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 남철과 불륜의 관계지만 그마저도 그냥 그런, 익숙한 일이 된 것처럼 보인다. 진경의 주변에는 남철 말고도 두 명의 남자가 더 있다. 진경에게 사귀자는 대학 친구 승민과 인근 전자대리점 직원 경호. 대학 친구는 장난스러운 듯 보이지만, 경호는 진지하다. 비록 진경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경호는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다.
세 남자의 관심 혹은 사랑을 받아도 진경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받아도 외로워 보이는 여자다. 삶을 살아오며 많은 상처를 받은 것 같다. 그 자신조차 불륜으로 태어난 인물이기에 삐딱한 삶을 살아가는 듯하다.
진경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런 그를 남들은 '버르장머리 없다', '까칠하다'는 평가를 한다. 선입견이다. 특히나 불륜의 관계이다 보니 더 그렇다.
영화는 진경의 과거가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는다. 이렇게 불친절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진경이 어떤 이유로 강원도 영월이라는 곳에 흘러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유추할 수는 있다. 불륜남과 강가로 드라이브 나온 그는 영월에 있게 된 이유를 묻는 남자에게 "노가다 뛰시는 분들, 일거리 따라 방방곡곡을 다니잖아요. 철없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그런 것과 비슷해요. 와보니깐 좋아서 일을 찾고 지겨워지면 떠나고"라는 답변을 한다.
윤진서는 최근 인터뷰에서 "진경은 일반 회사원이었는데 사랑한 사람한테 상처를 받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랑을 했는데 또 실패해 슬퍼한 것 같다"며 "인간관계가 귀찮고, 힘들어 시골에 온 인물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진경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상처받은 영혼인 거다. 성악과를 졸업했으나 전혀 관계없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다.
진경의 삶에는 여느 일반인의 삶이 묻어 있다. 달라 보이면서도 비슷하다. 여느 사람과 똑같이 상처받고 아파한다. 과거 진경에게도 즐거워할 때가 있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처한 현실의 상황은 그리 즐거울 리 없다. 세상의 편견은 그에게 일종의 짐이다. 애써 동떨어진 사람처럼 대하는 것. 진경의 삶의 방식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하지만 엄청난 상처를 받은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친다. 비록 새엄마이긴 하지만 엄마를 잃었다. 이제 그에게 "밥은 먹었느냐"고 묻는 엄마는 없다. 누구나가 쉽게 건넬 수 있는 "밥은 먹었느냐?"는 경호의 말에 울부짖는 진경이 인상 깊다.
윤진서는 진경이라는 캐릭터를 파고들어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여성들에게 가슴 먹먹한 무언가도 전한다. 현실 속 윤진서의 성격과 진경은 다르다지만, 오묘한 눈빛의 그와 절묘하게 맞닿아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마음이…'(2006)의 박은형 감독 작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을 받았다. 97분. 15세 관람가. 26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