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최근 1~2년 사이 힙합씬이 잔뜩 고무됐다. 과거 마니아들의 음악으로 한정됐던 힙합이 대중음악 주요 소비층인 2~30대 대중에 강렬하게 스며든 덕분에 이름이 좀 알려졌다 싶은 래퍼들의 곡들이 음원 종합차트에서 1위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아이돌 혹은 스타들과의 협업을 등에 업으면 그 파급력은 더 커졌다. 지난 여름 불거진 힙합 디스전도 전례 없이 뜨거운 관심을 얻었다.
많은 래퍼들이 대중적으로 약진한 가운데, 힙합을 즐기는 이라면 누구라도 알 만한 이름이지만 아직 대중에겐 ‘3초 장범준’이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한 래퍼 크루셜스타(24·본명 박세윤) 역시 2014년 주목할 만한 힙합 뮤지션이다.
지난 해 가을 공익 근무를 끝낸 크루셜스타는 요즘 쉴 새 없이 작업물을 내놓고 있다. 11월 두 번째 믹스테이프 ‘Drawing #2 : A Better Man’을 발표한 데 이어 12월엔 싱글 ‘A Winter Love Song’을 내놨다. 연말 공연을 뜨겁게 마치더니 이달 초엔 디지털 싱글 ‘Super Crucial Rap 2’를 발표하는 등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곡에 담기는 감성은 주로 곡자의 심정이다. 작업 시기와 발매 시기가 꼭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크루셜스타의 음악을 통해 당시 그의 심경 또한 짐작해볼 수 있다.
“행복할 때 행복한 가사 나오고 우울할 때 우울한 가사가 나와요. 저 음악 역시 감정에 많이 따르는 편이고요. 연애할 땐 사랑 노래도 많이 나오고, 심적으로 힘들 땐 어두운 노래가 많이 나오죠.”
그런 의미에서 ‘Drawing #2 : A Better Man’와 ‘A Winter Love Song’은 전혀 반대되는 느낌의 앨범이다. “11월 발매했던 믹스테잎 앨범은 공익근무 했을 때 작업할 앨범이에요. 우울하게 작업하진 않았는데 다소 어두운 느낌으로 완성됐어요. 하지만 나름대로 제 경험과 감정을 담은 것 같아 뜻깊은 앨범이죠.”
이후 내놓은 겨울 싱글은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이지 리스닝 곡-이지만 현재 달달한 연애 중인 크루셜스타인 만큼 자전적인 느낌도 부인할 수 없는, 기분 좋은 곡이다.
많은 래퍼들이 그러하듯 크루셜스타 역시 ‘경험’과 ‘여자’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는다 했다. 그의 음악에 자전적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가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 그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는 존재는 바로 ‘헤이터’다. “누가 저에게 싫다고 댓글 단 걸 보면 거기서부터 영감을 받곤 해요.”
그런 헤이터들을 향한 솔직한 심정을 쓴 곡도 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할수록 그 사람의 삶은 부정적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죠.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요즘 그의 고민은 ‘꿈’이다. “아무래도 꿈이 그리 확고하지 않은 데 대한 고민이 있어요. 추상적으로는 있는데 구체적이지 않은 단계라, 요즘 계속 생각하며 지내고 있죠. 가까운 미래로 서른 살이 되면 난 뭐 하고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랄까요? 하하”
어릴 적 크루셜스타의 꿈은 만화가였다. 고1때까지의 꿈이었다 하니, 꽤 확고한 꿈이었을 법 한데, 어느 순간 만화에 흥미를 잃으며 그의 진로에 대변혁이 일어났다.
“만화에 흥미를 잃고 나선 뭘 해야 할 지 잘 몰랐어요. 그러다 그림 쪽으로 진로를 바꿨어요. 집안이 다 미술이라 딱히 재미는 없었지만 그냥 해야하나보다 생각하고 학원을 다녔죠.”
