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이제는 그에게 다른 수식어가 달릴지 모르겠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감독 김진무) 때문이다.
극 중 철호(김인권)의 아내 영미로 나오는 오산하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고문받다 죽임을 당한다. 일종의 순교다. 갖은 고문과 핍박에도 신앙심을 버리지 않는 그는 몸은 피폐한데, 눈빛만은 살아있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순교자의 눈이 꼭 오산하처럼 빛날 것 같다. 김인권 주연의 영화라 오산하의 분량은 적다. 하지만 역할은 크다. 영화의 처음과 중간, 끝에 등장하면서 관객을 몰입시킨다. 김 감독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다.
오산하는 특별출연이라는 타이틀이라 영화 정보에서 이름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영미가 누구인지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웬만한 조연보다 빛난다.
"솔직히 또 죽는 역할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싫었어요. 안 한다고 했죠. 전 진짜 밝은 역할을 하고 싶은데 왜 다들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성경 공부하는 모임의 언니가 순교한다는 의미라고 해서 참여하게 됐죠."
"솔직히 북한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수준밖에 몰라요. 하지만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걸 듣고 놀랐죠. 저도 신앙이 있는데 편안히 기도하는 걸 감사해야 한다고 깨달았어요. 거기서는 신앙을 갖는다는 게 죄가 되고, 숨어서 기도해야 하는 게 상상이 안 가더라고요. 마지막에 실제 동영상 나오잖아요? 그것보고 마음이 안 좋기도 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반성하게 됐어요."
영화는 기독교를 믿고 의지하는 마을 사람들을 적발해 폭행과 고문은 기본이고, 공개 처형까지 하는 모습이 담겨 섬뜩하다. 극 초반부터 고문을 받는 철호와 영미의 모습이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인상을 찌푸릴 장면들이 많긴 하지만, 영화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조심스럽게 고발해 나아간다.
오산하는 "실제로 힘들게 촬영했다"고 털어놓았다. 2012년 말부터 2013년 3월까지 가장 추운 때 강원도 산골에 있었다. 날씨 탓에 추위가 힘들기도 했지만, 당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소속사와 결별하며 맘고생을 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소속사 탓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하늘에서 저를 성숙하게 만들어주나 보다 했죠. 주위에 좋은 매니저와 회사를 만나 재미있고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워요. 제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이 영화를 찍었는데, 강원도 산골에서 혼자 있으니 더 외롭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아픔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오산하의 연기는 빛난다. 핍박받고 고문받는 영미의 삶이 자연스레 묻어나는 것 같다. 용석 할머니로 등장하는 데뷔 50년 베테랑 배우 최선자도 그를 추어올렸다. 오산하는 "이 영화를 하며 정말 정말 기분 좋았던 단 한 가지는 최선자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일"이라고 좋아했다.
그가 칭찬받은 이유는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문을 받아 아프고 온몸이 피투성이지만 눈빛은 살아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삶의 애환이나 강인함, 의지가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연기가 눈빛에서 묻어나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는 오산하. 그의 말이 무엇인지는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뿜어져 나온다.
오산하는 "’악마를 보았다’가 끝나고 계속 죽는 배역만 들어왔다"며 "청순가련한 여자가 죽는 역할은 정말 다 제의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죽는 역할을 계속 하는 게 정서적으로 안 좋더라"며 "또 예쁜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정말 많이 거절했었다"고 회상했다.
’신이 보낸 사람’에 들어가기 전, 제작비도 더 많고 배급사도 튼튼한 곳의 작품을 제안받았었다고 한다. 그의 예쁜 얼굴을 보여줄 수도 있었던 작품. 하지만 출연은 불발됐다. 그가 제의받았던 역할을 맡았던 여배우는 현재 엄청난 관심을 받고 드라마에서도 자주 출연하며 사랑받고 있다. 후회할 법도 한데 오산하는 그렇게 생각 않는다.
그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배역을 따내지 않은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웃었다.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의미있는 작품에 출연하게 돼 좋다"고 미소 지었다. 특별출연이라 출연료도 받지 못하고 대우도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자신을 보여줄 수 있어서, "나를 알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배시시 웃었다. 그러면서 "영화가 기독교 색깔이 짙긴 하지만 북한의 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꾸미고 과장한 건 없다고 한다. 이런 식의 영화는 없었던 것 같은데 많은 분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과거 상처가 남았는지 이전 소속사 이야기를 할 때 눈물을 비췄던 그는 "지금은 많이 밝아졌다"며 "다시 또 달리고 싶다"고 긍정했다.
진현철 기자jeigu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