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예정지역인 한 마을에 돌연 기적을 빙자해 마을 사람들을 현혹하는 장로 최경석(권해효 분)와 목사 성철우(오정세 분)가 등장하고, 오직 혼자만 이들의 숨은 진실을 알고있는 술주정뱅이 폭군 김민철(양익준 분)은 무조건 믿고 의지하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답답하다. 이들과 마을사람들의 충돌을 통해 믿음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 ‘사이비’
[MBN스타 여수정 기자] “첫눈 오는 날 나이 많은 배우랑 있어 서운한 거 아니냐.”
애니메이션 ‘사이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배우 권해효는 특유의 인간미와 재치로 어색했던 분위기를 순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늘 푸근하고 선한 역할을 도맡았기에 그의 배려와 친숙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정확한 반달모양으로 눈웃음을 치는 권해효를 보고 있자니 ‘사이비’에서 절대 악인이자 보상금을 갈취하려는 장로의 탈을 쓴 수배 중인 사기꾼 최경석 역을 어찌나 실감나게 소화했는지 궁금증을 넘어 의문이 들었다.
‘사이비’를 통해 연기인생 20년 만에 첫 악역에 도전장을 내민 권해효는 그의 완벽한 연기내공을 증명하듯 물 만난 고기처럼 최경석 그 자체였다. 그간 선하고 인간적인 역을 소화해 그의 반전연기는 신선한 충격을 안기기에 탁월했으며 최경석과 혼연일체하는 모습은 ‘역시 권해효다’ 라는 감탄과 찬사만을 내뱉게 만든다.
“최경석은 나쁜 놈이다. 더 이상 나쁜 놈이 어디 있겠냐. (웃음) 그러나 최경석 만이 나쁜 놈이고 다른 사람들은 좋은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안기기도 한다. 누가 옳고 선한가? 누가 나쁘고 잘못됐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보면 최경석이 절대악으로 보이지만 그 역시 살면서 누군가에게 당한 후 이 세상 멍청한 놈이 당하는 거지, 이제 안 당해라는 마음으로 살아온 인간으로도 볼 수 있다. 운이 좋아서 힘 있고 긴박감 넘치며 재미있는 영화에 함께하게 돼 기분이 좋다. 첫 악역연기라 그런지 많이 기억될 것 같다.”
권해효가 ‘사이비’에서 감칠맛나는 악역에 도전했다. 사진=천정환 기자 |
“전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편 극영화에서는 선녹음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선녹음의 좋은 점은 참여한 배우가 갖는 포지션이 커진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상상 속의 모습을 토대로 녹음을 시작해 그림과 영상에 대한 구애가 없다. 때문에 즉흥적인 느낌을 그대로 쏟아낼 수 있어 자유롭다. 물론 연상호 감독이 상황을 자주 설명하나 온전히 느낀 템포는 배우 스스로의 몫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더욱 재미있었다. 대사를 하면서 배우들이 무의식중 나왔던 행동들을 ‘사이비’에 담기기도 했다. 감독의 작품 속에 배우로서 창작의 지분을 가진 느낌이 정말 좋았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와 오정세가 맡은 배역은 우리의 생김새를 캐릭터에 녹아낸 부분이 있는 듯하다.”
선녹음으로 완성도를 높였고 권해효, 양익준, 오정세, 박희본 등 연기파 배우들의 조합으로 환상의 앙상블을 만들어낸 ‘사이비’. 그러나 넘쳐나는 상업영화들 속 독립영화이자 애니메이션이기에 관람에 있어 약간의 제한이나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권해효를 비롯한 출연배우들이 ‘사이비’ 언론배급시사회 당시 “좋은 영화니 많이 도와주고 관심을 가져달라. 이런 영화 놓치면 안 된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사이비’를 볼 때 관객의 느끼는 가속감과 힘은 마치 ‘추격자’를 봤을 때의 느낌과 같을 것이다. 끝도없이 밀어붙이는 대결이 대단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보는 것이나 재미있거나 웃겨서 그냥 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인지 보통 영화관에서 성인 애니메이션을 선택하기는 매우 어렵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나 지브리 스튜디오 들 브랜드화된 애니메이션은 예측이 가능하고 이야기 전개에 대한 정보가 있지만 독립영화적 성향의 애니메이션은 일단 저항이 있다. 독립영화 자체가 주제의식만 넘치고 이야기는 지루해라는 편견이 있어 아쉽다. ‘사이비’는 이야기가 일단 매우 재미있다. 거부할 수 없는 광적인 힘이 느껴진다.”
사진=천정환 기자 |
“‘사이비’는 믿고 따랐던 자들의 관점에서 본 세계이자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것이다. 연상호 감독은 괴물 같다. (웃음) 악한 세상에서 견디기 위해 더 악한 놈으로 변하자 를 그린 건 ‘돼지의 왕’이고, 그렇게 변해버린 인물들이 모인 곳이 바로 ‘사이비’다. 그냥 애니메이션이다, 독립영화다 라는 편견 없이 관람했으면 한다. ‘돼지의 왕’으로 데뷔한 연상호 감독의 후속작이자 해외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을 함께 즐겨주길 바랄뿐이다. 상을 받았으니 봐 달라가 아닌 관객들이 스스로 선택해주길 원한다. 관람한다면 아마 한국영화의 미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보통 시나리오보다 촬영본이 좋게 나올 확률이 높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연상호 감독의 느낌은 시나리오가 주는 느낌과 너무 많이 다르더라. 내가 시나리오에서 전혀 읽어내지 못한 부분이 풍부하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사이비’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이비’를 통해 서서히 스크린에 잦은 등장을 예고하기에 팬들에 대한 즐거움을 날로만 커지는 상황이다. ‘사이비’로 2013년 연말 극장에 모습을 비친 권해효를 2014년에도 계속 볼 수 있을까.
권해효가 오는 2014년에도 스크린을 자주 찾을 것을 예고했다. 사진=천정환 기자 |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