르니까, 나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무게감을 주고 싶었고, 초지일관 그런 느낌을 가지고 가고 싶었다. 강인하고 부러지지 않는... 하지만 연출가들은 여릴 땐 여린, 인간미를 보여주자고 하셨다. 안중근 의사도 영웅이지만 사람이니까, 강할 땐 누구보다 강한 느낌으로 가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분명했다.
-무대 위 ‘영웅’ 팀의 팀워크는 특히 여느 뮤지컬보다 단단해 보여 인상적이었다.
▲기존 멤버들이 계신 덕분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어떤 사람이 들어가더라도 끈끈하게 뭉치게 되는 마음이 생기는 듯하다.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아니지만,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누구라고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 시간 여의 러닝타임 동안 안중근은 한 번도 마음 편히 웃지 못해 안타까웠다.
▲매번 겉으로는, 속된 말로 농담 주고받으며 ‘픽’ 웃을 수 있는 건 없으셨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런 독립운동을 하면서 겉으로 표현하는 웃음은 없었어도 안으로 정말 깊은 웃음을 웃지 않았을까 싶다. 함박웃음이나 미소는 아니지만 본인이 앞장서서 그런 큰 거사를 치르고서 세상을 떠날 때는, 절대 웃음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예상해보는 건데 지금쯤은 정말 마음 속으로 큰 웃음을 짓고 계시지 않을까 싶었다.
-요즘 일본 아베 총리가 망언을 거듭하는 등 한-일 정세가 좋지 않은데.
▲그러게. 이런 시기에 ‘영웅’ 무대에 서게 되니 또 많은 생각이 들더라. 책임감도 들고, 안중근 의사의 삶과 선택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된다. (그는 아베의 발언에 대한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주위의 반응을 전하자 허허 웃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혹은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던 장면은 어떤 부분인가.
▲전체적으로 작품이 주는 느낌이 무겁다기 보다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웠다).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면 내가 해석해서 만들어 가면 되는데, 실존했던 인물을 표현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노래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죽는 장면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를 하다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사실 죽어본 적이 없으니 죽기 직전의 심정을 연기한다는 게 힘들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서편제’ 때도 죽는 연기를 했었지만 죽기 전에는 많은 생각들이 드니까. 그 표현은 늘 새롭게 느껴졌다.
또 ‘십자가 앞에서’라는 노래를 할 때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고민이 많이 됐다. 이토를 죽이기 전에 주님께 이야기 하고 가는 장면인데, 꽤 오랫동안 힘들다가 얼마 전에 그 마음을 찾게 됐다. 대체로 넘버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다. 또 가슴이 벅차오르고 짜릿하기도 하다. 작품 안에서 여러 감정을 느끼게 돼 처음엔 부담이 컸지만 하고 나면 되게 개운하다. 한 회 한 회 공연을 마칠 때마다 ‘큰 일을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연 끝난 다음에 기립박수를 받으면 어떤 느낌인가.
▲‘장부가’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커튼콜 하면서 이토 형님 다음에 내가 걸어 나올 때 배우분들이 가운데를 열어주시는데 그 땐 매번 소름이 돋는다. 정말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전율이 온다. 관객들이 계속 박수 쳐주시는데 콘서트 때의 기립박수와 정말 느낌이 다르다. 콘서트 땐 손을 흔들어주는 느낌이라면 ‘영웅’ 때는 나도 함께 박수를 친다. 모두 다 하나가 돼 보신 거니까. 기립박수 받으면 ‘우리가 표현하고자 한 것을 공감하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뿌듯하다.
-데뷔 후 뮤지컬이 4편째다. 더 자주 할 수도 있었을텐데 솔직히 좀 뜸했다.(그는 2004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시작으로 ‘서편제’, ‘천변캬바레’에 이어 ‘영웅’에 출연했다)
▲10년 전 뮤지컬을 처음 했다. 당시엔 신인이었는데 뮤지컬 배우들 입장에선 ‘대체 어디서 굴러온 놈인데 주연을 하지?’ 싶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컸다. 주연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은데 당시엔 ‘내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 이후에도 뮤지컬 쪽에서 여러 번 제안은 들어왔지만 가수는 가수를 하고 뮤지컬은 뮤지컬 배우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뮤지컬은 정말 매력 있는 작품이긴 한데, 늘 고민했었다. 물론 지금은 좋은 작품이라면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많다. 평소 무게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가벼운 역할을 맡는 것도 신선할 것 같다. 언젠가 기존 이미지와 상반되는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
-끝으로 JK김동욱이 생각하는 내 마음 속 영웅이 있다면.
▲아주 어렸을 때는, 누구나 갖고 있는 슈퍼 히어로들 있지 않나. 슈퍼맨이었다. 빨간 망토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학교 끝나고 두르고 뛰어 다니곤 했다. 어렸을 땐 막연하게 만화 속 초인적 힘을 가진 슈퍼히어로를 꿈꿨다. 그런데 이번에 안중근 역할을 맡게 되면서, 그 어린 나이에 그 사람이 남긴 업적으로 자연스럽게 ‘영웅’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면서 ‘아 사람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였구나’ 싶더라.
특히 나이도 들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영웅이 그리 멀리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었을 땐 ‘성공하지 못하면 베풀지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성공에 대한 의지를 다졌는데, 사실 돌아보면 성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부도 더 많이 하고 그렇지 않나. 가령 황금자 할머니 같은 분도, 그렇게 고충을 겪고 사셨으면서도 기부도 하시고 봉사도 하시고... 그런 분들이 진정한 영웅이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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