그는 아버지 박항률 화백을 비롯해 모든 구성원이 미술을 하는 ‘미술가 집안’의 막내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가 미술을 하란 법은 없었다. 미술학원을 다니고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답이 없던” 평범한 고교생의 일상을 보내던 그는 조금씩 음악에 빠져들다가 결국 미술도, 게임도 접은 채 음악의 길을 택했다. 다행스럽게도 “집안의 반대는 없었다”.
나 홀로 뚝딱뚝딱 음악을 만들어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곳에 음악을 올리기를 반복하기를 1년 여. 이듬해 ‘힙합 명가’ 소울컴퍼니 오디션을 보러 갔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떡 하니 합격했다. 자기 자신도 몰랐던 래퍼 DNA가 숨어 있었던 걸까. 크루셜스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오디션에 붙게 된 데 대해서도 “특출나게 잘해서가 아니라, 후렴구나 멜로디 메이킹이 그나마 다른 부분에 비해 나았던 것 같은데 소울컴퍼니 형 중 한 명이 그걸 캐치하셨다”고 말했다.
타의에 의한 게 아닌, 본인이 좋아서 택한 길인 만큼 현재 음악은 크루셜스타의 “삶에 유일한 낙”이다. 그렇지만 그 즐거움 속에서도 치열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음악은 늘 즐거워요. 제 유일한 즐거움이죠. 다만 오디션 붙기 전까진 회사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룬 셈이고, 이후엔 ‘더 크게 성공해야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 들려줘야지’ 라는 꿈이었다면 지금은 그걸 또 한 번 이룬 셈이니까요. 지금은 또 다른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단계인 것 같아요.”
대중문화 자체가 그러하듯 힙합 또한 당대의 트렌드가 분명한 장르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자와 ‘따르는 자’ 중 누가 위너일 지는 자명하지만, 진정한 강자는 트렌드를 인지하면서도 묵묵히 자기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사람일 터다.
“트렌드가 돌고 돈다는 걸 저 역시 많이 느끼고 있어요. 1~2년 전까지만 해도 힙합 쪽은 일렉 느낌이나 트렌디한 곡들이 유행했었는데 요즘은 사운드는 세련됐는데 느낌은 올드스쿨 같은 복고풍으로 가는, 그런 싸이클이죠. 그런데 저는 그런 트렌드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에요. 요즘 잘 한다는 사람들의 음악을 많이 들어보긴 하지만 제가 원하는 사운드는 분명히 지켜가려 노력하죠.”
“감성 노래를 해서 ‘뜨려고’ 한 건 아니에요. 여러 가지 음악을 발표했는데 유독 잘 된 노래들이 감성적인 노래들이었죠. 그러다 보니 ‘크루셜스타의 음악은 그렇더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고, 사랑노래를 발표하면 ‘‘믹스테잎’ 같은 건 사라지나보다’라고 생각하시기도 하죠.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는 사랑노래도 좋고 강렬한 느낌의 노래도 그 자체로 좋아해요. 제가 느끼는 영감에 충실할 뿐이고, 편견 없이 작업할 뿐입니다.”
힙합을 바라보는 그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서도 다소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좋다-싫다가 아니라 좋다-구리다(!)로 평가해주셨으면 해요. 센 힙합을 좋아하시는 분들의 의사는 자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취향 문제니까요. 구리다고 하신다면 고치고 개선해나가겠지만, 그저 ‘싫다’ 하시면 좀 억울하죠.”
그는 “대박을 꿈꾼다거나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음악을 해야된다는 생각은 없다”면서도 언젠가 더 많은 대중과 음악으로써 소통하고 싶은 포부를 강조했다.
“‘응사’의 정우씨 같은 경우, 오랜 시간 내공을 쌓아왔기 때문에 이번에 잘 될 수 있던 거잖아요. 나만의 분명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계속 노력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분명 언젠가는 알아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전히 꿈 꾸는 래퍼, 크루셜스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음악은 무엇일까. “추상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그림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버지의 그림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일단 전자음은 아니고요. 어떻게 보면 동양적인, 잔잔한 파스텔톤에 몽환적인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아직은 내공이 많이 필요하죠, 좀 더 나이 들어선 깊은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사진=그랜드라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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