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은 색깔 논쟁부터 여러 가지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최근에는 영상이 불법 유출되기도 하는 등 악재도 이런 악재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질주하고 있다.
양우석(45) 감독은 "기분이 덤덤하다"는 표현을 썼다. "얼떨떨하다"고도 했다. 그는 "우당탕 작품에 들어갔는데 관객들이 결과물에 이렇게 호응해줄지 몰랐다. 그게 가장 놀란 점"이라고 짚었다. 특히 "관객이 영화를 단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권하는 점이 고맙고도 감사한 일"이라고 좋아했다.
'변호인'은 19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다섯 번의 공판과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거의 모두가 알다시피 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티프다. 양 감독은 "모티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니 어차피 오해와 편견은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어떻게 만들어야 이해와 성찰이라는 본래의 이야기를 전달할까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보통 영화가 선을 보이면 주연배우들과 감독이 나서 홍보 인터뷰를 하는데 양 감독은 늦게 나섰다. 그는 "데뷔작이니 서툴기도 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덜 나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일방적으로 피하기만 하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언론 앞에 선 이유를 댔다.
양 감독은 19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며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관심이 높았다고 했다. "'노사모'는 아니다"라는 그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짚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관심을 두게 된 건 1988년 5공 청문회가 시작이었다.
"서울 법대를 졸업해도 사법고시 합격률이 40%도 안 됐는데 고졸이 패스를 하고 의원이 돼 '암행어사 출두야'하는 것처럼 5공 인사들을 혼내는데 속이 시원했죠. 일간지, 주간지 할 거 없이 노무현이라는 초선 의원을 다뤘어요. 또 종로에서 재선했고, 3선도 가능했을 텐데 굳이 부산으로 내려갔잖아요. 더 놀라운 건 나중에 대통령이 됐잖아요. 사실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이 이야기를 용도 폐기해야 했어요. 그때만 해도 용비어천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테니까요."
10년이 지나고 그는 다시 1980년대를 떠올렸다.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이 피곤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모순이 많았던 당시를 들여다보게 됐다는 양 감독. 자연스레 떠올린 게 오랫동안 담아둔 노 전 대통령의 과거 이야기다.
사실 영화화 계획은 없었다. 웹툰 작가였던 그는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로 웹툰 연재를 앞뒀을 때 최재원 위더스필름㈜ 대표를 만났고 영화화가 진행됐다. 최 대표는 투자가 안 되면 독립영화로라도 만들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배우 송강호가 출연 제의를 받아들였고, 규모도 커졌다. 양 감독이 직접 연출도 맡게 됐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양 감독은 MBC프로덕션의 영화 프로듀서 등을 거쳐 작가로 활동하면서 주로 애니메이션·웹툰 작업을 했다. 영화와 전혀 동떨어진 사람은 아니었다. 영화의 만듦새가 괜찮은 이유다.
양 감독은 공을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돌렸다. "연출은 이야기 전달을 잘하는 게 최고 목표라고 생각했고,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 할 정도로 배우와 스태프들의 노하우가 있었다"고 겸손해했다. 그가 할 건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빨리 캐치해 좋은 것, 나쁜 것만 판별하면 되는 것이었다"고 기억했다.
송강호가 연기한 변호사 송우석과 곽도원이 연기한 차동영 경감을 양극단에 대치시켜 관객을 숨죽이게 한 것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석과 동영은 각자의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에요. 동영은 끝나지 않은 이데올로기를 피와 몸으로 배운 사람으로서 어떤 신념이 생긴 거고, 우석은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좇아간 거죠. 하지만 우석은 부조리한 사건을 만나 변합니다. 여기서 조금의 차이가 있는 거예요. 자기 눈으로 보고 밤새 책을 읽는 등 자신이 변호할 학생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을 성찰합니다. 반면 차동영은 아니죠."
그는 "신이 한 수도 아니고 여러 수를 두셨다"고 고마워했다. "안 좋게 흘러가면 정말 안 좋게만 흘러갈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공교롭게도 모두가 다 좋은 결과가 됐어요. 인간의 노력으로만 되지는 않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코먼센스(Common Sense)라는 말이 정상과 비정상, 좌와 우 등등의 사람들 모두가 코먼(Common)하게 센스(Sense)를 느끼는 거잖아요. 정상인이 가지는 게 상식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비정상인도 '그건 이런 거야' 하는 게 상식이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양 감독은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이야기 틀에 맞춰진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데뷔 작품을 엉겁결에 긴장된 상태에서 촬영하고 개봉하고 사랑받았다"는 그이니 "다음에는 좀 더 긴장을 풀고 즐겁게 소설이든, 웹툰이든 형식을 가리지 않고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사진 강영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