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 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심지어 놀고 즐기는 '딴따라' 주제에 고소득을 올린다는 선입견도 있습니다. 요즘 일본의 방사능 오염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지난 한해 모두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엔저 현상 때문인지 주머니는 더 가벼워졌습니다. 회사는 일본 진출이 예년만큼 수월하지 못해 프로모션 비용과 투자도 많았다고 합니다. 투자는 회사에서 발생한 이익금으로 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결국 다 우리의 수입에서 정산돼 빠져나가는 줄은 몰랐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마저도 벌지 못하는 뮤지션이 수두룩 하니까요. 하지만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농수산물을 1년 동안 먹은 일본 아이돌 그룹이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솔직히 불안합니다.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미래가 하수상한 시절에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감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1년에 수십 팀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고 사라지는 현실이니까요. 회사는 우리를 데뷔시키고 최소 6개월 이상 활동을 유지하는 데 평균 10억원 가량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SM·YG 등 몇몇 대형 기획사가 아닌 대부분 중소기획사의 형편은 어렵습니다. 유통사로부터 일명 ‘선급금’을 받아 가수(앨범)를 제작하는 형태죠. 이때부터 우리는 빚쟁이가 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여러 유통사 혹은 투자자와 계약 관계에 발목이 묶였습니다. 이 선급금을 다 갚기 전까지 우리는 쥐는 돈이 없어도 열심히 행사를 다녀야 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 ‘한 방’이 터지면 인생역전할 줄 알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고민은 작곡가 분들이 알아서 해주셨습니다. 대신 그 시간에 우리는 술을 마셨습니다. 상대는 투자자입니다. 그들이 부르면 가야합니다. 술자리가 있을 때 우리를 불러 인사시키는 것이 권력이고 자랑인 모양입니다. 믿고 싶지 않으나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여자 연예인들의 스폰서 관련 소문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일정에 쫓기는 것도 모자라 이런 자리까지 나가다 보면 잠이 모자랍니다. 각성 효과가 좋은 에너지 드링크를 달고 삽니다. 여기에는 카페인 성분이 다량 함유돼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위험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 한 에너지 드링크TV 광고에서 속삭이는 ‘날개를 펼쳐줘요’라는 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곧 제 꿈의 날개가 펴질 것 같았죠. 그런데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Icarus)의 날개와 무엇이 다를까요. '이카루스의 날개’는 인간 욕망의 무모함을 경계하는 교훈입니다. 너무 높이 날면 날개가 태양에 녹아 추락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고가 이제 신화 속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가장 자괴감을 느끼는 건 회사가 우리를 '버리는 카드'로 생각할 때입니다. 자생적인 음악 생산 능력을 갖춰 돈이 덜 드는 싱어송라이터가 각광받는 추세죠. 투자도 결국 수익을 남겼을 때 계속 이뤄지는 법이니 이해는 합니다. 소위 ‘행사 무대만 돌려도 본전은 뽑는다’던 대상과 거리가 멀어졌나 봅니다. 방송 출연 경쟁은 전쟁에 가깝다고 해요. 대형기획사 가수들은 소위 ‘끼워팔기’라도 가능하지만 중소기획사 신인은 무대에 오를 기회가 주어지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할 정도입니다. 아무리 실력으로 무장한 그룹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눈길을 끌기 위해 섹시 콘셉트를 내세웁니다. ‘변신’이라는 그럴듯한 미명 아래 승부수를 던졌으나 자칫 ‘싼마이’(‘3류·조연’을 뜻하는 일본어 ‘산마이메’에서 유래된 속어) 취급만 당하기 십상입니다. 아이돌 시장이 완전히 사라질 순 없지만 앞으로 퍼포먼스 중심의 그룹은 살아남기 힘들 것입니다. 뮤지션 역량과 스타성이 결합했을 때 진정한 ‘아이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작사·작곡에 무관심한 것도, 타 장르의 음악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 내길 종용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 없으신가요, 혹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치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 이 글은 특정 아이돌 그룹이나 멤버를 지칭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현장에서 듣고 본 일부 사실 확인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임을 알립니다. 더불어 지난해 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주현우 학생의 글 일부를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fact@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