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사진의 걸그룹이나 어느 특정 가수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
걸그룹 멤버들의 성(性) 상품화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걸스데이는 허벅지까지 노출되는 과감한 옆트임 치마를 입고 3일 컴백했다. 달샤벳은 시스루룩을 입은 채 욕조 속에 들어가 농염한 자세를 취했다. 레인보우는 섹시 콘셉트 유닛 ‘레인보우 블랙’ 출격을 예고하면서 멤버들의 다리와 가슴 등 신체 일부를 은밀히 촬영한 듯한 사진을 공개해 호기심을 자극했다.
핫팬츠를 입은 채 다리를 과도하게 벌리는 일명 '쩍벌춤'이나 야릇한 상상을 부추기는 교태 섞인 몸짓은 웬만한 걸그룹이 거쳐야 할 필수 코스가 된 지 오래다. 실제 본 무대는 그렇지 않더라도 활동에 앞서 공개하는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이나 이미지에는 '19금', '침대 셀카', '키스', '목욕신', '파격 노출' 등의 수식어 정도는 붙어줘야 한다.
수 많은 걸그룹(여가수)이 한 번쯤 선정성 논란에 휘말렸거나 혹은 이를 자처했다. 걸그룹의 과도한 노출·선정적인 춤에 대한 비판과 이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목소리는 서로 메아리가 돼 잊을 만하면 돌아온다.
대중은 각박한 현실에서 판타지(Fantasy)적인 이야기와 동경의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대중은 일탈하고 싶고 내가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는 연예인을 보면서 대리만족,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앞서 소녀시대, 씨스타, 나인뮤지스 등은 특정 직업군의 '제복' 같은 무대 의상으로 일종의 '타부(Taboo)'와 로망을 절묘히 배합해 대중의 욕망을 건드리기도 했다.
강태규 대중음악평론가는 "치열한 경쟁 속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방송사나 연예기획사가 결국 대중의 판타지를 쫓고 있다"고 말했다. 스무 살도 안 된 미성년자 연예인을 '청순 글래머', '베이글녀' 등으로 성(性) 상품화 하는 세태가 현실이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카메라는 무대 아래서부터 위 방향으로 걸그룹 멤버의 몸을 훑고, 신체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해 촬영한다. 강태규 대중음악평론가는 "보다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시청률을 추구하는 방송과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연예기획사가 성적 판타지를 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고 씁쓸해했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 역시 어느덧 가수의 음악을 분석, 무대 전체를 평하기보다 그들의 선정적인 의상·퍼포먼스에 주목한다. 그게 쉽고 편해서다. 수요자(대중)와 공급자(방송·기획사)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만을 주고 있는 '필요악'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중 음악 가수에게 순수예술을 바라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퍼포먼스도 실력이고 잘 생기고 예쁜 외모도 개인이 가진 하나의 능력이다.
문제는 그들이 내세우는 '섹시'가 얼마만큼의 당위성과 명분을 갖느냐다.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해 속살을 드러내고 몸을 흔드는 것이라면 '예술'이 아닌 '외설'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혹자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외국 유명 팝스타의 수위 높은 퍼포먼스를 예로 들며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성시권 대중음악평론가는 "국내 대중의 인식이 많이 변해가고 있으나 마돈나, 레이디 가가 등 유명 팝스타들과 지금 국내 걸그룹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음악과 퍼포먼스, 주객이 바뀐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퍼포먼스는 음악에 담긴 메시지를 조금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일부 걸그룹이나 여가수의 무대가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몇몇 그룹끼리 비슷하게 돌고 도는 섹시 콘셉트는 계속 양산되고 시장에서 꾸준히 소모되겠지만, 갈수록 식상함이 더해져 그들 스스로를 가둘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제작자들 또한 이를 잘 알면서도 당장 눈앞에 닥친 캄캄한 현실 속 돌파구를 찾기 위해 '섹시' 콘셉트를 꺼내든다. "역시 뜨려면 벗어야 한다!"는 주변의 부추김이 그들을 거든다.
걸그룹의 선정적인 복장과 춤에 대한 각 방송사 심의위원회의 단속이 흐지부지된 것이 아니냐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걸그룹 멤버들의 다리까지 레깅스로 꽁꽁 싸매게 했던 때를 떠올리면 그럴 만도 하다.
이른바 B급 정서가 녹아든 '강남스타일'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고려하면 심의위원들의 잣대도 애매해졌다. 다수 가요 제작자들은 "수많은 걸그룹이 무한경쟁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의 눈에 띄려다 보니 자극적인 포인트를 줄 수밖에 없다"며 "케이팝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심의 제도는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시대의 흐름을 관통하는 트렌드일뿐 케이팝 시장은 충분히 자체 정화 능력을 갖췄다는 의견이다.
정상급 걸그룹이 속한 한 기획사 대표는 "솔직히 우리 아이들(걸그룹)을 봐도 꽃은 꽃인데 향기가 없다"며 "가까이 다가가 만지고 싶을 만큼 예쁘지만 관상용 같다. 음악으로 들려주는 진한 향기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다만 이 대표는 "방송·언론·평단과 각 연예기획사는 케이팝 발전을 위한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fac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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